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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n 09.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116

5장 2일째

116.

 마동은 이스터 석상의 약간 기울어진 그의 턱을 보며 그곳을 벗어났다. 어제의 만두가게를 지났다. 만두가게에는 더 이상 만두 모녀도 보이지 않았고 다른 손님들도 보이지 않았다. 주인도 보이지 않았고 테이블 위에 누군가 만두를 먹었다는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완벽하게 마동을 마지막으로 손님이 뚝 끊어진 듯 보였다. 만두가게에는 온전히 만두가게의 자리만 존재해있었다. 만두가게를 지나고 해물탕 집을 지나 국밥집을 지나서 골목을 거쳐 완구 도매점 앞에 도달했다. 마동은 힘이 들었다. 숨이 찼다. 유난히 태양이 뜨겁게 이글거렸다. 몸에 남아 있는 힘이 전부 빨래를 쥐어짜듯 다 빠져나가 버린 것 같았다.


 완구 도매점 앞에 의자는 보였지만 완구 도매점 사장은 보이지 않았다. 마동은 완구 도매점 안을 들여다보았다. 도매점은 하루정도 시간의 흐름 동안 무엇인가 달라져 있었다. 눈으로 들어오는 모습은 달라지진 않았지만 어떤 흐름 내지는 도매점의 사상적인 부분이 다르게 느꼈다. 언어라는 건 시각적으로 들어온 피사체를 뇌의 한 구간에서 잘 반응시켜 입으로 꺼내는 소리지만 지극히 일그러진 관념일 뿐이다. 입으로 언어가 나오는 순간 생각과는 달라지거나 생각처럼 나오지 않거나 생각보다 많이 나왔다. 생각만큼 언어가 표현되지 않는다. 달라진 도매점 안의 분위기를 언어로 설명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어떤 식으로든 마동은 도매점의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을 말로 내뱉어보려고 했지만 할 수 없었다.


 마동은 주인에게 인사라도 하고 싶었다. 앞에 서서 시계를 보며 주인을 기다렸지만 나오지 않았다. 도매점 앞으로 가서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도매점 안을 메우고 있는 것은 죽어버린 시간의 공간이었다. 그것은 분명 죽은 시간이 도매점 안을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여름이지만 때가 낀 얼음처럼 차갑고 어두운 시간의 관념이 어제와 다르게 도매점 안 이곳저곳에 흡착되어 있었다. 이제 누구도, 어떤 사람도 이곳의 완구 도매점을 찾아오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느꼈다. 이제 아무도 이곳을 찾아서 오지는 않는다. 서글픈 일이다 그것은 분명. 주인을 기다리다가 포기하고 계단으로 올라갔다. 태양은 마동의 몸에서 땀을 빼내려고 이글거렸지만 그럴수록 마동은 더 한기를 느꼈다. 땀은 한 방울도 나지 않았다. 완구 도매점 안의 공기를 느낀 후 한기는 더욱 심했다.



 간호사는 여전히 분홍 간호사복을 입고 분홍색의 간호사모를 쓰고 분홍색의 매니큐어를 바르고 길쭉한 손가락으로 어제처럼 난 다 알아, 하는 표정으로 마동에게 대기실에서 조금 기다리라고 했다. 포르말린 냄새가 났다. 어제는 분명히 포르말린 냄새 따위는 나지 않았다. 이 병원에는 오늘 포르말린 냄새가 확실하게 난다.


 어째서 일까. 포르말린 냄새는 세상에서 사라졌다. 어제는 포르말린 냄새가 나지 않았는데 오늘은 왜?


 대기실에는 어제보다 적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노인이 두 명 앉아있을 뿐이었다. 노인들은 포르말린 냄새 같은 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얼굴을 하고 앉아있었다. 그들에게서 웅웅 거리 거나 이명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들의 얼굴은 환자치고 평온해 보였다. 마치 병원에 마음을 안정시키려고 오는 것처럼 보였다. 어제는 연령별로 환자가 있었지만 오늘은 어쨌든 환자가 거의 없어서 마동은 다행이라 생각이 들었다.


 분홍색의 간호사에게 열을 잴 수 있게 겨드랑이를 내주었다. 병원은 어딘지 모르게 역행하고 있었다. 요즘은 대부분 전자체온계로 열을 잰다. 홀로그램으로 신분까지 기입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깊게 따지며 생각하기에는 마동의 몸 상태는 좋지 않았다. 더 이상의 생각은 않기로 했다. 속이 거북하고 안이 꽉 찬 느낌이고 열이 오르는듯했지만 회사에서 체온계로 재어 봤을 때 온도가 일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앞 서 병원에서 열을 쟀을 때는 체온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마동은 이 병원에 오기 전에 다른 곳에서 열을 쟀다고 말했다. 분홍 간호사도 알았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마동의 겨드랑이 밑으로 체온계를 밀어 넣었다. 열을 잰 간호사에게 답을 기다렸지만 간호사는 미소만 띠며 분홍색의 매니큐어가 칠해진 긴 손끝으로 체온계를 빼내갔고 앉아서 잠시 기다리라는 손짓을 할 뿐이었다.


 잠시 후 간호사가 마동을 불렀고 분홍 간호사는 진료실로 마동을 안내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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