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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폴리스

by 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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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가 할머니의 품에 안겨 할머니의 가슴을 만지면 안온하고 포근했다. 동시에 불안했다. 불안은 늘 사람을 옥죈다. 이제 더 이상 할머니의 품에 안기지 못할 거라는 걸 알면 더더욱 그렇다.


마지는 미국의 음악을 좋아하고 내지르고 싶지만 차도르로 온몸을 가리고 혁명기를 가진다. 마지는 유학을 가지만 그곳에서도 이방인으로 눈초리를 받는다. 마지는 늘 아프다. 결국 이란으로 돌아오지만 이란을 지배하는 무섭고 강압적인 종교가 그 힘으로 아무것도 못하게 한다. 마지는 결혼을 하지만 실패하고 다시 이란을 떠나게 된다.


이란은 16년 동안 아픈 격동을 맞는다. 그 시기를 마지의 눈으로 들여다본다.


우리에게 이야기가 필요한 것은 이야기를 통해 어른들은 아이들에 대해서 알게 되고, 우리들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뉴스기사나 논문으로는 타인에 대해서 느낄 수 없다. 오로지 이야기를 통해야 한다. 이야기를 접한다는 건 그만큼 폼을 들여야 한다. 시간이 들고, 내 수고가 든다. 그러는 동안 이야기가 내 몸으로 흡수가 된다.


그래서 소설과 영화 같은 예술이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다. 소설을 통하면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피부로 흡수된다. 페르세폴리스에서 말하는 것은 '용서는 해도 잊어서는 안 된다'이다.



예고편 https://youtu.be/jxG0M__9PNM?si

영화사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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