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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같이 갔던 후배는 누구였을까 5

소설

by 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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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여자 친구는 있어요?]


[응, 당연하지]


[그런데 왜 저를 자꾸 불러요?]


[여자 친구하고만 대화를 하니까 다른 여자의 의견이랄까, 그런 게 알고 싶었어]


[그럼 알고 싶은 게 뭐예요?]


[딱히 알고 싶다기보다 여자는 왜 제대로 말을 하지 않는 걸까?]


[여자들이라고 다 그럴까요? 근데 잠시만요] 여자는 폰을 확인했다.


두 사람은 많은 이야기를 했다. 후배는 여자의 말에 깊게 빠져드는 것 같았다. 여자가 하는 말에 후배는 고심하는 표정이 깊어졌다. 여자는 폰을 자주 확인했다. 그리고 여자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턱이 좀 더 길어지고 앞니가 더 앞으로 튀어나온 것 같았다. 여자는 후배에게 카드 번호를 좀 가르쳐 달라고 했다. 지금 돈을 보내주지 않으면 엄마와 가족이 위험해진다는 것이다. 후배는 카드 번호를 불러주려고 했다.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일까. 나는 비를 맞고 있어서 몸이 다 젖었다. 비가 더 거세게 내렸다. 나는 후배에게 소리쳤다. 두 사람으로 달려갔다. 그 찰나 여자가 또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를 붙잡았다. 후배는 비 때문에 인상을 쓰고 눈을 찡그리고 있었다.


[너 여기서 뭐 해? 어제 그 여자에게 왜 카드 번호를 불러 주려고 해?] 그러나 후배는 카메라 뷰를 보여주며, 여기서 사진을 담고 있다고 했다.


[여자는?]


[여자요? 무슨 여자요?]


[어제 그 여자!]


[어제 그런 일은 없었다니까요, 선배님. 있었다면 제가 기억을 했겠죠. 왜 그러세요? 무섭게. 그만하시죠, 선배님]


비를 맞고 있는 지금 꿈을 꾸는 거 같았다. 후배는 처마 밑에 있어서 비를 비교적 적게 맞았지만 나는 비에 홀짝 젖었다. 비에서 비 비린내가 유독 심했다. 구토가 나왔다. 오바이트를 하니 아까 먹은 컵라면이 그대로 나왔다. 고작 컵라면 하나 먹었을 뿐인데, 그게 소화도 되지 않고 위장에서 그대로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그가 등을 두드려 주었다. 하지만 너무 아프게 두드렸다.


[선배님, 여기에 오바이트한 거 들키면 곤란합니다, 어서 내려가요]


어제의 기괴한 턱을 가진 여자는 만나지도 못하고 그냥 내려왔다. 옷이 축축해서 몹시 추웠다. 몸을 떨고 있으니 그가 차 안으로 들어가자고 했다. 히터를 틀었다. 따뜻해져 왔다. 뜨거운 바람을 맞았는데 몸이 더 떨렸다. 기침도 나왔다. 이러다 심한 감기가 걸릴 것만 같았다. 꿈은 항상 미저러블 하다.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담배를 피우는 꿈을 꾼다.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담배에 불을 붙여 깊게 들여 마신다. 꿈에서 담배를 피우면 연기가 빠져나오지 않고, 연기가 눈으로 올라와 앞이 부옇게 보이다가 무서워 벌벌 떨다가 깬다.


목욕탕에 가는 꿈도 꾸면 역시 이상했다. 옷을 벗고 탕에 들어가려고 하면 목욕탕이 끝날 시간이거나, 물에 몸을 담그는 찰나 여자들이 탕에 앉아 있거나, 어린 시절 갔던 목욕탕이 꿈에 나오지만 더 이상 친근하지 않았다. 꿈은 항상 그런 식이다. 행복한 꿈을 꿔본 적이 없다. 꿈에서 몸을 움직이는 것 또한 힘들다. 목욕탕 주인이 다가오는데 몸을 뒤로 돌려 나가야 한다. 하지만 그게 안 된다. 주인이 내 앞으로 서서히 돌아온다.


주인은 바로 그 여자다. 턱이 길쭉하고 앞니가 튀어나온 여자. 나는 놀라서 도망가고 싶지만 탕 안에서 나가는 게 쉽지 않다. 목욕탕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여자가 내 얼굴 앞으로 왔다. 가까이서 보는 여자의 얼굴은 정말 기괴했다. 턱은 더욱 길었고 앞니는 크고 많이 튀어나왔다. 다물어지지 않는 입에서 시큼한 악취가 났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아서 침이 계속 나오고 있었는데, 입 안에서 혀 말고 움직이는 무엇인가가 보였다.


[설탕은 넣지 말까요?]라고 여자가 손을 내밀어 나의 어깨를 흔들었다. 눈을 뜨니 그가 나를 깨웠다. 옷은 여전히 축축했지만 춥지는 않았다. 찝찝하기만 했다. 다행히 감기 기운도 사라진 것 같았다. 차가 도착한 곳은 어제 여자가 말했던 외진 곳의 숙소였다. 일단 옷을 갈아입자고 내가 말했다. 그곳은 호숫가 근처였다. 늦은 오후부터 안개가 끼기 시작했다. 연무 같기도 했지만 냄새가 있었다.


딱히 지정할 수 없는 냄새였다. 죽은 것들에서 나는 냄새. 숙소의 간판에는 호텔이라고 붙여 놨지만 모텔이었다. 걱정과는 달리 숙박료가 비싸지 않았다. 사만 원이었다. 우리는 각 방을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제 여자가 말한 방이 몇 호인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후배는 어제 일을 기억하지 못했고, 나는 몸이 너무 추워 주인에게 방 두 개를 달라고 해서 각자 들어갔다. 옷을 갈아입고 우리는 주인이 알려 준 오리백숙 집으로 갔다. 차를 몰아 5분 정도 가면 되는 곳이었다.


오리백숙 가든은 홀이라든가 식탁이 있는 공간은 없고 전부 방으로 되어 있었다. 우리는 한 방으로 안내되어 백숙을 주문했다. 우리가 갔을 때 저녁 식사를 하기에는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손님이 없었다. 이렇게 외진 곳의 식당은 대부분 예약을 하고 온다. 우리처럼 이렇게 방문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호수가 근처라 낚시를 하러 온 사람들이 느닷없이 올지도 모른다. 방바닥이 따뜻했다. 오리백숙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백숙이 나오기 전 전갱이 튀김을 한 접시 주었다. 서비스라고 했다.


그는 전갱이 튀김을 한 입 먹더니 공깃밥을 주문해서 두 그릇을 비워 버렸다. 소주도 함께 마시더니 배가 부르다며 그대로 방바닥에 누워 잠이 들었다. 큰 접시에는 아직 전갱이 튀김이 많이 남아 있었다. 하나 먹으려고 젓가락으로 집이 들었다. 그 순간 전갱이가 이런 숲의 호숫가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바닷물고기도 어디든지 유통이 된다. 그렇다고 해도 그냥 서비스로 주는 전갱이 튀김을 이만큼이나 주다니. 어쩌면 이 많은 전갱이 튀김이 백숙보다 더 비싸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도 배가 고파서 하나를 집어 먹었다. 아주 맛있었다. 튀김옷은 바싹하고, 고기는 부드러웠다. 간장에 찍어 먹지 않아도 될 만큼 감칠맛이 풍부했다. 서비스로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주면 백숙은 못 먹는 게 당연하잖아. 그렇게 백숙이 나오기도 전에 나는 남은 전갱이튀김과 소주를 비워 버렸다. 술에 취하고 방도 따뜻하고 배도 부르니 나도 잠이 솔솔 쏟아졌다. 술이 들어가서 그런지 덥기도 해서 창문을 조금 열었다. 숲의 찬 공기가 방 안으로 확 들어왔다. 열어 놓은 창문 틈으로 작은 나방들이 들어왔다.


천장의 형광등 주위에서 나방들이 날아다녔다. 나방들은 마치 나에게 무슨 할 말이 있는 듯 나의 머리 위에서 우르르 맴돌았다. 일어나서 나방을 잡아야 하는데 몸이 무거웠다. 몸이 내 말을 듣지 않았다. 기운이 빠져나갔다. 전갱이 튀김에 무슨 짓을 한 모양이다. 다시 눈을 떴을 때 후배가 백숙이 들어왔으니 먹자고 했다.


[선배님? 많이 피곤하신가 봐요?] 라며 후배는 백숙을 뜯고 있었다. 후배는 전갱이 튀김을 먹고 먼저 잠이 들었는데 어떻게 된 일일까. 식탁 위의 전갱이 튀기도 보이지 않았다. 일어나 앉으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가 소주를 따라 주었다. 우리는 백숙을 뜯으며 소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여행 오기 전에 자주 나눴던 야경출사나 모델 출사 같은 이야기들이었다. 하지만 전부 겉도는 이야기들뿐이었다. 주절주절 모델 촬영에 대해서 후배는 계속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가 [선배님 때문에 여자 친구와 헤어질 뻔했잖아요]라고 했다. 한 번은 알고 지내는 여자 동생을 불러서 모델을 부탁했다. 여름이라 바닷가에서 촬영을 했다. 그 동생은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주말에는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얼굴이 예쁘고 섹시한 몸매에 옷도 짧은 치마를 즐겨 입는 스타일이라 호프집은 매일 만원이었다. 전부 남자 손님들이었다. 그 동생이 수영복을 가지고 와서 갈아입고 모델이 되어 주었다. 해변에 인어처럼 앉아서 파도를 맞는 장면을 촬영했다.


바닷물이 얼굴에 튀는 모습을 담아냈다. 여름이라 날은 푹푹 쪘고 한 시간이 넘어가니 무척 힘들었다. 그렇게 반나절이나 촬영을 한 다음에 세 명이 근처 국밥집에서 국밥에 소주를 먹고 헤어졌다. 그런데 후배가 그 동생에게 따로 술을 더 마시자고 해서 두 사람은 2차로 소주방에서 술을 마셨다. 그는 뭔가를 기대했을 것이다. 섹시한 여자와 하룻밤. 하지만 [걔, 술이 좀 되니까 집으로 가데요. 아니 이런저런 말도 없이 일어나기에 화장실에 가는 줄 알았는데, 그대로 집으로 가버린 겁니다. 그걸 여자 친구에게 들켜서 엄청 싸웠습니다. 아니 걔는 왜 그래요?] 그러나 내가 그걸 알 수는 없다. 후배는 많은 말을 쏟아내더니 백숙을 뜯고 소주를 들이켰다.


그 동생이 호프집에서 후배가 주말마다 찾아왔다고 했다. 그리고 같이 합석해서 맥주를 마시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 동생이 없는 호프집에서 술에 취해서 주인에게 시비를 걸었다. 술에 취해서 시비를 걸어도 아르바이트 때문이란 걸 표시 내지 않고 시비를 걸어야 했기에 더욱 흉포했다. 다행히 그의 친 형과 함께여서 마무리가 잘 되었다.


[선배님도 내가 잘 못 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건 그 동생이 나를 엿 먹이려고 한 겁니다. 분명 나에게는 아르바이트를 그만둔다고 한 적이 없어요. 나를 미친 사람 취급하시는 겁니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선배님은 그러면 안 되죠!]


그는 나를 노려봤다. 겁이 났지만 티를 낼 수 없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숙이고 조용하게 [아닙니다, 제가 나쁜 겁니다]라고 말하는 그의 입에서 시큼한 악취가 났다.


[창문은 네가 열었어?]라고 후배에게 물었다.


[좀 덥지 않아요? 여기 방이 너무 뜨거운데?] 라며 그는 창문을 조금 더 열었다. 나방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일어나서 나방을 잡으려고 했다. 기시감이 강하게 들었다.


[놔둬요, 나방도 목숨이 있는데]


[나방이 너무 많이 들어왔으니 쫓아내야 할 거 아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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