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대한민국은 2011년까지 블랙아웃에 대한 공포가 미미했다. 지구의 온도는 매 해 상승하고 도시는 끊임없이 자동차와 건물을 만들어 열기를 생산하는데 이 거대한 열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되었다. 정부는 심각한 상황이 초래한다는 것을 감지했다. 지금 대한민국 전기공급원인 원자력발전소가 이미 몇 개는 가동이 중단되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국민의 대다수가 진실에 대해서는 다가가지 못한 채 지내고 있었다.
대비전력이 부족한 대한민국은 블랙아웃에 대한 공포마저 부족했다. 블랙아웃으로 인해 덮쳐오는 어둠에 대한 무서움을 방관하고 있었다. 국민들은 어쩌면 외면하도록 강요받았을지도 모른다. 진실을 원하지만 진실과 마주하게 되면 두려움에 휩싸이기 때문에 애써 보지 않으려 할지도 모른다.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았다.
제대로 된 정보를 확실하게 매스미디어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준다면 경각심을 가지게 되겠지만 언론은 겉도는 정보만 계속 흘릴 뿐이었다. 그것 또한 기이한 현상이었다. 선진국의 경우 블랙아웃을 복구하는데 4일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하지만 대한민국은 그 시간으로는 충분하지 못한다고 오너는 마동에게 확실하게 말했다. 공단의 손해는 나라와 개개인의 손해로 이어지고 개인상가들 역시 블랙아웃으로 인해 생계가 막히고 극단적으로 시위나 폭력사태가 일어날 것이다.
소규모 양식업자들과 전력 공급을 매 시간 받아야 하는 업종은 일 순위로 타격을 받는다. 하우스농가들 역시 마찬가지고 휴대전화를 시시 때때로 충전해야 하는 젊은 사람들도 나름대로 생활의 큰 불편을 겪게 된다. 무엇보다 대형병원이 큰 문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안일한 대책으로 시청과 구청의 공무원 몇몇만 외근을 주어 상가의 문단속만 시정하는 형편이라 제대로 관리가 될 리 없었다. 대부분의 상가들이 문을 활짝 열어 놓은 채 에어컨을 틀어 놓고 있었다. 모든 상가에서는 에어컨을 강으로 틀 수밖에 없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는 빠져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사소한 것이 아니었다.
오너가 회사에서 전기사용에 대한 경각심을 심하다 싶을 정도로 자주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회사는 백 퍼센트 전력수급에 의존하여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럴 일도 없지만 개더룸에서 뇌파채취를 하는 도중에 전기 공급이 중단되어 버리면 어떤 사태가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오너는 이미 오래전 술자리에서 마동에게 블랙아웃에 대해서 긴 시간을 들여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고 그런 시간을 왕왕 가졌다. 시간이 흘러 자신이 이 자리를 떠나고 회사가 누군가가 물려받았을 때 그때를 반드시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마치 오너는 마동이 물려받는 것처럼 말을 하곤 했다.
전기가 없어지면 리모델링 작업이 전혀 이루어질 수 없다. 비상전력만으로는 무리가 있는 것이다. 그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오너는 인간생활에 곧 닥칠지도 모르는 블랙아웃이 두려웠던 것이다. 인간의 생활을 인간이 망쳐가고 있었다. 마동은 뜨겁게 이글거리는 태양을 피하기 위해 어제의 내과병동으로 가면서 거리에 붙어있는 카페 속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웃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에게 이런 생각은 무의미한 것이다.
세상에 수많은 생물체 중에 자연의 순리에 올바르게 따르지 못하는 건 인간뿐이다. 균형을 깨트리며 그 때문에 절망하는 것 역시 인간이었다. 모든 동물과 식물은 무더운 여름과 혹독한 겨울을 견디며 잘 지내왔다. 오로지 인간만이 견디지 못해서 겨울과 여름을 따뜻하고 시원하게 보낼 수 있는 기계를 발명해서 건물 안에서 지내며 살고 있다. 하지만 모든 인간이 그 천수를 누리는 것은 아니었다. 세상은 인간에게 지구를 지배할 능력을 부여하였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내리지는 않았다. 어떤 이는 동물원의 동물보다 못한 생활을 하며 지내다가 그대로 소멸했다.
마동은 재래시장을 지나 대로변에 들어섰다. 대로변의 도로주차장은 언제나 차들이 들어차 있었다. 아침에도 오후에도 밤에도 심지어는 명절에도 도로가의 주차공간은 비어있는 날이 없었다. 누군가 자신의 차를 빼내어 주차공간을 벗어나기 무섭게 다른 자동차가 그 자리에 바로 들어와서 공간을 메운다. 도로가의 주차공간에는 터울이란 있을 수 없는 무엇이 있었다.
도로를 지나 어제의 병원 쪽으로 걸어갔다. 가로등의 그늘 밑에 의자를 두고 이쪽에서 저쪽 도로의 주차공간을 놓치지 않고 주시하고 있는 이스터석상의 턱을 가진 주차요원을 다시 목격했다. 그는 하루 만에 좀 더 얼굴이 석탄처럼 까맣게 그을려있었다. 그런 것 따위에는 안중에도 없는 듯 감시자의 눈으로 주차공간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스터석상의 턱 역시 얼굴에서 비정상적으로 커 보였고 마동을 제외하고는 턱을 신비하게 바라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마동은 잠시 그늘에 기대어 이스터석상을 보았다. 자세히 보니 어제보다 더 젊은 사람이었다. 이스터석상은 20대 중반으로도 보이지 않았다. 어제보다 턱은 더 커진 것 같았다. 얼굴도 어제보다 더 크고 단단하게 보였으며 팔, 다리는 몸에 비해 더 말랐다.
여름이라 얇은 긴팔을 입고 있었는데 왜인지는 모르나 긴팔 안의 피부색도 얼굴만큼 검게 그을려 있을 법했다. 이스터석상도 땀은 흘리지 않았다. 이스터석상은 의자에 앉아있었지만 상당히 바쁜 시간을 보내는 듯 보였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것도 아니고 책을 보는 것도(무더운 여름날에 따가운 태양 밑에서 책을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닐 것이다) 아니고 음악을 듣는 것도 아니었다. 안경 속의 눈은 주차공간을 끊임없이 주시하고 있었고 입으로 꾸준하게 무엇인가 외우고 있었다.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이스터석상의 턱 위의 입술이 기하학적으로 꾸물꾸물 주문을 외우거나 단어를 암기할 때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이스터석상은 가만히 의자에 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오감을 다 열어 놓고 뇌를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스터석상은 무엇을 끊임없이 외우고 있는 것일까.
마동은 그늘로 몸을 옮겨가며 이스터석상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손목시계를 보고 시간을 확인했다. 마동은 한참을 서서 이스터석상을 보니 그에게서는 독특한 하나의 행동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른 곳의 주차요원(아주머니들이거나 나이가 많은 남자)은 차주가 차를 뺀 다음 신호를 보내면 그곳으로 달려가서 주차티켓을 받아 들고 그 자리에 서서 시간을 계산했지만 이스터석상은 차주의 신호를 받으면 달려가서 시간을 계산하지 않고 바로 요금이 얼마라고 이야기를 하고 주차요금을 받았다.
이스터석상이 의자에 앉아서 무엇을 외우느라 입을 오물거린 것은 이스터석상이 맡은 구역 안의 주차시간을 전부 머릿속에서 계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차주가 차를 뺀다는 신호를 보내면 달려가서 그들을 기다리지 않게 하고 바로 요금을 받을 수 있었다. 마동은 실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스터석상은 타인과 어울리지는 않고 남극점의 완벽한 빙하 속에 갇혀버린 듯 보였지만 자신과 끊임없이 교류하고 있었다. 이스터석상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독립된 존재감이라 여기며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해 부여받은 시간을 떠안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스터석상의 주위에는 사람들끼리 모여 무더위에도 이야기에 여념이 없었다. 서로 인상을 찌푸리며 많은 이야기를 토해내고 있었다. 상대방이 듣지 않아도 이야기하는 사람은 자신의 말을 끊임없이 하고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방황하다 주차되어 있는 자동차에 쌓여만 갔다. 쌓인 그들의 이야기는 타인이 운전을 해서 다른 곳으로 싣고 가 버린다. 자동차는 누군가의 가족이야기, 누군가를 욕하는 이야기 또는 누군가가 뱉어놓은 고민을 잔뜩 싣고 그 자리를 떠났다.
이스터석상은 그 속에 섞이지 않고 빙하 속 얼어붙은 곰처럼 자신만의 세계와 이 세계를 오고 가며 견뎌내고 있는지도 몰랐다. 일을 하는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주차되어 있는 자동차의 주차시간을 외워가며 이스터석상은 독자적인 존재를 지키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마동은 이스터석상의 약간 기울어진 그의 턱을 보며 그곳을 벗어났다. 어제의 만두가게를 지났다. 만두가게에는 더 이상 만두모녀도 보이지 않았고 다른 손님들도 보이지 않았다. 주인도 보이지 않았고 테이블 위에 누군가 만두를 먹었다는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완벽하게 마동을 마지막으로 손님이 뚝 끊어진 듯 보였다. 만두가게에는 온전히 만두가게의 자리만 존재해 있었다. 만두가게를 지나고 해물탕 집을 지나 국밥집을 지나서 골목을 거쳐 완구도매점 앞에 도달했다.
마동은 힘이 들었다. 숨이 찼다. 유난히 태양이 뜨겁게 이글거렸다. 몸에 남아 있는 힘이 전부 빨래를 쥐어짜듯 다 빠져나가 버린 것 같았다.
완구도매점 앞에 의자는 보였지만 완구도매점 사장은 보이지 않았다. 마동은 완구도매점 안을 들여다보았다. 도매점은 하루정도 시간의 흐름동안 무엇인가 달라져 있었다. 눈으로 들어오는 모습은 달라지진 않았지만 어떤 흐름 내지는 도매점의 사상적인 부분이 다르게 느꼈다. 언어라는 건 시각적으로 들어온 피사체를 뇌의 한 구간에서 잘 반응시켜 입으로 꺼내는 소리지만 지극히 일그러진 관념일 뿐이다. 입으로 언어가 나오는 순간 생각과는 달라지거나 생각처럼 나오지 않거나 생각보다 많이 나왔다. 생각만큼 언어가 표현되지 않는다. 달라진 도매점 안의 분위기를 언어로 설명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어떤 식으로든 마동은 도매점의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을 말로 내뱉어보려고 했지만 할 수 없었다.
마동은 주인에게 인사라도 하고 싶었다. 앞에 서서 시계를 보며 주인을 기다렸지만 나오지 않았다. 도매점 앞으로 가서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도매점 안을 메우고 있는 것은 죽어버린 시간의 공간이었다. 그것은 분명 죽은 시간이 도매점 안을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여름이지만 때가 낀 얼음처럼 차갑고 어두운 시간의 관념이 어제와 다르게 도매점 안 이곳저곳에 흡착되어 있었다. 이제 누구도 어떤 사람도 이 완구도매점을 찾아오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느꼈다. 이제 아무도 이곳을 찾아서 오지는 않는다. 서글픈 일이다 그것은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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