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날의 멸망 3

소설

by 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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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동안 너무 이기적으로 살아왔다. 그것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회사에서는 직원들을 위해 전문의에게 상담의 길을 열어 놨다. 정보화시대의 한가운데로 접어든 이 시대의 중심에 우뚝 서 있는,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를 죽 다니려면 정신이 올바른 모양새를 갖추고 있어야 하지만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기반’과 비슷하다. 흔히 사람들은 기반을 잡는다는 말을 한다. 기반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기본반찬의 준말일까. 그렇다면 끼니때마다 기본반찬을 먹으며 생활하기가 쉬운 일일까.


회사는 그간 동종업종 간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했고 직원들은 사내에서 또 살아남아야 했다. 그러려면 그만큼의 노력이 가해져야 하고 그 노력 속에는 일반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해들이 얽혀 있었다. 인간은 유기체다. 그 점을 나는 시시때때로 각인하고 있다. 스트레스의 출발은 여러 사람이 동일선상에 있다고 해도 도착지점에서 나타나는 결과는 제각각인 것이다. 각각의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축적하거나 방향성을 잃은 채 배설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회사는 직원들의 일탈을 예방하기 위해서 연계한 정신과전문의에게 정기적으로 모든 사원들의 정신적인 문제를 상담해주고 있다. 상담은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며 각자의 고민과 상담시간은 본인이 느꼈을 때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회사생활이 불편하다고 생각이 들면 전문의를 찾아가서 상담을 받으면 되는 것이다. 회사 내에서는 서로에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많은 직원들이 상담을 받고 있으며 그중에는 꽤 심각한 수준의 스트레스로 고통을 받는 직원들도 있는 것으로 안다. 나는 아직 상담자의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않고 있었다.


중학교 때 이 도시로 흘러 들어와서 지금까지 생활하고 있지만 아직 스트레스 때문에 상담의 필요성을 덜 느끼고 있는 편이다.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그것이 스트레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 때문에 생활이 불편하거나 그것으로 인해 끊임없이 뇌를 창으로 찌르는 고통을 느껴본 적은 없었다. 그렇지만 나도 언젠가는 상담을 받아봐야겠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다. 그 시기가 단지 언제인지 확정 지어지지 않았을 뿐이다. 나에게는 그것 이외에 나를 따라다니는 잠재적 고통이 있다. 분명 정신과상담은 나에게 어떤 식으로든 필요하다고 나 자신에게 말하곤 했다.


나는 기억이 상실된 부분이 있다. 고등학교시절에 나는 어떠한 계기로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고 입원한 경위에 대해서 그 일을 기억해내지 못할뿐더러 어린 시절의 어떤 부분에 대한 기억도 하지 못하고 있다. 고등학교 때 입원을 하여 눈을 떴을 때부터 기억은 생생하지만 무슨 일로 병원에 입원했는지 알지 못한다. 그때 당한 사고와 어린 시절의 고향에서의 기억이 조금씩 상실되었는데, 그 부분이 아직도 복구가 되지 않고 있다. 사고를 당했을 때 고향에 머물렀던 어머니가 병원으로 와서 나의 간호를 맡았다. 병원에서 눈을 뜨고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았는데 마치 몬스터의 얼굴 같았다.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부어있었고 두드려 맞아서 폐허 속의 부서진 담벼락처럼 제멋대로 멍이 들어 있었다. 눈이 부어서 눈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를 단춧구멍이 겨우 거울을 통해 보였다. 거리감이 상실되어서 손으로 거울을 어느 지점에 대고 봐야 하는지 거리 측정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제게 무슨 일이 있었죠?” 나는 어머니에게 질문을 했지만 어머니는 대답해 주지 않았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는 일도 없었고 의사에게 매달려 살려달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덤덤하게 나의 옆에서 낫기를 바라며 고요하게 간호를 할 뿐이었다. 나는 이후 의사에게 직접 들었지만 사람들에게 구타를 당했다는 이야기였다. ‘누군가들’에게 구타를 당했다는 말은 여러 명이라는 말이다. 누가 나를 이토록 무자비하게 때렸을까. 나는 누군가에게 구타를 당할 만큼 어떤 짓을 벌이면서 지내지 않았다. 친구도 거의 없었고 만들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불량배들에게 그렇게 당했을 거라는데 본 사람도, 신고를 한 사람도 없었다. 시간이 좀 더 지나서 의사는 여러 명이 때렸다고 해서 이런 식의 멍이 드는 경우는 드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전혀 기억이 없다. 뇌의 자기 공명 단층촬영을 통해서 머리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른 곳도 뢴트겐으로 촬영해 본 결과 이상이 없다는 것으로 나왔다. 앞으로 살면서 어떤 일이 뇌의 어느 구간에 영향을 끼치는지 모르겠지만 이상이 없다는 뇌 생리학 전문가의 소견이 있었다. 그렇다면 믿을만했다. 그렇지만 현재에 와서 생각해 보니 어린 시절이나 고등학생 때, 당시의 기억이 소멸된 것으로 보아 그 의사의 소견을 철저하게 믿어서는 안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당시에 머릿속에 대해서 좀 더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구체적인 소견을 들어야 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후회가 가끔 들기도 했다.


후회라는 것은 건강한 후회가 있고 그렇지 못한 후회가 있다고 키가 작고 머리통이 큰 심리학자가 말했다. 그 당시에 확실한 것은 어머니의 변화였다. 어머니는 내가 병원에 입원하는 시기를 기점으로 하여 어머니를 지탱하고 있던 어떤 것이 누락되었다. 내가 병원에 입원함으로써 어머니에게 입력되어야 할 어떤 부분이 머릿속에 기입되지 못하고 그대로 빠져나가면서 원래 지니고 있던 자아에게도 영향을 끼친 모양이었다. 어머니의 마음과 머릿속이라는 대지에 세워놓은 건물이 그대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건물 안의 집기들만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이 아니라 건물 자체가 하룻밤 새 그대로, 몽땅, 흔적도 없이, 소리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어머니의 변화는 내가 입원하는 시점에서 시작되었는지 몰라도 내가 병실에서 눈을 뜬 그때부터 어머니의 변화를 감지했다.


평소에도 조용한 사람이었지만 명절에 찾아가서 보는 어머니의 모습은 한 곳을 응시하는 시간을 많이 가진다는 것이다. 티브이를 보는 경우도 드물었고 책을 읽지도 않았다. 정해지지 않는 무엇인가를 골몰히 생각하는 듯 보였지만 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깊이라는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지정되지 않은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어머니를 부르면 그제야 얼굴 가까이 있는 나를 알아채고 식사준비를 하곤 했다. 전화통화를 하면 안부를 묻고 그날의 이야기를 하지만 어딘가 겉도는 이야기라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어머니의 마음의 누락을 가져왔는지 아직도 알지 못한다. 앞으로도 알지 못할 것이다. 어머니의 건강검진도 나쁘지 않았다. 노안으로 나타나는 몇몇의 징후를 제외하고는 장기라든가 대부분의 기능은 아직 말짱했고 치매증상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어머니의 마음을 누락시킨 그 무엇이 내 기억까지 가져가 버린 것이 아닌지 나는 의심을 했다. 그것과는 별개로 나는 그 뒤로 제대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래서 아직 정신과상담을 미루고 있는 형편이지만 언젠가는 상담을 받아 보리라는 마음을 늘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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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조깅코스에 보이는 저 여자의 모습은 그동안 정리가 안 되어 있는 마동의 머릿속을 더욱 엉망으로 만들어버리기에 충분했다. 마동은 전문의와의 상담을 ‘언젠가는’에서 ‘내일’로 바꾸었다. 비에 젖지 않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몸에 무슨 장치를 하지 않고서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를 맞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에서 벗어나도 너무 이탈한 궤변이었다. 논리라는 관점이 전혀 없는 일이다. 레인시즌에는 비가 많이 온다. 비가 떨어지면 세상은 비에 젖는다. 여름나무가 젖고, 여름 나뭇가지가 젖고, 여름나뭇잎이 젖는다. 땅바닥이 젖고, 땅바닥의 흙이 비에 젖는다. 해변이 젖고 바다 위의 배가 비에 젖는다. 비가 오면 모든 것이 비에 젖는다.


마동은 지금 상황을 다시 한번 되짚어보았다. 비가 오면 비에 젖는다는 것은 논리다. 그것이 사실이고 정론이며 공식이고 상식인 것이다. 그동안은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시간적으로 현재라고 불리는 지금은 논리에서 벗어난 일이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문득 마동은 기억이 상실한 부분과 어머니의 누락된 부분과 저 여자는 상관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동은 지금 자신의 정신적인 어떠한 부분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해 볼 필요가 있었다. 고등학교 때의 사고로 인한 정신적인 후유증이 이제야 나타난다던가,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 뇌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했지만 이후 사회생활을 하면서 복잡한 인간관계에 얽히면서 뇌의 여러 구간이 역할을 하지 못하고 마동 자신이 인지하지 못하는 특정 부분에 대해서 타격을 입은 것은 아닐까 의심을 했다.


'그렇다면 그것이 왜 하필 오늘이란 말인가. 그리고 이런 식으로 눈앞에 나타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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