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코미디의 정수
라디오에서 헤릭 코닉 주니어의 잇 헷 투 비 유가 나온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주제곡으로 헤릭 코닉 주니어의 음악은 로맨틱 코미디의 정수를 보여주는 이야기와 아주 잘 맞았다.
이 영화가 재미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시나리오 때문이다. 그 시나리오를 쓴 사람이 노라 애프론이다. 노라 애프론은 이후 감독으로 데뷔하여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과 ‘유브 갓 메일’을 감독한다. 그리고 이 세편의 영화에 전부 맥 라이언이 주인공이다. https://youtu.be/_UnQOfPwZfs?si
아쉽게도 노라 애프론은 2016년 6월, 71살의 나이로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죽었을 때 가장 눈물을 많이 흘린 사람이 맥 라이언이었다.
로맨틱 코미디의 장을 열어놓은 감독 ‘노라 애프론’의 삶은 아주 흥미롭다. 김혜리 영화기자에 따르면 영화사를 정리할 때 노라는 언급되지 않을지라도, 미국인이나 우리들 개개인이 소장하고픈 영화를 꼽을 땐 그녀의 영화가 추억을 만들어줘서 가슴에 길이 남을 것이라 했다. 노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영화판에 뛰어들었다. 그녀가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시나리오를 완성한 때가 47살이었다. 노라의 집안은 대부분 작가 출신이다.
부모님 모두가 시나리오 작가다. 게다가 노라 애프론의 딸 넷이 전부 작가 내지는 소설가다. 노라는 저널리즘의 기자로 시작해서, 백악관 인터뷰도 하고, 우편물 정리도 하다가 마침내 뉴욕포스트 기자로 칼럼니스트 글을 쓰다가 시나리오를 쓰게 되었다.
그런 노라의 남편이 누구냐? 바로 워터게이터 사건을 파헤쳐 정의로운 기자가 된 두 명중 한 명인 ‘칼 번스타인’이었다. 칼은 미국인들에게 투철한 기자로 추앙받으며 미국의 영웅이 되었지만 노라에게는 불행이 닥쳐온다.
칼은 노라 몰래 바람을 피운다. 노라에게는 들키지 않는데, 신문에 난 기사를 보고 노라는 칼이 바람을 피웠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는다. 개인적으로는 죽이고픈 남편이지만 미국인들에게는 영웅의 기자였다. 미국 사회의 정의가 살아있다는 걸 알게 한 칼의 개인사쯤은 묵살되기 마련이었다. 가정의 일탈이 기자의 투철한 사명의식을 깎아내릴 수는 없었다.
칼 번스타인을 연기한 더스틴 호프만의 영화도 있다. 노라는 칼에게 복수하기 위해 칼을 겨냥한 소설을 써서 발표한다. 그 누가 봐도 소설 속의 추악한 주인공은 칼 번스타인이었고 칼은 노라를 고소하네 마네, 하기도 했다.
노라가 처음으로 시나리오로 인정받은 영화가 ‘실크우드’였다. 메릴 스트립과 셰어가 나온다. 셰어는 의학을 힘을 엄청 받았다고 하지만 젊은 셰어의 모습을 보면 지금이나 얼굴이 비슷하다. 실크우드는 핵발전소의 비밀을 폭로하는 영화로 메를 스트립의 연기가 아주 좋다.
시나리오를 죽 써 오던 노라가 감독으로 전향한 이유는 부모님 때문이었다. 작가인 부모님은 둘 다 알코올 중독자였다. 그들은 할리우드에서 시나리오로 삶을 순탄하게 헤쳐나가기가 힘들다고 늘 말했다. 결심한 노라가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의 메가폰을 잡음으로써 감독으로 인정을 받는다. 그때 그녀의 나이 51세. 정체기를 맞이한 로맨틱 코미디는 98년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을 다시 조합시켜 ‘유브 갓 메일’을 만든다.
참고로 한국의 ‘접속’이 97년에 나왔으니 비슷한 내용의 한국판이 먼저 나온 셈이다. 당시는 신선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였다.
노라의 유작이 2009년 ‘줄리 앤 줄리아’였다. 에이미 아담스와 메릴 스트립이 주인공이다. 현재의 줄리가 과거의 줄리아의 요리를 따라 해서 블로그에 올리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영화는 정말 캐릭터의 따뜻함이 갓 끓여낸 카푸치노 같다. 침체의 성장이 아니라 인생의 성장기를 느끼고 있다면 도움이 되는 영화가 ‘줄리 엔 줄리아’다. 나이를 먹어가며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가지게 만든다.
노라는 직접 시나리오를 쓰면서 여배우들에게 탐나는 캐릭터를 만들어준 감독이다. 여배우를 주인공의 모습에서 떠나 영화 속 진짜 여자로 만들어준 감독 노라 애프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