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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Nov 28. 2024

그리운 날도 사라질 날도 31

소설


31.


핑크 플로이드의 ‘타임’이 듣고 싶었지만, 더블 테크의 버튼만 만지작거렸다. 웅장하게 디잉, 디잉하며 시작하는 그들의 형용할 수 없는 음악을 듣고 싶었다. 그들의 음악을 듣는다면 시간이 그대로 맞을 것만 같았다. 술을 마시고 싶었지만, 돈이 없었다.


 침대에 드러누워 천장을 봤다. 천장의 벽지 무늬가 어쩐지 좀 달라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나의 착각일 것이다. 눈을 흐리게 하고 한 곳을 뚫어져라 쳐다보면 마치 무늬가 조금씩 움직이는 것 같다. 구름이 흘러가듯이.               


 그런 식으로 하루하루가 지나갔고 학교의 생활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나는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기류를 조금 눈치챘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여전히 선배의 집에서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시고 의상하고 건축에 대해서, 술집의 테이블에 앉은 문과생들이 니체와 릴케에 대해서 떠드는 것 못지않게 떠들었다. 그렇지만 이야기가 늘 겉돌고 있다는 것을 나도, 그녀도, 선배도 알고 있었다. 단지 누구도 겉도는 이야기라고, 그러니 제대로 된 이야기하자고 하지 않았다. 그 사실 역시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렇게 움직이지 않고 방 안에서 책을 읽는 게 삶의 일부분이 아니라 삶 그 자체인 거 같아”라며 선배는 웃으며 말했다. 여전히 호탕했고 걸걸했다. 계절의 바람이 한차례 몰아쳤다. 도심 속에서는 그걸 잘 알 수 없지만 자취촌에는 쓸쓸한 가을바람의 냄새가 일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야외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기말고사 기간의 학교에 가서 시험을 보았다. 나는 건축사 수업만 A 학점을 받았고 정작 중요한 구조역학이니 설계, 설비나 공법에 관한 성적은 바닥을 기었다. 졸업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어째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세상에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들뿐일까.


 기말고사는 산발적으로 시작해서 산발적으로 끝나기 때문에 먼저 끝낸 학과생들은 자취촌을 떠나서 긴 겨울을 따뜻한 곳에서 나기 위한 준비를 했다. 그렇지 않은 학생들은 자취촌에서 따뜻하게 나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대비했다. 에너지를 비축하기 위해 자취촌을 떠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많은 학생이 빠져나갔어도 자취촌은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학생들에게 작은 세계가 이루어졌다. 나도 겨울이 되면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는 자취방을 떠나 집으로 간다. 냉방이 전혀 되지 않아 여름 방학에 집으로 간 것처럼.            

   

 기말고사 시작되기 며칠 전 나는 ‘숲’에서 그녀와 만나 오랫동안 이야기를 하거나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고 계란말이를 앞에 두고 소주잔만 비웠다. 그녀의 작고 차가워진 손을 오랫동안 잡고 있었으며 손으로 그녀의 슬픔과 아픔을 느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리거나 술을 마시거나 했다. 늘 환하게 웃고만 있던 그녀가 그날은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는 모습은 안타까웠고 연민스러웠다.


 나는 그 안타까움에 대처하는 방법을 전혀 알지 못해서 나 자신을 책망하고 있었다. 영어로 된 노래만 흘러나오던 숲에 장국영의 노래가 나왔다. 촉촉함을 넘어선 레슬리의 목소리가 숲에 가득 들어차기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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