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하늘보다 오늘의 하늘이 14

381

by 교관
A.jpg


381.


“나도 알아. 이제 알 것 같아”라고 마동은 그 틈에 자신의 조용한 목소리를 끼워 넣었다.


“당신의 말대로 전 어떤 문을 통과해서 당신 곁으로 이렇게 다가온 거라구요. 그 문은 우리가 알고 있는 지각의 문이 아니었어요.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드는 특수한 문을 지나서 당신에게 이렇게 온 거라구요. 그 문이 이제 없어졌다고 해도 전 상관하지 않아요. 이제 당신과 함께 당신이 통과하려는 저 문을 지나갈 거예요. 저 문을 지나서 문이 닫혀버린 후의 문제 따윈 생각하기 싫어요. 이미 많은 문제를 끌어안고 있어요. 제가 말하고 싶은 건 당신을 선택했다는 거예요.” 혹독한 추위에 위협을 당한 목소리였다.


여자는 남자의 말을 듣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널 위한 거야.라는 말 따위는 전혀 먹혀들지 않는다. 여자들은 왜 자신을 생각해 주는 남자의 마음을 몰라주는 걸까. 마동은 잠시 생각했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너무 조용했다. 그녀가 옆에 있는지 구분도 가지 않았다. 옆에 있는 는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눈물이라고 불리는 것이 그녀의 눈에서 하염없이 흘러나와 소리를 내며 뺨을 타고 내려가고 있었다. 눈물은 짧은 시간에 계속 흘렀다. 그녀의 작은 몸에서 그렇게 많은 눈물이 흘러나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는개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여러 가지 소리를 담고 있었다. 아득해진 시간의 소리, 그 속에 남겨진 희생의 소리, 뚜렷한 냉철함의 소리, 현실을 무너뜨리는 소리 그리고 고뇌와 기쁨의 소리까지 눈물 속에서 떨고 있었다. 내일이면 모든 것이 바뀔지도 모른다. 는개는 좀 더 괜찮은 세계에서 아름답게 살아가야 할 권리가 있다. 나 따위를 따라서 모든 것을 버린다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래전 너구리를 만나고 철길 위에서 친구들이 분쇄되었을 때 저마다 바뀌어있는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지 못해 사람들이 힘들어했으면 하고 바랐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차들이 거꾸로 달린다거나, 출근하는 사람들이 수영복만 입고 출근을 한다거나, 하늘 위로 물고기가 날아다닌다거나 하는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새로운 세상이 도래해 사람들이 적응하지 못했으면 하고 생각한 자신을 책망했다.


그렇지만 내일부터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마동은 는개가 팔짱을 끼고 있던 팔을 빼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닦지 않았다. 그대로 두었다. 대신 마동이 그녀의 눈물을 입술로 닦아 주었다. 눈물에서는 눈물 맛이 났다. 는개의 눈물 맛이다. 곧 그녀는 그녀만의 사려 깊은 미소를 얼굴에 지어 보였다. 바람의 저 끝에서 불어오는 미소.


그 미소는 그녀의 얼굴에서 떠나지 않았다. 눈물과 미소가 이렇게 잘 어울린다는 것에 마동은 놀랐다. 본디 오래전부터 미소는 는개의 얼굴을 온통 차지하고 있었고 태어날 때부터 이렇게 미소 짓고 있었던 걸요,라고 얼굴이 말하고 있었다. 마동은 는개의 미소를 보고 그녀와 함께 있고 싶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럼 그렇게 해요”라고 는개가 말했다.


흠.


비가 우산에 떨어지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그것은 마치 버브의 드러머가 쉴 새 없이 드럼을 두드리는 소리와 같았다. 는개는 마동이 들고 있는 우산 속으로 들어왔고 마동은 그녀를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는개가 마동의 품으로 파고들어 올수록 그녀의 향이 깊어졌다. 졸음이 뇌의 깊은 곳을 점령했고 그. 리. 움. 이 폐에 들어찼다. 그리움은 마동을 저 먼 기억 속의 그곳으로 데리고 가려했다. 불안정한 대기는 그 불안정함이 불안한 듯 크게 짖어대고 있었다. 마동은 는개와 나란히 서서 불안정한 자줏빛 해무가 가득한 대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검은 비가 하늘에서 떨어져 우산에서 요란한 소리를 만들었다.


“저건 은하계 43.5도에 위치한 잠불 행성에서 불어오는 바람이에요.” 요란한 소리 사이로 고요하게 는개가 말했다. 마동은 쏟아지는 졸음을 털어내며 그녀에게 얼굴을 돌리고 정말이야?라고 물어보았다.


“순전히 거짓말이에요. 저 불우한 자줏빛이 감도는 해무가 무엇인지 전 알지 못해요. 설령 은하계의 6 행성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라 할지라도, 그냥 환경오염에 불어오는 바람이라고 해도, 그저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적인 바람이든, 무슨 바람인지 전 알지도 못하고 어떤 바람이라 해도 상관없어요. 당신과 함께 있으니 헤쳐 나가지 않겠어요?” 그녀도 졸음에 겨운 듯한 소리로 말했다.


정말 이런 때에 졸음이라니.


마동은 졸음이 몰려오는 자기 자신이 허무했지만 어둠의 도트를 멈추게 하려면 어떨 수 없는 선택이었다. 졸음은 마키아벨리의 군주적으로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 내렸다. 자 이제 당신은 하나, 둘, 셋에 잠이 듭니다. 하고 망치로 머리를 때려서 잠이 들게 할 만큼 강제적인 졸음이었다. 이렇게 격한 졸음을 경험해 본 적이 없어서 마동은 신기하기도 했다.


[계속]

이전 23화어제의 하늘보다 오늘의 하늘이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