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모호함으로 가득한 병원이다. 약국에서 약을 지어서 먹기 싫으면 병원 약은 꼭 드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분홍간호사는 자신의 세계로 들어가 버렸다. 마동은 기이한 약을 받아 들고 할 이야기가 더 있었지만 그대로 주머니에 넣고 계산을 하고 병원을 나왔다. 병원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그제야 여름이라는 무더운 계절의 열기가 느껴졌다. 더불어 몸살의 증상이 병원밖에 쪼그리고 앉아 기다리고 있다가 마동이 나오자마자 몸에 들러붙었다. 기이한 의사와 기이한 간호사가 있는 기이한 병원 내에서는 도저히 여름이라는 계절을 느낄 수 없을 만큼 마동에게 쾌적한 공기가 병원내부에 가득했다. 포르말린냄새와 함께.
병원 안에는 시원하게 에어컨을 틀어 놓은 것도 아니었으며 선풍기를 여러 대 설치해 놓은 것도 아니었다. 대기실에 앉아서 진료를 받으러 온 노인들의 얼굴 역시 평화로웠다. 다른 내과병원의 대기실과는 확고하게 다른 분위기를 기이한 병원은 지니고 있었다. 무엇보다 코끝에 남아도는 포르말린 냄새. 다른 세계에 들어와 버린 느낌의 내과. 병원의 그런 분위기가 깊은 눈동자를 가진 의사에게서 나오는 것인지, 풍만한 몸과 가슴을 지닌 분홍간호사에게서 나오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다.
오너는 마동을 걱정하며 병원에 갔다가 곧바로 집으로 들어가라고 지시했다. 어젯밤에 한꺼번에 완벽한 꿈리모델링 레이어 작업을 한 덕분에 세세한 작업을 디자이너들이 할 동안은 마동은 특별히 할 작업이 없었다. 병원의 계단을 타고 내려왔다. 완구도매점 앞에는 아직도 의자만 놓여있었고 완구점 사장의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마동은 완구점 안을 들여다보았다. 어제와 다른 흐름 속의 시간성이 완구점 안에 있는 것을 마동은 다시 한번 확인했다. 달랐다. 어제와는 다른 죽은 시간의 공기가 축축하게 가득 차 있었다. 병원에 올라가기 전에 다르게 느껴졌던 완구점 내부의 시간성이 그대로 굳어 있었다. 완구점은 하루 만에 완벽하게 죽어버렸다.
마동은 소리를 내어서 완구점 사장을 불러보았다. 소복이 쌓인 죽어버린 시간성의 내부공간에서 인기척이 엿보였다. “누구십니까?” 하는 소리가 완구점 안에서 들리더니 젊은 남자가 반팔티셔츠 차림으로 나타났다. 땀을 흠뻑 흘리고 있었고 양손에 목장갑을 끼고 있었다. 물건을 옮기는지 먼지가 땀에 희석되어 있었다. 젊은 남자는 완구점 사장의 아들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완구점사장의 젊은 시절과 모습이 같아서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아들은 완구점 앞 어제의 사장이 앉았던 의자가 있는 곳까지 걸어 나왔다. 몹시 마른 체형이었으며 근육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없었다. 마른 사람이 땀을 많이 흘리고 있는 모습은 뚱뚱한 사람이 땀을 많이 흘리는 모습과는 달라 보였다. 눈썹이 진하지 않고 연해서 남자는 말랐지만 순한 인상이 강했다. 만약 정리되지 않은 눈썹이 짙었으면 아마도 반전적인 얼굴의 모습일지도 몰랐다. 그는 마동에게 인사를 한 다음 누구일까 궁금해하는 얼굴표정을 지었다. 아버지와 거래하던 거래처의 사람일지도 모르고 아버지가 일을 하며 손을 내밀었던 곳의 사람일지도 몰랐다. 아들의 얼굴에는 약간의 조급함과 조금의 부담감이 서려 있었다.
“누구신지?”
“전 완구와는 상관없는 사람입니다. 어제 위층의 병원에 가는 길에 아버님을 잠깐 만났습니다. 대화를 좀 했습니다. 좋은 분위시더군요.” 마동의 말에 남자는 조금 생각하는 듯 “그러셨군요”라고 했다. 아들의 대답은 한결 부드러워졌다.
“오늘도 병원에 들르는 길에 아버님을 뵙고 가고 싶어서요.”
“위층에 병원이요?” 아들은 새삼 놀랐다는 표정이었다. 표정이 마치 사라진 도도새의 얼굴 같았다.
“네. 2층이 내과인데 몰랐습니까?” 마동은 이층을 가리키며 아들에게 말했다. “그렇군요”라며 아들은 고개를 들어 이층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금세 고개를 내리고 마동을 바라보았다.
“2층에 병원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워낙 이 동네는 고요하게 흘러가니까요. 실은 전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거든요.” 아들은 한참 무엇인가 생각했다. “저희 아버지는 오늘아침에 요양원에 들어갔습니다. 치매가 심하셨거든요. 치매가 온 건 3년 전이었는데 퇴행성이라 병원에서도 어쩔 도리가 없다고 하더군요. 예, 분명히 어제까진 아버지께서 이곳 이 의자에 한 시간 정도 앉아 계셨습니다. 그때가 제일 멀쩡하셨습니다. 하지만 멀쩡하다는 의미는 겉으로 봤을 때를 말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네, 실은 아버지는 그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저에게만 조용히 말을 하시던 분인데 이상하군요.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걷잡을 수 없이 폭주를 하여 요양원에 가셔야만 했습니다. 꽤 미루고 있었거든요. 전 아버지를 대신해서 이곳의 마무리를 지어야 합니다. 이곳은 이미 두 달 전부터 영업이 중단된 상태입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곳을 사랑하셨어요. 그래서 바로 없애지 못하고 지금까지 지내온 것입니다. 아버지는 매일 밤 ‘서쪽숲’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물론 저에게만 말이죠. 아마 그것이 아버지께서 가고 싶은 최종목적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동은 어제 완구점사장이 했던 말을 떠올려보았다.
“저도 어제 아버님께서 서쪽숲에 대해서 하시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다시 인사를 드리고 이야기를 한 번 더 듣고 싶어서 이렇게 실례를 하게 되었습니다. 못 뵙고 가게 되어서 안타깝군요.”
아들의 눈에 잠시 빛이 총명하게 비치는 모습이 보였다가 사라졌다. 마동은 마지막 완구점사장의 얼굴을 생각했다.
“오늘 아침부터 아버지는 어쩌면 진정한 서쪽숲으로 갔는지도 모릅니다. 늘 그곳에 가고 싶어 했습니다. 그곳에 가면 자신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며 말이죠. 그런데 참 신기합니다. 서쪽숲에 대해서는 아무에게도 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저도 몇 번 들어본 게 고작입니다. 저의 아내에게도, 어머니에게도, 저의 누이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그 이야기를 한 적이 없고 3년 전부터는 모든 이들과 대화를 하지 않으셨는데.”
아들은 마동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그 눈빛 속에는 당신도 나처럼 동시적인 성질을 느끼고 있어서 안심했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아들의 눈빛이 상당히 부드러웠다. 몇 마디를 나눈 후 아들은 마동에게 인사를 하고 다시 완구점 안으로 들어갔다. 처분할 일만 남았다는 말을 남기고 아들은 사라졌다. 완구점 안은 낮이었지만 어두웠다. 형광등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마동은 그곳을 벗어났다. 해장국집을 거쳐 만두가게를 지나 대로변으로 나왔다. 태양의 열기는 냉철했고 마동의 몸을 바로 태워버릴 것처럼 뜨거웠다. 인자함이나 상냥함은 어디에도 없었다. 마동이 태양의 열기가 이토록 괴롭다고, 올해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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