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5
375.
어둠의 도트가 서서히 움직이려는 것일까.
마동의 몸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움직임은 반딧불은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것처럼 아주 아련하고 미미하게 움직였다.
어쩌면 그녀의 작은 마음일지도 몰라.
그것이 아니라면 어둠의 도트가 움직이는 것이리라. 감기의 초기증상처럼 불길한 느낌은 아니었다. 그 느낌이 무엇이 되었던, 변이가 불완전하게 시작되려는 시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달은 이틀째 보이지 않았고 비는 이틀을 쉬지 않고 내렸다. 레인시즌에 내리는 비라고 해도 기분 나쁠 정도로 많이 쏟아졌다. 마동은 그런 날의 지속이 자신에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 수는 없었다. 아마도 구름 저 너머에서 달과 태양은 한껏 심술을 부리고 싶어 할지도 몰랐다. 인간은 변덕이 심해서 여름의 뜨거운 태양을 싫어하지만 일주일만 비가 내려 해가 없어져 버리면 불안해하고 강박적으로 탈바꿈해서 태양이 보고 싶다며 기상청에 전화를 수없이 할 것이다. 마동은 이제 태양을 볼일이 없었다. 태양의 자외선을 받으며 피부를 검게 그을려가며 신나게 달리는 일도 없을 것이다.
방파제의 길을 걸어서 테트라포드에 올라섰다. 방파제에 서서 바라보는 저 먼바다는 자줏빛 해무로 거대한 도시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타협이 없는 자줏빛해무는 어두운 무엇인가가 만들어내는 공간을 이곳으로 몰고 와서 이쪽 세계를 덮어버리려 하고 있었다. 큰 줄기의 마른번개가 저 멀리서 바다의 한 곳으로 떨어져 내려 꽂혔다. 바다는 고통스럽게 있는 힘을 다해 자신에게 떨어진 마른번개를 받아쳐서 대기로 올려 보냈다. 마른번개가 자아내는 메마른 소리는 주위의 바다를 더욱 무섭게 만들었다. 바다는 죽어버린 호수처럼 검붉고 불안했다. 바닷속의 목 없는 생명체가 유조선의 모습들을 그림에서 지우개로 지우듯 먹어버리려 방파제가 있는 이곳으로 몰려들어 왔다.
가까이 다가오는 해무는 전기스파크처럼 번개의 마찰과 서로 다른 파동의 매질의 경계면을 지나치며 만들어 내는 번쩍거리고 큰 섬광을 뿜었다. 자줏빛해무는 하늘을 마치 가공의 모습으로 뒤바꿔 버리는 듯했다. 인공적인 구름에 인공적인 색을 뿌려 그 속에 새끼 좀벌레들을 집어넣고 그들이 성충이 되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하늘은 평소와는 몹시 달랐다.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 채 조금의 후퇴성도 없이 정중한 인사의 냄새를 풍기며 자줏빛해무는 방파제로 다가오고 있었다.
어린 시절 깊어진 겨울의 추운 밤, 방에는 작고 미미한 빛을 내는 노란 전구가 있었다. 노란 전구의 빛은 더 이상 온기도 없었고 밝지도 않아서 쓸모가 없다고 어머니가 버리려 했지만 없으면 허전했다. 그때 허전함은 마음의 허전함이었을까. 노란 전구는 온기를 잃어버렸지만 그 빛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조금씩 차올랐다. 미약한 노란빛은 어딘지 모르게 마동의 손을 잡아주며, 괜찮아, 괜찮아하고 말을 해주었다. 달이 전구를 대신하기 전에는 전구에게서 꽤 많은 의미를 전달받았다. 희미해진 노란빛은 온기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지만 마동은 미미하지만 노란빛이 무작정 좋았다. 두 손으로 감싸보아도 노란빛의 전구는 이제 전구라고 할 수 없는 모양새와 빛을 지니게 되어 버렸다. 마동은 온기가 식어버린 노란빛의 전구를 매일매일 바라보며 만졌다. 전구가 지니는 본질적인 면에서 벗어남을 느꼈다. 마동의 불안정한 마음이 안정으로 향해가고 있었다. 퇴색한 노란 불빛의 전구 덕분에.
그렇지만 쓸모없어진 노란 전구는 미미한 빛과 함께 쓰레기통에 끝내는 버려졌다. 지금은 그때 버려진 퇴색한 노란 전구의 빛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단지 그런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마음의 안정이 필요할지는 몰랐다. 어쩌면 마음의 안정보다 안정에 다가가려는 그 무엇이 필요할지 몰랐다. 그저 문득 이질적인 하늘을 보니 퇴색된 빛의 노란 전구가 떠올랐을 뿐이다.
마동의 눈앞으로 다가오는 거대한 자줏빛해무는 마음속의 두려움을 불러냈다. 자줏빛해무 속에 감춰진 무서운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마동은 두려웠다. 마음이 불안정하고 떨렸다. 아주 맑고 투명한 바다 위에서 보트를 타고 있다가 보트가 멈추었을 때 바닷속은 액정 속의 브라운관을 바라보듯 너무 깨끗하다. 깨끗함이 지나치면 서서히 무서움이 다가온다. 바다의 깊이가 눈에 드러나게 된다. 알 수 없는 바닷속이 주는 공포와는 다른 종류의 두려움이다. 10미터가 넘는 깊이의 바다가 환하게 다 보인다. 그 속은 너무 확실하게 깨끗하여 물고기가 한 마리도 살고 있지 않다.
그런 바다에 빠지는 상상을 한다. 꿈을 배회하듯 물속에서 몇 분을 견디다가 맑고 투명함이라는 것이 서서히 목숨을 앗아 가버린다. 바다가 지니는 일반론의 투명한 차원을 넘어선 깨끗함은 칼날처럼 날카롭고 예상외로 얼음처럼 차갑다. 차갑고 투명한 날카로움은 가장 먼저 눈을 아찔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 뒤로는 ‘혹시’가 조금의 ‘희망’도 무참히 짓밟아 버리고 비현실적이고 무서운 깊이로 나를 끌고 가 버리고 만다. 굉장히 깨끗한 바닷속에는 불사의 너구리가 있었고, 철탑인간도 있었다. 그리고 그 이상의 존재가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