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하늘보다 오늘의 하늘이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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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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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째 저녁]


고요하게 내리는 빗속에서 대기는 멎어 버린 듯했다. 정의할 수 없는 대기는 숨쉬기 어려울 만큼의 열기가 가득했다. 하늘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세상을 삼키려고 거세게 내리던 비는 고요해져서 말 잘 듣는 어린아이처럼 착하고 침착하게 내리고 있었다. 멀쩡한 여름밤을 보는 것은 오늘밤이 마지막이다. 마른번개가 떨어지는 어둠 속으로 몸을 던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생각했다. 머릿속으로 그동안 여러 기억의 집적이 굴절되어 찰나를 통해서 지나쳤다.


지금 감정은 지나친 위화감일까.


위화감은 찰나로 지나쳤고 외로움이 몰려왔다. 외로움을 느낄 때 비로소 살아있는 것이다. 지금 순간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최대한 머릿속에 각인하려 했다. 마동은 ‘젊은 날의 초상’에 나온 한 구절을 생각했다. 이미 오래전에 죽어버려 먼지조차 화석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죽음을 떠올렸다. 많은 고대인들이 죽을 수 없는 운명 속에서도 죽음을 맞이했다. 많은 병을 고친 뒤에 스스로 병에 걸려 죽은 히포크라테스를 떠올렸다.


늘 있는 일처럼 전 세계의 대도시를 파괴하고, 점령하고, 몇십만이나 되는 대군과 기병대를 처참하게 살육한 시저나 알렉산더는 죽지 않을 줄 알았지만 죽음은 그들도 삼켰다. 하루 종일 내리쬐는 태양 밑에서 물로 배를 채우며 밤낮 가리지 않고 사색과 연구를 하다 흙으로 몸을 꽁꽁 칠 한 채 죽어간 고대철학자를 떠올렸고 원자론에 바탕을 둔 철학사상을 펼치다 죽어간 데모크리토스를 떠올렸다. 철학적인 글을 쓰지 않았다는, 만화의 등장인물처럼 생긴 소크라테스의 죽음도 떠올렸다. 그들의 죽음과 지금의 죽음이 다르냐고 묻는다면 대답할 길이 없다. 죽고 난 후의 세계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당신이 그토록 머뭇거려 온 수많은 세월들을 생각해 보라. 신은 당신에게 얼마나 많은 구원의 기회를 주어 왔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그 기회를 흘러버렸다. 그러나 이제 당신은 알아야만 한다. 당신 자신도 그 일부분인 우주의 본질을, 당신 자신도 그 발산물의 하나인 우주의 지배자의 본질을, 이제 한정된 시간을 이용하여 밝음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다면 시간은 지나가 버리고, 당신도 흘러가 버려 더 이상 기회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우주의 본질은 무엇인가? 나 자신의 본질은 어떤 것인가? 거대한 우주와 그 속의 극히 작은 일부분인 나 자신은 서로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가? 이러한 의문을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라. 그리고 당신 자신이 그 일부분을 이루고 있는 자연에 일치하는 당신의 말과 행동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잊지 말라’ 아우렐리우스는 이런 말을 남겼다.


결국 죽음이란 자연적인 현상이며 누구도 비켜갈 수 없는 숙명 같은 것이다. 마동은 자신이 우주의 미미한 존재로 살아가고 싶었지만 이제 미미한 존재에서 벗어나 균형을 바로잡을 때라는 것을, 그러기 위해서 지금 하는 행동을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자기 자신도 막지 못한다는 것을 되새겼다.


마동은 방파제에 나왔다. 방파제에서 보이는 등대는 옛 연인처럼 언제나 그곳에 우뚝 선채로 등대의 불빛을 쏘아대고 있지만 그 빛이 멀리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여름의 방파제는 전문 낚시꾼들로 가득해야 했지만 하늘에서 연일 검은 비만 뿌려대고 있어서 낚시꾼들은 투덜거리며 방파제를 모두 떠났다. 다른 소일거리에 시간을 소모하고 있어서 인지 비가 와도 늘 보이던 한 두 명의 조인도 보이지 않았다.


낚시를 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지만 비가 오고 있음에도 방파제가 끝나는 부분, 해안의 등대로 이어지는 절벽 밑에는 해녀물질을 하여 해산물을 건져 올려서 낚시꾼들과 관광객에게 그 자리에서 썰어 판매하는 해녀가 보였다. 해녀 옆에는 우산을 쓴 구청직원으로 보이는 정장차림의 두 남자가 해녀를 설득하고 있었다. 오늘은 등대에 올라오는 관광객이 없어요, 하는 말이 들렸다. 해녀는 구청직원에게 소리를 지르고 구청직원은 어서 철수하라는 실랑이가 한창 이었다.


라이쳐스 브라더스의 노래처럼 내리는 비 사이에서 마른번개가 떨어졌다. 구청직원들은 비가 지금보다 더 오면 해안은 위험하니 안전문제로 해녀를 데리고 올라가려 했다. 해녀는 꼼짝도 하지 않고 건져 올린 해산물은 다 팔고 갈 것이라는 기세였다. 그렇지만 그 기세는 곧 꺾였다. 자꾸 이러시면, 신고도 하지 않고 장사하는 불법영업으로 인해 앞으로 이곳에서 영영 해산물을 팔지 못하게 될 거다,라는 말에 해녀는 짐을 챙겼고, 구청직원들에게 욕을 하면서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 그들의 모습이 방파제에서 사라지고 나자 그야말로 방파제는 등대의 옅은 불빛과 멀리서 엄습해 오는 자줏빛 해무뿐이었다.


마동은 자신의 몸속에서 무엇인가 움직임의 느낌을 감지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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