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30.
“어째서 이렇게 되어 버린 걸까요?”
그녀의 물음에 그는 답을 찾는 것 같았다. 역시 틈이 길었다.
“글쎄, 어째서 이렇게 되었을까. 신은 우리를 미워하나 봐.”
“신을 탓하지 마세요. 신은 우리에게 관심조차 없을지도 몰라요.”
침착한 그녀는 침착하지 못하게 맥주를 마셨다.
“만약, 제가 당신을 포기할 수 없다면요?”
“견뎌내지 못할 거야.”
“저 생리가 멎었어요.”
여름의 밤은 짧았다. 그리고 무거웠다. 또 무더웠다. 공기는 질척였고 숨을 쉬면 그 무게가 목 안으로 훅 밀려들었다. 계절은 머물러 있지 않았다. 계절은 한 번 왔다가 한 번 죽어버리고 사라지고 나면 어김없이 다시 태어났다. 배고픈 탐험가가 탐험을 위해 앞으로 가듯 계절은 어느새 몸에 닿았다가 저만치 멀어졌다.
방학은 끝이 났고 자취촌을 시끄럽게 울어대던 매미들도 사라지고 학생들은 대학가를 떠들썩하게 했고 담배를 피우고 책을 읽으며 캠퍼스를 누비거나 강의를 듣고 서로를 비난하거나 사회를 욕했으며, 현 기득권과 국회의원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잔디에 앉아 술을 마시다가 경비에게 쫓겨나기도 했다. 학교는 격렬한 몸부림을 겪은 뒤라 어떤 욕이나 술자리도 작은 강아지의 움직임처럼 낭만적으로 보였다.
그 과정에 로맨스가 있었고 동아리들은 선술집이나 호프집으로 모여들어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워댔다. 술집의 한쪽에 문과생들이 앉아서 한창 릴케와 니체에 관해서 이야기 중이었다. 둘 다 태생이 같은 실존주의였다. 그럼에도 니체와 릴케의 세계는 달랐으며 문과생들은 그 부분에 대해서 신랄하게 토론 중이었다.
“백색도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자신과 빗대어 말했잖아. 우린 릴케를 닮아야 해.” 이런 말들이 오고 갔다. 도무지 왜 니체와 릴케가 저토록 토론의 대상이 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것이 저들에게는 지금, 이 순간 중요한 문제이다. 누구나 타인이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일들이 나에게는 중요하다.
담배 연기는 학생들의 소란스러운 말소리와 함께 술집의 대기에 흩뿌려졌고 누군가에게 사랑을 배신당한 어떤 이는 술집 바닥에 고개를 숙이고 구토했으며 일행은 그 학생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서 기운을 내리고 등을 두드렸다. 등을 맞은 학생은 아프다고 웅얼웅얼했지만 등을 두드리는 사람도 술에 취해 힘 조절이 어려웠다.
한 번의 파도 같았던 시위를 빼면 작년의 이맘때와 학교 분위기는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그대로였고 앞으로도 그대로일 것이다. 단지 그녀만 야위었다. 여름 방학이 끝이 나고, 나는 다른 지역의 집에서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어느 것 하나 바뀌지 않는 자취방은 그 냄새를 유지한 여름날을 견뎌왔다. 나는 옷도 몇 벌 되지 않았다. 더블 테크에 카세트테이프를 넣었다. 하지만 부서졌던 더블 테크는 억지로 수를 해서인지 잘 나오지 않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