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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n 10.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117

5장 2일째

117.

 포르말린 냄새.


 “그래 좀 어떠세요?” 의사는 마동에게 물었다. 여자들에게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얼굴을 지닌 의사가 마동과 불과 60센티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 마동의 눈동자를 쳐다보며 물으니 마동은 잠시 취해야 할 행동을 정하지 못했다.


 “감기 증상이 좀 심해진 듯합니다. 콧물이 난다거나 침을 삼킬 때 힘든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오한이 오고 식욕은 저 밑바닥에 붙어버려서 나올 생각을 좀체 하지 않습니다. 오한이라는 것도 저녁이 되고 밤이 오면 그러한 증상이 없어집니다. 회사에 출근하여 책상에 앉아있으면 더욱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처음 조퇴를 하고 병원을 찾아왔습니다. 어제는 진료를 받고 회사로 들어갔지만 오늘은 바로 집으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감기로 인해서 조퇴를 하다니 저 또한 조금 놀랐습니다. 장염 증상인지 어떤 현상인지 속이 콕콕 찌르는 것이 심하고 울렁거리며 구토가 나올 듯합니다.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아침에는 너무 늦게 일어났고 회사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동안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몸살이 심해지면 잠만 자거나 불면증이 온다고 하는데 전 두 가지가 함께 온 것 같습니다. 밤에는 도통 잠이 오지 않아요. 하지만 이렇게 낮이 되면 마치 수면제 한통을 다 먹은 것 같습니다.” 마동은 틈을 두었다.


 “그리고 이명이 들립니다. 머리를 어딘가에 세게 박고 나면 소리가 한 곳으로 응집되어서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그런 현상이 일어납니다. 기잉하는 외계소리만 들리는 경우처럼 여러 가지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없고 웅웅 하는 이명이 들려요. 이명이 들리는 것과 동시에 몸에 고통이 찾아옵니다. 고통을 아프다, 하는 말로 한꺼번에 정의할 수가 없어요. 눈이 튀어나올 것 같고 손발 끝이 날카로운 무엇인가에 잘리는 고통이 느껴졌습니다. 머리를 힘이 좋은 흑인이 졸라대는 것 같은 아픔처럼 느껴졌습니다.”


 의사에게 마동은 자신의 증상을 최대한 빠트리지 않고 세세하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여자들에게 호감을 불러들일만한 얼굴을 가진 내과 의사는 푹신한 의자에 몸을 파묻고는 깊은 눈으로 마동을 바라보았다. 거짓을 말하지 않았음에도 의사의 시선에 마동은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었다.


 “속에서 불이 타오르는 느낌이 듭니다. 모든 장기들이 들끓어서 전부 타버릴 것처럼 몹시 뜨거운 느낌이에요. 속이 아프다거나 하는 것보다 몹시, 아주 뜨거운 것 같습니다. 펄펄 끓는 물을 한 통 마신 기분입니다”라고 마동은 힘겹게 말을 이었다. 의사는 시선을 마동의 얼굴에서 차트로 옮겨갔다. 어쩐지 이 의사 앞에 오니 발가벗겨진 기분이 드는 동시에 마음이 편해졌다. 다시 말을 이었다. “근육통이나 허리가 당긴다든가 하는 증상도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앞에 말한 증상이 실제로 내가 앓고 있는 건지도 잘 알 수가 없습니다. 마치 다른 이가 앓는 몸살을 그저 내가 잠깐 느끼는 것 같습니다. 몸 안의 열이 굉장히 뜨겁게 오른다는 느낌이 들지만 밤이 되면 기적처럼, 그러니까 모세가 바다를 가르듯 사라져서 조깅을 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듯이 말이죠. 오늘 밤에도 지금 증상이 사라지고 조깅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의사는 볼펜으로 차트에 무엇인가 증상을 휘갈겨 적었다. 꾸준하게 적었다. 마동은 이 병원에 이틀 왔을 뿐인데 차트에는 마치 20일 동안 병원에서 진찰을 받은 환자의 차트처럼 흘림체의 영어가 많았다.


 “고마동 씨는 일반인보다 체온이 많이 떨어져 있습니다.” 의사는 차트를 한 번 쳐다보고는 천천히 얼굴을 들어 마동에게 눈길을 옮겼다.


 “그리고 어제 처방해준 약은 하루분인데 다 드시지 않으셨죠?”


 마동은 한 첩은 먹지 않았다. 그렇다고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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