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29.
그녀는 그렇게 자신을 위로했다. 마음에 남아있는 불편하고 불안하고 꺼끌꺼끌한 찌꺼기는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엘리베이터 앞을 떠나서 계단으로 올라갔다. 계단도 깔끔하게 청소가 잘 되어 있었지만 담배 냄새가 미미하게 배어있었다. 그 냄새가 오점처럼 계단의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그녀는 단 하나, 그에게 위로받고 싶었다. 지금은 그 하나의 위로에서 벗어난 위로가 필요했다.
사과나 부탁은 필요치 않았다. 2층으로 올라가서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발을 한 발 디뎠다. 3층의 복도로 통하는 문을 열려고 하는데 위층의 계단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딘가 일그러지고 짜부라진 목소리가 그 사람의 목을 거쳐 입을 통해 힘겹게 흘러나왔다. 그녀는 평소에 들을 수 없었던 그의 목소리를 향해서 걸었다. 조용하게 한 층 더 올라갔다. 계단의 난간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발가락 끝에 힘을 주어 발걸음 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조용하게 계단을 밟았다. 밑에서 올려다본 그녀는 잠시 동안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는 4층의 계단참의 벽에 등을 기대고 있었고 누군가가 그의 입술을 빨고 있었다. 누군가의 손은 그의 사타구니를 더듬고 있었다. 그는 눈을 감고 그 상황을 즐기고 있었지만, 입으로는 형언할 수 없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얇은 틈으로 새어 나오는 바람 소리 같기도 했고 이어서 빨래를 쥐어짜는 듯한 소리를 냈다.
그녀가 생각하는 정합성에서 완벽하게 분리된 소리였다. 불온한 소리, 그것이었다. 그 소리는 그녀가 지금껏 그에게서 들어보지 못한 까끌까끌하고 이상한 소리였다. 그의 앞에서 그의 사타구니를 더듬고 있는 사람은 분명 그와 함께 일하는, 나이가 좀 더 많은 직원이었다. 두 사람은 현장에 나갔다가 들어왔는지 회사 점퍼(여름용 반소매)를 입고 있었다. 상대방은 그의 회사 상사였으며 일전에 그가 그녀에게 소개해준 적이 있었다.
“이봐, 인사해. 우리 회사 과장님이야. 아주 멋있으신 분이지. 아내분도 무척 미인이시고 따님도 너무 귀여워. 예쁜 꼬마 숙녀를 위해 산 곰 인형이야.”
그녀는 대책 없이 다리에 힘이 풀렸다. 다리가 풀어지면서 무릎이 접히고 쿵 하는 소리를 냈다. 그와 과장은 놀라서 그녀가 있는 쪽을 쳐다보았다. 그와 과장의 눈과 마주친 그녀는 자신이 오지 말아야 할 곳에 와서, 보지 말아야 할 광경을 목격했기에 뒤에 취해야 할 행동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마음속에서 빨리 건물을 나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모든 의식의 세포들이 일제히 빠져나왔다. 나와서 앞만 보며 달렸다. 시야각이 60도 정도 되는 것 같았다. 눈앞에 보이는 풍경, 딱 그만큼만 보였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도로에는 자동차들이 뿜어내는 열기가 숨을 턱턱 막히게 했다.
밤은 어김없이 찾아왔고 사람들은 여름밤의 열기를 맥주로 식히고 있었다. 이미 술에 취한 이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서 들리지도 않는 누군가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술집 안에는 많은 사람이 대부분 들어차 담소를 나누고 있는 모습들이 스치듯 지나갔다. 그들의 표면적인 모습에서 전부 하나씩 안고 있는 고민이나 걱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모두 즐거워 보였다. 웃음을 한가득 지니고 있을 뿐이었다.
하늘은 페인트를 쏟아부은 듯 진실이 왜곡된 석양이 드러났다. 붉은색을 보니 그녀는 가슴에서 피가 나오는 것 같았다. 그때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눈물을 그동안 꽤 많이 흘렸음에도 처음 흘리는 눈물처럼 마구 흘러내렸다. 사람들이 흘깃흘깃 쳐다봤지만, 그녀는 어깨를 들썩이며 울음을 터트렸다.
그날 늦은 밤, 그녀의 방으로 그가 찾아왔다. 두 사람은 그녀의 방에서 마주했다. 그녀는 침착하게 그에게 커피를 끓여 주었고 그는 조용하게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녀의 방도 그의 방처럼 덥기는 매한가지였다. 오래된 선풍기가 두 시간째 더운 바람을 쏟아내며 머리를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왔다 갔다 할 뿐이었다. 여름밤의 더운 공기는 그들의 무게를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선풍기가 자아내는 프로펠러의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무더운 여름의 늦은 밤, 이른 새벽의 시간에 그와 그녀는 자기의 작은방에 앉아서 뜨거운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녀는 그에게 등을 보이며 침대에 팔걸이를 하고 앉아있었고 그는 회사의 여름용 점퍼, 아까 그녀가 봤던 옷차림 그대로 앉아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