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그러자 그는 씹고 있던 고기를 종발에 뱉어냈다. 그러자 시큼한 악취가 더 났다. 종발에 나방들이 달라붙었다. 기기괴괴한 장면이었다. 후배는 그 종발을 잡고 창문 밖으로 뱉어 놓은 고기만 버렸다. 밖으로 날아가는 고기를 따라 나방들이 우르르 따라 나갔다. 고 모습을 보고 그는 큰 소리로 [여기 죽 주세요!]라고 했다. 그는 고기와 술을 쉬지 않고 마셨다. 평소의 후배 같지 않음은 확실했다. 술을 그렇게 마셨는데 후배는 어쩐지 취하지 않았다.
[너 아까 전갱이 튀김 못 먹었어?]라고 물었다.
[전어가 지금 여기에 왜 있습니까? 선배님?] 그건 후배의 말이 맞다. 전갱이 튀김을 봤을 때 내가 한 생각이니까. 하지만 요즘은 제철이 따로 없다. 채소는 하우스 재배로 계절과는 무관하게 재배가 가능하고, 바다에서 잡은 물고기는 육지 어디로든 배송이 가능하다. 하지만 전갱이 튀김의 흔적이 지금은 전혀 없다. 내가 먹고 깜빡 잠이 들었지만, 이렇게 허기가 지는 걸 보면 먹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리고 [죽입니다] 라며 문을 열고 직원이 들어왔다. 그 여자였다. 턱이 길고 앞니가 튀어나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여자. 여자의 벌이진 입에서 침이 흘러 죽 그릇에 들어갔다. 나는 겁이 나서 그저 놀라고 있었다. 침이 들어간 죽 그릇이 후배 앞에 놓였다. 그는 그걸 퍼 먹었다. 말리려고 했지만 여자가 나를 노려 봤다. 충혈된 눈과 유난히 작은 검은 동자가 무섭게 나를 쳐다보았다. 시선을 피하고 싶었지만 그게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여자의 겁이 나는 눈동자를 보고 있으니 느닷없이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친구에게 잘못한 기억이다. 친구의 집에 놀러 갔다. 만화 주인공부터 자동차 미니카까지 없는 게 없을 정도로 장난감이 많은 친구였다. 그 친구의 장난감 중에 내가 정말 가지고 싶어 했던 장난감이 있었다. 손가락만 한 날개 달린 사람이었다. 놀러 갔던 찬구들이 다른 방에 음식을 먹으러 갔을 때 그 장난감을 주머니에 넣었다.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한 순간에 벌어진 일이다. 아무도 그 장난감을 가지고 놀지 않았고, 손도 대지 않았다. 나는 그걸 들고 나왔다. 아무도 모를 것이다. 있으나 마나 한 장난감이었다. 그날은 잠들기 전까지 조마조마하게 보냈다.
그 후로 나는 그 장난감을 숨겨 두고 집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가지고 놀았다. 며칠 뒤 그 친구가 장난감이 없어졌다고, 그날 놀러 왔던 아이들 중 누군가 훔쳐 간 것 같다고 나에게 말했다. 나는 가슴이 뛰었다. 친구는 나에게 와서 다른 친구를 가리키며 쟤가 들고 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그때 정직하게 내가 훔쳤다고 말하지 못했다. 결국 그 친구는 다른 친구를 지목했고, 그 일이 이상하게 커져 부모님까지 나서게 되면서 범인으로 몰린 친구는 전학을 갔다. 나는 그때 일을 지금까지 숨기며 지내왔다.
그 친구는 나 때문에 상처를 입은 채 어른이 되었을 것이다. 말해주고 싶었다. 무서워서 그때 제대로 말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지만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 버렸다. 후배는 죽을 퍼 먹다가 눈동자만 돌려 나를 보더니 [좋았어요?]라고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지?]
[그때 왜 있잖아요?]라며 냉소적인 말투로 말을 하더니, 일어나서 여자와 함께 방을 나갔다.
그를 불렀지만 두 사람은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후배의 죽 그릇에서 시큼한 악취가 났다. 그릇을 보니 안에 꾸물거리는 게 잔뜩 들어 있었다. 숟가락으로 떠서 보니 실지렁이 같은 것들이었다. 놀라서 그대로 바닥에 버렸다. 후배가 무슨 일을 당할 것만 같았다. 여자는 분명 이상한 여자다. 이곳으로 오게 만든 것도 그 여자다. 방 문을 열고 나도 나갔다. 가든은 우리 빼고는 손님은 없고 전부 불이 꺼져 있었다. 첫날 여관에서 처럼 이 가든도 어딘가에 손님들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손님은 정말 없었다. 후배를 부르면서 마음 한 구석에는 어릴 때 누명을 쓴 친구에게 미안했다. 가든의 복도는 길었다. 복도에도, 방에도 불은 꺼져있었지만, 장사는 하는 것 같았다. 가든에서 백숙의 냄새가 은은하게 나고 있었다. 주방으로 가니 솥에서 백숙을 삶고 있었다. 솥은 무쇠솥으로 국밥 집 같은 곳에서 봤던 거대한 솥이다. 외부에서 보이도록 설치해 놓은 것만큼 큰 무쇠솥이다. 주방은 어두웠다. 식당 사람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주방의 불을 찾아서 켰다. 환하게 밝아지지 않았다. 백열등 정도의 밝기였다. 저 앞에 후배가 발가벗고 서 있었다.
[너 여기서 뭐 해? 빨리 와, 그 여자는 무서운 사람이야] 나는 겨우 입을 떼었다.
[그때가 기억 안 나십니까?] 하고 말하던 후배의 등에 날개가 돋아났다. 어릴 때 그 장난감이 붙어 있던 날개였다. 옆에는 그 여자가 서 있었다. 여자는 더욱 기괴하게 보였다. 턱은 더 길어졌고 입은 더 커졌다. 다물지 못하는 입에서 계속 침이 흐르고 있었다. 처음에는 침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피였다. 눈을 뜨니 숙소 안이었다. 그가 나를 흔들었다.
[선배님, 선배님, 괜찮습니까? 내 잠꼬대 때문에 침대 밑으로 굴러 떨어진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는 자신의 심한 잠꼬대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여기는?]
[가든에서 은어튀김인가? 그거 서비스로 먹고, 백숙 먹으면서 소주를 여덟 병이나 마셨습니다. 우리. 선배님 막 달리시던데. 차 운전도 가든 사장님이 해 줬습니다. 선배님 완전 술에 취하셔서 말이죠. 선배님은 차 안에서 이미 곯아떨어지셨어요. 우리는 방에 올라오자마자 그대로 잠들었는데. 쿵 하면서 침대에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도 술에 취해서 겨우 선배님 깨운 겁니다]
은어튀김? 소주 여덟 병? 그럼 우리가 가든에 가긴 갔구나. 전부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선배님과 저 피곤한 데다 배가 고파 은어튀김 먹으면서 술을 빨리 마셨습니다. 근데 선배님이 백숙을 먹고 죽을 들고 온 직원을 보고 놀라며 기절하듯이 쓰러진 겁니다. 아마 피곤해서 그런 거라고 해서 직원들이 선배님을 부축해서 차에 실어줬습니다. 덕분에 우리 맛있는 죽은 못 먹었습니다]라고 말하는 후배가 미소를 지었다.
아, 머리가 핑 돌았다. 숙취다. 정말 술을 많이 마신 것 같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머릿속이 완전히 뒤죽박죽이었다.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어졌다. 내가 여기 는 게 진짜인지 아니면 상상 속인지, 생각이 많아서 지금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지 도무지 모르겠다. 분명 여행을 온 것인데, 이건 여행이라고 할 수 없다. 화장실에서 세수를 했다. 얼굴 가죽이 벗겨질 정도로 빡빡 문질렀다. 왜 우리는 같은 방에 있을까. 분명 각 방을 따로 계산을 했다. 찬물에 세수를 하니 좀 괜찮아지는 것 같았다.
욕실에서 나와 방 문을 살짝 열었는데, 후배가 구석에 등을 보이고 앉아서 뭔가를 게걸스럽게 먹고 있었다. 우왁우왁 첩첩거리며 먹었다. 기괴한 소리다. 가까이 다가가니 종이를 마구 먹고 있었다. 겁이 났다. 후배의 정체는 무엇일까. 왜 평소에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너무 다른 모습이다. 평소에 알아차리는 건 쉽지 않다. 늘, 언제나 그렇다. 지나고 나서 후회가 들고 실망을 해야 알게 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정말 사랑하는 것이 맞는지, 이혼을 하고 헤어지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 밑바탕에는 불안이 깔려 있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불안은 내내 저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다가 어떤 형태로 발화할지 모른다. 불안은 항상 변하기를 바라고 있고, 점점 확장하려고 열을 올린다. 거기에 잘못 발을 디디게 되면 평소에 알아차리지 못하는 일들이 발생한다. 불안 때문에 믿고 싶은 걸 믿어버리기 때문이다. 그 순간 그가 고개를 돌렸다. 입주위가 시뻘갰다. 나에게도 먹기를 권했다. 그건 컵라면이었다. 세 개나 있었다. 컵라면은 항상 세 개다.
[컵라면은 언제?]
컵라면은 근처 편의점에서 샀다고 했다.
[편의점? 이 근처에?]
가든 사장님이 운전해 주면서 편의점에 들렀다고 했다. 편의점이란 산골이던 어촌이던 어느 곳에나 있다. 거기서 컵라면 네 개를 사 왔다고 했다. 술 취했을 때 컵라면 만 한 게 없다면서. 그는 컵라면 세 개를 먹고 하나를 남겨 놓고 잠들었다. 나는 그대로 뜬 눈으로 밤을 보냈다. 우리는 아침에 짐을 챙겨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들러야 하는 곳이 몇 군데 있었지만, 이틀 내내 운전을 한 그는 피곤했고, 나 역시 너무 피곤했다. 그래서 바로 돌아왔다. 오전에 숙소를 빠져나오다가 타이어가 터졌다. 조수석 바닥에는 내가 버리지도 않았는데, 출발할 때보다 쓰레기가 더 많아졌다. 봉고에는 타이어 교체 할 각종 장비가 다 있다고 하면서도 보험을 불렀다. 타이어를 갈아 끼우는 동안 그에게 죽 그릇을 들고 온 직원에 대해서 물었다.
[내가 기억이 없어서 그런데, 여자였나?]
후배는 그렇다고 했다.
[그럼 혹이 턱이 길고 앞니가 튀어나온 건 아니겠지?]
그러자 후배는 손뼉을 치며 [선배님도 놓치지 않았군요. 그렇게 목 생긴 여자가 있을 수 있을까. 정말 이상했다니까요. 선배님이 거의 기절하셔서 저 죽을 한 숟가락 밖에 못 떠먹었는데 그렇게 맛있는 죽은 처음이었어요]
그의 말에 너무 놀랐다.
[형님, 형님은 저하고 학교도 다르고 고향도 다른데 왜 자꾸 선배님이라고 불러라고 하십니까? 저는 그냥 형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여행 내내 나에게 선배님이라고 불렀잖아?]
[제가요? 선배님 그 소리 저 정말 부르르르 합니다. 여행 내내 계속 형님이라고 불렀어요, 형님]
우리는 돌아오고 나서 예전만큼 만나지 않았다. 그리고 후배에게 연락이 가끔 와도 나는 피하고 있다. 그와 여행을 다녀온 후로 알 수 없는 감정에 빠지는 일이 잦아졌다. 세상은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 역시 알 수 없다. 나는 때때로 누가 불러도 모를 정도로 멍하게 있었다. 그러다 보면 내가 지금 해야 하는 일도 내버려 두는 경향이 왕왕 있었다. 그럴 때 사람들은 평소와 다르게 반응했다.
평소에는 모르는 것들이 있다. 내가 지금 하려는 일이 옳은 것인지 그렇지 못한 것인지 선택을 하는데 망설여졌다. 확신이라고 하는 것이 내 몸에서 물어 불은 실타래처럼 조금씩 빠져나갔다. 사람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분노하는 일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분노가 나기 때문이었다. 그건 아마도 친밀한 관계가 어긋나는 것에서 시작되는 일일지도 모른다. 평소에 알지 못했던 관계에 대해서.
그와 여행을 가서 내가 알고 있던 모든 것들이 어쩌면 잘못된 것이 아닐까. 나를 이루고 있던 나의 모습 역시 내가 알고 있던 모습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여지없이 무너졌다. 나 역시 이 세상에 속해 있는 점 같은 존재니까. 여행 이후 상실의 깊고 깊은 터널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게 나쁘다던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가끔 자신의 떠안고 있는 사실이 힘겨워할 때 여행을 가는데, 나는 어쩌면 여행을 가서 힘겨운 사실을 깨달았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