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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날의 멸망 19

소설

by 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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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을 인간의 마음과 같다고 인식하는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과 이 세상을 물질로 보는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이 섞여 있었고 그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문제는 아니었다. 세상에는 적당한 종류의 인간과 다양한 성격이 존재한다. 개개인마다 성격은 미묘하지만 다 다를지도 몰랐다. 아니 다 다르다. 비슷한 성격은 존재할지 모르나 같은 성격이란 세상에 없는 것이다. 그래야 균형이 잡히니까.


그르르륵 하며 테이블에 진동이 울렸다. 카페 안을 꽉 채울 만큼 사람들이 없어서 여직원이 커피를 가져다주는데 오늘은 달랐다. 마동은 커피와 조각케이크를 받아왔다. 몸은 거짓말처럼, 어젯밤처럼 아무렇지 않았다. 머리가 아픈 것도 속이 울렁거리는 증상도 전혀 없었다. 심지어는 피부가 탱탱해지며 근육이 살아 움직일 만큼 컨디션이 좋았다. 이제부터 천천히, 아주 천천히 커피를 마시며(식어도 좋다. 마동이 자주 오는 이곳의 커피는 식어도 맛있다. 물론 마동의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트위터를 하거나 창밖의 비 내리는 풍경을 보거나 카페 책장에 있는 책이나 볼 요량이었다. 카페의 책장에서는 모파상의 책들이 많았다. ‘오를라'는 꽤 여러 번 읽었지만 읽을 때마다 섬뜩했다. 그것과는 다르게 ‘목걸이’ 같은 단편은 아주 사실주의적이다.


조퇴를 하고 나오니 빈 시간을 얻었다. 사람들이 왜 조퇴를 하고 싶어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 시간에 마동은 멍청하게 있거나 책이나 보고 싶었다. 마동에게 있어 자주 가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은 하루 중에 가장 깊고 넓은 혼자만의 세계에 빠지는 시간이다. 그 시간 속에서 소피도 만나고 미지와의 조우도 했고 여러 가지 공상 속으로 빠져들기도 했다. 달릴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을 받는 곳이 여기 카페다. 커피 향을 맡으니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이틀 동안 기이해진 몸의 자극이 가라앉았다. 테이블에 커피와 치즈케이크를 들고 와서 앉았을 때 마동은 소변이 마려웠다. 전조도 없었다. 소나기처럼 느닷없이 소변이 나오려 했다. 오늘 아침 첫 소변은 아주 조금 나왔다.


마동은 급하게 일어나서 화장실로 빠르게 갔다. 소변은 방광을 통해서 압도적으로 밖으로 나오려 했다. 소변을 보고 화장실에서 나오면 마동은 자신만의 시간에 더욱 깊게 빠져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기분이 좋았다. 마동은 테이블에 커피와 조각케이크를 올려 둔 채로 화장실로 가서 소변을 봤다. 화장실은 새로 산 거울처럼 깨끗했지만 개성은 결여되어 있었다. 개성이 좀 더 가미되었다면 사람들이 더 좋아했을 텐데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방뇨의 기쁨은 방출에서 오는 쾌활함에 있다. 어린 시절부터 생리적 쾌감에 자연스럽게 적응을 한다. 소변을 본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소변이 많이 나온다. 자연스럽게 소변이 계속, 많이 나온다. 갑자기 소변이 보고 싶어 졌다고 하나 이렇게 어마어마한 양의 소변이 한꺼번에 나오리라고는 예기치 못했다.


아침에 본 소변양이 적어서 이렇듯 많이 나오는 것일까.


양변기에 어정쩡한 자세로 선 채 마동은 소변을 보면서 생각은 커피와 치즈케이크에 가 있었다.


커피와 치즈케이크는 하루 중에 언제나 제일 맛있을까. 저녁 8시 이후일까. 아니면 아침식사를 하기 전 공복상태일까 아니면 언제든 상관없을까.


지금은 아직 저녁 8시가 되려면 멀었지만 그럼에도 커피와 조각케이크가 머릿속에 뱅뱅거리며 원을 만들어 떠 돌아다녔다. 화장실 안으로 카페에서 틀어놓은 ‘the whole nine yards’가 작게 들렸다. 개성이 없는 화장실에 들려오는 음악은 공간을 그나마 안온하게 만든다고 생각을 했을까. 화장실에는 음악이고 잡음이고 아무 소리도 없는 공백상태가 더 좋지 않을까. 이 곡은 좋은 곡이지만 개그프로그램에 삽입되고 나서 모양새가 조금 우스워진 음악이 되었다. 벌써 좀 지난 이야기지만. 마동은 고개를 숙였다. 맙소사, 아직 소변이 나오고 있었다.


왜 이렇게 소변이 많이 나오는 것일까. 아마 음식물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해 혈당이 떨어진 것인가. 그것과 소변의 대량방출과 관계가 있는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시선을 변기 안에 두고 있었지만 소변은 계속 나와서 변기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분명 어딘가 잘못된 것이다. 이렇게 방뇨양이 많을 수는 없다. 마동은 이틀 동안 물도 제대로 마시지 않았다. 이곳 카페 안의 남자화장실에는 남자소변기가 따로 갖추어져 있지 않고 그저 양변기만 있을 뿐이었다. 변기에 소변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마동은 허리를 굽혀 변기의 레버를 내렸다. 콸콸거리면서 물은 한 번 내려갔다. 하지만 소변은 물이 빠지는 양 못지않게 다시 변기를 채웠다. 소변은 마치 밖에 내리는 무서운 소낙비처럼 세차게 나오고 있었다. 급기야는 소변이 변기를 넘쳐흘러내렸다.


맙소사.


소변은 여전히 멈출 생각을 않는다. 마동의 의지와는 전혀 다르게 생리작용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참지 못하고 신체가 시키는 대로 하는 어린아이 시점을 벗어난 지금도 의지와는 무관하게 소변이 나오고 있었다. 끊을 수가 없다. 그때 변기 안에서 작은 소용돌이가 일었다. 오래된 그리스신화를 주제로 한 영화에서 포세이돈이 바다에서 등장할 때 보던 장면과 흡사했다. 저 변기 속에서 무엇인가 튀어나올리는 없었지만 아직 소변이 나오고 있어서 어쩐지 마동은 좀 창피한 기분이 들었다. 소용돌이에서 무엇인가 나온다는 발상은 어디에서 온 것이란 말인가. 작은 소용돌이 속에서 누군가 마동의 방뇨 장면을 몰래 훔쳐보는 듯했다. 그렇지만 방뇨장면보다는 소변을 뽑아내는 페니스를 뚫어져라 쳐다본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변기 안의 작은 소용돌이는 그 물살이 거칠어졌다. 슬슬 두려움이 마동의 창피한 마음을 누르기 시작했다.


고 오오오오옹.


소용돌이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더욱 빠르고 거칠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티브이에서 본 소용돌이의 모습이 소변을 보고 있는 변기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마동은 다시 허리를 굽혀 레버를 내렸다. 소용이 없었다. 물은 내려가지 않았고 계속 소용돌이가 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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