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루와 가려움을 참을 수 없었던 그녀 1

단편소설

by 교관

줄거리 및 작품소개: 버루에게는 여자 친구가 있다. 그저 친구 같은 여자 친구다. 그녀와 거의 매일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곳에서 만나서 얘기를 하지만 주로 듣는 쪽이다. 그런데 어느 날 버루는 한 할머니에게 자신이 파키스탄 사람이라는 오해를 받고 여자 친구에게 그 사실을 털어놓는다. 내내 듣기만 하던 버루는 여자 친구에게 고민을 말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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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버루는 오늘도 시험을 대충 보고 나왔다. 하얀 종이 위에 까만 글자가 가득 들어있을 뿐, 시험지에 대한 버루의 반응은 언제나 시큰둥했다. 고개를 꺾어 본 하늘빛은 블루코발트 같았다. 블루코발트는 어떤 색이지?라고 묻는다면, 글쎄 잘 모르겠는 걸, 하고 말 것이다. 도로는 잿빛이고 사람들은 스산한 바람에 등을 한껏 구부리고 땅을 쳐다보고 바쁘게 걸어가고 있었다. 자동차들도 내일이면 세상이 끝날 것처럼 액셀러레이터를 밟아가며 달렸다.


버루도 땅을 바라보며 터득터득 걸어가고 있었다. 누군가 버루의 앞에서 어두운 그림자를 만들었다. 버루는 그림자가 드리워진 앞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거기에는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가 허리가 조금 구부러진 채로 버루를 쳐다보고 있었다. 버루도 할머니를 힘없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난 파키스탄에서 온 할머니야, 너도 파키스탄에서 왔지?”라고 말을 했다.


버루는 할머니에게 무슨 소리냐고 했고 자신은 한국 사람이라고 했다.


“할머니는 파키스탄 사람인데 어째서 한국말 따위를 이렇게 잘하시는 거죠?”라고 물었고 할머니는 이곳에서 파키스탄의 언어를 사용하면 잡혀 간다고 했다.


“아니, 요즘 세상에 누가 잡아간다는 말이에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요, 할머니.”


“넌 아직 어려서 몰라. 이곳에서 파키스탄의 말을 하면 참치인간에게 잡혀 간단 말이야.”


참치인간은 무엇일까, 하고 버루는 아주 잠시 생각을 했다.


“내가 파키스탄에서 왔다고 절대로 누구에게 말을 해선 안 되는 거야, 알겠지?”


버루는 그저 네,라고 대답을 하고 지나가려 했다.


“그냥 가면 어떡해? 파키스탄에는 말이야 해가 지고 있어. 해가 점점 빨리 지니 큰일이야. 내 딸이 아직 그곳에 있어. 해가 그렇게 빨리 지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야.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재앙이 몰려올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내 딸에게 큰일이 닥칠 것 같아.”


버루는 파키스탄에서 온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다시 가던 길을 가려고 했다. 할머니는 버루에게 부탁이라며 하나를 들어 달라고 했다.


“내일 이 시간에 이곳에 다시 올 테니 개구리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개구리라, 버루는 머릿속에서 개구리의 형상을 만들어 냈다. 그리곤 다시 지우개로 지웠다. 겨울로 접어드는 이 계절의 도시는 메마를 대로 메말라 있었고 파키스탄에서 온 할머니의 그림자는 닳아빠진 빨래 마냥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글쎄요, 개구리를 어디서 구해야 할지. 재래시장에 가면 황소개구리를 팔긴 하지만.” 버루가 힘없이 말했다.

할머니는 조금 일그러진 표정을 지으며 안 돼! 하고는 황소개구리는 아무 쓸모가 없다고 했다. 버루는, 황소개구리는 아무 쓸모가 없다고 한번 되뇌고 이제 끝이야,라는 표정으로 길을 가려고 했다. 파키스탄에서 왔다는 할머니는 버루에게 넌 분명히 파키스탄에서 왔어, 그런 분위기가 너에겐 아주 강하게 있다고 말한 후 버루의 갈 길을 내주었다. 버루의 등을 바라보며 파키스탄에서 왔다는 할머니는, 파키스탄을 구할 수 있는 이는 오직 너뿐이라며 내일 이 시간에 여기서 다시 보자는, 늙어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왜 인지는 모르지만 이 도시는 인구 열 명당 외국인이 한 명 꼴로 외국인 거주자가 대거 늘어났다. 버루의 생각으로, 아직 고등학생이라 그런 것 따위 중요하지 않았지만 어른들에게서 들리는 이야기로 이 도시가 외국인들이 살기에는 적합하고(의료, 친절함, 거주환경, 재래시장, 환율대비 등) 무엇보다 그들의 식문화인 커피와 빵의 구매가 그들의 나라나 다른 도시보다 수월했으며 자본을 벌어들이기가 훨씬 편리(부당한 처우가 다른 도시에 비해 덜 했다)하다고 했다. 한국의 작은 도시지만 인구가 백만 명을 넘어서고 있고 백화점과 기술력을 요하는 대규모 제조업과 공업단지가 세 개나 들어서있고 항만과 비행장, 고속철도가 개통된 이 도시를 선호하는 유럽의 외국인들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파키스탄이라.


내가 어딜 봐서 파키스탄에서 온 사람처럼 보이는 거지? 라며 버루는 길을 걸어가다 길거리 식당의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아무리 봐도 자신의 모습은 다른 나라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특히 파키스탄 인처럼 보이지는 더더욱 않았다. 눈뜨면 볼 수 있는 흔한 한국인의 모습이었다. 버루 자신의 부모의 조상에 조상 중에도 외국인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사람의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음악을 듣던 폰이 울렸다. 폰을 들고 여자 친구와 약속을 하고 그 장소로 발길을 옮겼다.


버루는 여자 친구를 그다지 좋아한다고 할 수는 없었다. 아니다, 버루는 여자 친구를 좋아하고 있다. 여자 친구의 조잘거림을 듣는 것이 버루는 좋았다. 여자 친구의 쉴 새 없이 내뱉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어쩐지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깊게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단지 그랬다. 쉴 새 없이 떠들고 있는 그녀의 목소리가 주위를 가득 메울 때면 공허할 때보다 마음이 편안했다. 그것은 기이한 경험이었고 한 번 그런 경험을 맛본 후 계속 이어가고 싶었다. 그것은 그녀를 계속 만나고 싶다는 말이겠지. 이후로 그녀와 함께 있으면 종종 편안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는 버루가 좋았다. 다른 사람과 있으면 말없는 성격의 사람이 되었지만 버루 앞에서는 말 많은 말괄량이처럼 변해버렸다.


버루가 여자 친구와 만나기로 한 곳으로 걸어갈수록 날은 점점 힘 잃은 고양이 마냥 고요해졌다. 어디선가 오아시스의 ‘돈 고 어웨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겔러그 형제의 목소리가 힘 잃은 대기에 흩뿌려지고 버루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주머니의 휴대전화 음악 소리를 더 크게 했다.


두 사람은 버루의 집과 그녀의 집, 딱 중간에 위치한 조그만 동네 공원의 벤치에서 언제나 만났다. 만나서 버루는 그녀의 재잘거리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신나게 이것저것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으면 그들은 걸었다. 그리고 시간이 다 되면 서로 인사를 하고 각자 집으로 갔다.


벤치에 앉아서 버루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불을 붙이고 깊게 빨아들이니 담배의 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치이익치이익.


입으로 뿜어내는 담배연기는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산발적으로 대기에 흩어졌다. 그녀가 왔고 그들은 나란히 앉아서 담배를 한 개비씩 입에 물고 상념 어린 갖가지 것들을 담배연기에 태워 흘려보냈다. 그녀는 담배를 한 대 피우고는 걸 그룹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그녀들이 음악을 하는 건 참을 수 있겠는데 왜 그런 음악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이해를 할 수가 전혀 없어. 아니 받아들일 수가 없어. 동의를 못 하겠어. 그녀들 역시 처음에 음악을 한다고 생각을 했을 땐 가수로서, 음악인으로서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들이고 그녀들의 블루스적인 목소리에 맞는 노래를 부르고 싶어 했을 거야. 그런데 회사에서 망쳐놨어. 마치 너희들은 이런 노래를 불러야 해. 어린아이들이 너희들의 싱글 1집을 너무 좋아했으니 당분간은 이렇게 나가보자고 하면서 그녀들을 계속 부추기고 있잖아. 그녀들이 요상한 옷을 입고 티브이에 나와서 억지웃음과 망가짐으로 그녀들을 알리는 것이 나는 이해가 안 된다고.” 그녀는 걸 그룹에 대해서, 그리고 그녀들이 하는 음악에 대해서 말을 했다.


버루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오늘은 그녀의 재잘거림도 다른 날처럼 자신의 마음을 평온하게 해 주지는 못 한다는 것을 알았다. 공원의 바닥은 겨울로 향해 가려는 듯 딱딱해지고 바늘을 쑤셔대도 꼼짝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버루는 그런 바닥이 어떤지 확인이라도 하는 듯 담배꽁초를 바닥에 고집스럽게 비벼 껐다.


“이봐, 나 말이야 파키스탄 사람처럼 생겼어?”라는 버루의 말에 그녀는 버루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곤란한 눈빛을 한 채 한참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동자를 이렇게 쳐다보기는 어쩌면 처음 인 듯했다. 눈동자는 상상이상으로 맑고 투명해서 버루는 조금 놀랐다. 그녀 역시 버루의 눈동자를 이렇게 한참이나 바라보기는 처음이었다.


“글쎄, 파키스탄 인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서 나는 잘 알 수가 없어. 그런데 바루 넌 말이야, 확실히 한국인처럼 보이지 않는 건 분명해”라고 그녀가 말했다.


음, 하고 버루는 생각했다. 지극히 한국인처럼 보인다는 것은 자신의 착각이었는지도 몰랐다. 학교에서 배우는 모든 수업도 별로였다. 시험지에 빼곡히 매워진 한글의 활자는 보기만 하면 눈이 아파왔다.


그래서일까.


그렇지만 파키스탄인은 좀 심하지 않은가.


“파카스탄 사람 같다고 해서 화가 난 거야? 어디서 그런 말을 들었는데?”


버루는 오면서 파키스탄 할머니를 만난 자신의 이야기를 그녀에게 해 주었다.


그녀는 쓸모없는 말을 쉴 새 없이 내뱉는 재주 말고도 타인의 이야기도 제법 자기 일처럼 들어주는 재주도 있었다. 버루는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앞으로는 여자 친구의 말에 좀 더 귀를 기울여 들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개구리라”라고 그녀는 읊조렸다.


“파키스탄사람이라고 해서 기분이 나쁜 건 아니야. 단지 뭐랄까, 지극히 한국인인 것처럼 생겼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에서 직격탄을 맞았다고 해야 할까. 뭐 그런 기분이야. 그냥 그래. 이젠 아무렇지 않아.”


“응, 내가 생각해 보니 파키스탄에서도 미인들이 많아서 월드대회에 아주 많이 나올 정도로 예쁜 사람들이 많데.”


“그럼 파키스탄 사람들의 생김새도 알겠네?”


“우리나라 티브이의 연예인들을 보고 한국인의 생김새를 알 수는 없어”라고 그녀가 대답을 했다.


잿빛 하늘에도 거뭇거뭇 어둠이 저 멀리서 연기처럼 몰려오고 있었다.


“그래, 네 말이 맞는 거 같아. 할머니가 말한 개구리는 도대체 무엇일까.”


“나도 무슨 말인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네. 바루야, 내일 같이 가줄까?”


“응, 고마워. 그리고 난 버루야. 뭐 바루라고 불러도 상관없지만.”


“난 바루라고 부르는 게 편해. 왜 그런지는 몰라도 말이야. 예전부터 죽 바루라고 불렀는데 몰랐구나”라면서 그녀는 킥킥 웃었다. 버루는 알고 있었지만 말을 하지 않았다고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벤치에서 보이는 풍경은 언제나 똑같았다. 공원을 가득 메우고 있는 이름 모를 나무들, 그 위로 보이는 메마른 아파트는 이 도시를 더욱 말라 보이게 만들었다. 아파트는 오래되었고 페인트를 덕지덕지 발라서 더욱 안타깝게 보였다. 마치 에셔의 그림을 따라 그리다 포기한 듯 보였다.


아파트 사이로 보이는 삼각형의 하늘이 버루와 그녀가 앉아있는 벤치에서 늘 보이는 유일한 풍경이었다. 바람은 없고 대기는 살얼음을 부어버린 듯 차가워져 갔다.


버루는 여자 친구를 집까지 바래다주려고 여자 친구 집과 같은 방향으로 나란히 걸었다.


“오늘은 웬일이야? 집까지 같이 걸어가고.”


“응, 내일 파키스탄에서 온 할머니를 만나러 가는데 같이 가주는 것에 미리 보답하는 거야.”


“나도 그 파키스탄에서 온 할머니를 만나보고 싶은 걸”라며 그녀는 킥킥 웃었다.


“그런데 바루야, 파키스탄, 파키스탄, 파키스탄 하고 계속 그 단어를 말하다 보면 굉장히 친근한 느낌이 들어.”


그녀의 말에 버루도 머릿속에서 잠시 파키스탄, 파키스탄 하며 생각했다. 그러자 그녀가 입으로 뱉어봐야 알 수 있는 거야,라고 해서 버루는 길을 걸어가며 파키스탄, 파키스탄, 파키스탄 하고 말하다가 “몇 번을 더 말해야 해”라고 물었고, 그녀는 “그건 나도 몰라”라고 대답했다. 버루는 아무리 입으로 되뇌어 봐도 파키스탄이라는 단어는 친근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파키스탄이라는 단어는 더 멀리 자신과는 떨어져 있는 폐렴 같은 것처럼 느껴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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