도시남녀 2

소설

by 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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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느 날 유난히 젊은 사람들이 장례식장을 많이 찾아서 보니 23살의 여자가 어젯밤에 죽었다. 어제 낮에 죽었을지도 모른다. 무슨 일로 죽었을까. 나이로는 정말 죽을 나이가 아닌 것이다. 죽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병 때문에 죽었을지도 모른다. 이 도시에는 죽어야 할 사람은 죽지 않고 죽고 싶지 않은 사람은 죽는다. 그때 누군가 나의 멱살을 잡았다. 검은 상복을 입은 남자였다. 옆에서 누군가 나를 가리키며 어제도 그제도 장례식장에 와서 죽은 사람의 이름이 붙은 곳을 기웃거렸다는 말을 했다. 멱살을 잡고 있는 남자는 나를 복도에 내팽개치며 죽음이 구경거리냐고 소리를 질렀다. 일어나서 그게 아니라고 말하려는데 상복을 입은 남자의 주먹이 나의 얼굴을 가격했다. 번쩍하는 순간이 지나갔다. 아프다기보다는 새로운 빛이 시야에 잠시 드러났음에 조금 놀랐다. 빛은 금방 사라졌다. 전혀 보지 못했던 빛이었다. 무지갯빛도 아니고 네온의 빛과도 달랐다. 러브 크래프트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황홀한 빛의 일종 같았다. 그 빛을, 순간의 아름다운 그 빛을 나는 다시 한번 보고 싶었다. 그 남자에게 한 번 더 때려 달라고 매달렸다. 미친 새끼,라는 말을 들으며 나는 장례식장에서 쫓겨났다. 한 번만, 딱 한 번만 더 때려달라고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맞은 곳은 금방 부었다. 왼쪽 얼굴이 보란 듯이 부어올랐다. 이런 얼굴로 손님을 맞이할 수는 없다는 편의점 사장의 말을 들었다. 저녁에는 붓기만 했던 얼굴이 초록색의 젖은 밤이 되니 멍까지 들었다. 저녁부터 새벽 1시까지는 바에서 잡일을 하고 이후에는 편의점에서 아침까지 일을 하는데 편의점 사장이 그날따라 편의점에 남아 있다가 나에게 말을 했다. 편의점에서 잘리면 내야 하는 각종 고지서를 해결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나는 아슬아슬하게 이 도시의 줄을 타고 있는 것이니까 까닥 잘못하면 줄 밖으로 떨어질지도 모른다. 사장은 한 번은 봐준다고 했지만 새벽에 편의점을 봐줄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그런지 사장은 근래에 밤늦게까지 남아서 편의점이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24시간 하는 편의점을 12시간만 하려고 하는 것 같다. 맞은 부위가 욱신거렸다. 더불어 불안함이 하나 더 늘었다.


“이거 어때?”라며 자신의 글을 보여 준 사람은 리사다. 리사는 몇 살인지 모른다. 본명도 모른다. 본명 따윈 중요하지 않다. 그저 무엇인가로 불리면 그만이다. 이름이 있다고 해도, 이름으로 제대로 불리지 않는다고 해도 누구도 실망하지 않고 누군가 이름을 물으면 가명을 말하는 것이 여기 이 도시의 여기 이 술집이다. 리사는 대략 스물다섯? 스물여섯. 바에서 일을 하는 동안은 가발을 쓰고 화장이 진하다. 키가 크고 팔뚝 살이 없어서 무척 가냘프게 보인다. 리사는 손님이 없을 때 항상 노트에 글을 적고 있다. 글을 완성하여 신춘문예에 출품을 하는 것이 그녀의 꿈이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적는 글이 소설도 아니고 시도 아니고 에세이도 아니다. 하루하루 일기 정도의 글이다. 폰으로 메모를 해도 될 텐데 꼭 공책에 볼펜으로 필기를 했다. 그래야 안정이 된다고 했다. 그녀가 나에게 적은 글을 보여준 것은 내가 바의 달력에 의미 없이 ‘젖은 어둠은 매일 밤 마음으로 흐른다'라고 써놨기 때문이다.


바의 이름은 ‘거스턴’이다.


“왜 거스턴이냐면, 사장님이 필립 거스턴을 좋아한대."


거스턴의 그림을 좋아해서 그렇게 지었다고 리사가 말했다. 그래서 처음 바에서 일을 하고 벽에 애매하고 비슷한 그림들이 많아서 한참 쳐다보았다. 거스턴에서 일을 하는 여자는 총 다섯 명이고 리사는 다른 여자들에 비해 예쁘지는 않지만 손님들에게 인기가 좋아 지명이 잦았다. 인기란 그런 것이다. 인기는 사랑과 다르고 존경과 다르고 외모와 달랐다. 인기는 뭐랄까 태어날 때부터 그 사람에게 요만큼이나 아니면 이만큼 붙어서 같이 태어난다. 그렇지 않으면 뽕도 넣지 않고 마르고 썩 예쁘지도 않은 리사가 손님들에게 인기가 많을 리가 없다.


리사가 보여주는 글에는 죽음에 관한 글이 많다. 그녀는 나에게 왜 이런 글을 보여주는 것일까. 어릴 때 벌레를 죽인 이야기라든가, 고양이가 죽어서 슬퍼한 이야기라든가, 강아지를 기르고 싶어도 사랑을 덜 줘서 일찍 죽어버리면 어떻게 하지, 하는 것에 대한 후회 등 그런 이야기가 가득했다. 리사는 부은 내 얼굴을 보고 차가운 수건을 볼에 대어 주었다. 장례식장에서 맞은 얼굴이 욱신거렸다. 어쩌면 찜질 덕분에 편의점에서 잘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리사는 달력에 적어 놓은 낙서를 보고 내가 써 놓은 글이 더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 생각이 옳은 것이라 여겼는지 매일 글을 보여 달라고 했다. 있을 리가 없는 글을 보여 줄 수 없기 때문에 리사 앞에서 말 수가 줄어들었다.


“고등학교 때 매일 구타를 당했는데 엄청 맞을 때 이렇게 이상한 소리를 내니까 그 뒤부터 나를 건들지 않았어"라고 고시원 옆방에 사는 녀석이 말했다. 사람들은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기까지가 힘든 것이지 한 번 터득하고 나면 그 이후부터는 어떻게든 흘러간다. 그 녀석은 대학교를 온전히 졸업하고 이 도시의 온전한 회사에 취직을 했다. 취직을 하고 보니 그 녀석만 온전했고 나머지 직원들은 정상적이지 않았다. 고등학교에서처럼 사람들은 자신들과 다른 그 녀석을 따돌렸다. 직장은 학교처럼 구타는 없었지만 사무실에서의 따돌림은 구타보다 심장에 더 상처를 주었다. 그 녀석 그 뒤로 사무실에서 중국어 같은 이상한 언어를 혼잣말로 하게 되었고 지금은 이렇게 고시원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 꿈이라든가 희망이라든가 어디에 있을 거라고 이 도시에 왔지만 그것은 사람을 망가트리는 약과 같다고 그 녀석이 말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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