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4.
가족이지만 타인보다 더 먼 관계의 가족도 있다. 가족이라고 해서 전부 알지 못한다. 가족은 온갖 문제가 산적해 있는 곳이다. 대문이 닫히고 나면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하물며 일 년 정도 알게 된 후배에 대해서 내가 안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여행을 와서 그는 일반적은 것에서 동떨어졌다. 새벽 네 시가 되어 간다. 커피 마시기에는 이르고, 술을 마시기에는 늦은 시간이다.
이런 새벽에 낯선 곳에 누워 있으니 이러다가 집에 가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대로 아침까지 뜬 눈으로 보냈다. 그는 거짓말처럼 몸 한 번 움직이지 않고 잠이 들었다. 입 가까이 다가갔지만, 악취는 나지 않았다. 불과 몇 시간 전의 일들인데 까마득한 옛날의 일처럼 느껴졌다. 창문으로 여명이 지는 게 보였다. 새벽에만 볼 수 있는 빛이다. 아름다우면서 찬란하기에 새벽에 일어나지 않으면 볼 수 없는 빛이다.
빛이 창을 통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빛이 따뜻하다고 느껴졌다. 따뜻함을 넘어 조금씩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이상하다? 빛이 왜 이렇게 뜨겁게 느껴지는 걸까. 그때 그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아침이었다. 두꺼운 이불이 덮여 있었다. 후배는 이미 일어나 씻고 로션까지 바른 상태였다. 시간을 보니 오전 8시였다. 턱을 움직여 보았다. 좀 나아진 것 같았다.
[어제 바로 잠 들어서 푹 잤어요. 오늘은 하루 종일 운전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선배님] 그가 말했다.
바로 잠들다니? 바로 잠든다는 건 언제를 말하는 것일까? 이제 다방에서 커피를 배달시켜서 마셨는데, 다방 레지가 돌아간 시간이 자정이 넘었다.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꿀꺽 삼켰다. 어젯밤에 있었던 이야기를 죽 들려주었다. 후배는 무슨 말을 하냐는 식이었다. 자신은 노다가를 해서 일찍 잠들고 항상 일찍 일어난다고 했다. [이제 챙겨서 나가자] 나는 어제 여자가 말해준 곳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후배는 듣자마자 오늘은 그곳에서 묵자고 했다. 이상하고 또 이상했다. 후배는 어제 반대했었다. 단칼에 거절했다. 하지만 어제 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정말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곳에는 도로가 비포장이라 차가 들어가기에 힘들다고 네가 어젯밤에 말했는데?]
그는 바로 폰으로 바로 거리 뷰를 찾아보았다. 나에게 보여주며 이 정도는 괜찮다고 했다. 집집마다, 건물마다 다니며 욕조나 화장실 보수 공사를 하다 보니 어디든 잘 가야 한다. 후배는 그렇게 말했다. 점점 알 수가 없다. 씻으려고 욕실에 들어가니 욕실이 더러웠다. 청소를 하지 않아서 더러운 게 아니라 오랜 시간 쌓이고 쌓인 그런 때가 타일과 타일 사이에, 천장에, 무엇보다 욕조에 가득 끼어 있었다.
밤에 봤을 때는 이것보다는 덜 한 것 같았다. 이런 욕조에서 내가 몸을 담갔다니. 아니 내가 목욕을 해서 이렇게 된 것일까. 뭐가 뭔지 알 수 없다. 물을 트니 수돗물에서 냄새가 났다. 머리카락도 나왔다. 머리카락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머리카락만큼 얇은 실지렁이 같은 거였다. 후배의 입에서 봤던 그 실지렁이였다. 어제 욕조에 몸을 담갔을 때 내 몸에도 들어왔을까.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이 여관은 청소를 하지 않는 것일까. 씻지 않고 그냥 나와서 짐을 챙겨서 방을 나왔다.
오전에 보는 모텔의 모습은 푸석푸석했다. 복도 벽에 가까이 가서 후 불면 먼지가 연기처럼 나왔다. 분명 손님은 우리 밖에 없을 것이다. 열쇠를 건네려 1층 카운터로 내려가니 한 커플이 모텔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열쇠를 주인에게 건네줄 때에도 한 커플이 팔짱을 끼고 내려왔다. 손님들이 있었다. 이상하고 이상했다. 이 모텔은 내가 생각하면 여봐란듯이 반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후배는 꿀잠을 잤다며 아주 팔팔했다. 나는 너무 피곤했다. 어깨에 아령을 올려놓은 것 같았다. 후배는 마치 와 본 것처럼 순천의 여기저기를 안내했다.
[여기 와봤어?]
그는 오기 전에 검색을 해봤다는 것이다. 검색을 한다고 해도 그렇지. 이렇게 세세하게 알 수 있을까. 그렇게 해서 좀 외진 곳까지 왔다. 배가 고팠다. 식당을 찾자. 허름해 보이지만 운치 있는 외관의 식당을 찾았다. 주위에 그 식당 하나뿐이었다. 일단 들어갔는데 메뉴판을 보니 제일 저렴한 음식이 오만 원이었다. 어차피 비싼 돈을 주고 음식을 주문해도 그는 밥 한두 공기 먹고 배불러서 숟가락을 놓을 텐데. 후배도 너무 비싸다며 나가자고 했다.
[우리가 먹기에 너무 비싼 곳이군요]
식당은 겉으로 봤을 때 정식이나 갈비탕이나 고등어조림 같은 음식을 파는 곳인 줄 알았다. 이렇게 비싼 음식을 판매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식당을 나오는데 종업원이 우리에게 흥정을 했다. 삼만 원에 먹을 수 있는 메뉴가 있다고 했다. 앉아서 삼만 원짜리 메뉴의 이야기를 듣는데 20분이 흘렀다. 후배는 종업원을 노려봤다.
[우리에게 바가지를 씌우려고 그러는구나?]
종업원은 후배의 말을 듣고 주방으로 달려갔다. 우리는 그 사이 재빠르게 식당을 나왔는데 주방에서 나온 종업원의 손에는 뭔가가 들려 있었다. 우리는 차까지 달렸다. 후배는 마치 해 본 것처럼 재빠르게 차에 타서 시동을 걸고 기어를 풀었다. 종업원은 우리를 향해 손에 든 것을 던졌다. 종업원의 얼굴은 찍어낸 듯한 마네킨처럼 무표정이었다. 무표정이라고 하기에도 이상했다. 표정이 없을 뿐 아니라 얼굴에서 풍겨야 할 사람의 의미 같은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종업원이 우리 차에 집어던진 건 소금인 것 같았다.
하지만 모른다. 정말 소금인지, 무슨 약품인지. 차에 부딪치는 소리가 소리가 쏴아아 악 하며 재수 없는 소리였다. 주방에서 칼이나 가위를 들고 오지 않아서 오히려 다행일까. 알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다. 식당에도 손님은 없었다. 일하는 사람이라고는 종업원 혼자였다. 봉고를 몰고 시골의 슈퍼 같은 곳 앞에 정차를 했다. 편의점은 아닌데 편의점 같은 곳이었다. 그곳에서 컵라면을 먹었다. 후배는 컵라면은 세 개나 먹었다. 왕뚜껑과 새우탕면과 스낵면을 먹었다.
다시 한번 어젯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카메라에 녹화된 영상도 없었고, 후배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순전히 내 기억의 오류일까. 그는 컵라면 세 개를 먹고 국물까지 다 마셨다. 우리미 컵라면이라고 해도 세 개를 다 먹어 치우다니. 다 먹고 난 후에는 돼지바와 부라보콘까지 사 먹었다. 밥으로 식사할 때와는 달랐다. 그저 밥이 없을 뿐인데 이렇게 많이 먹다니, 여행을 오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던 모습이었다. 다행히 날은 좋았다. 우리는 순천의 영화 촬영지인 용혜원에 사진을 담으러 갔다.
그곳은 최근의 [폭싹속았수다] [밀수]를 비롯해서 [에덴의 동쪽] [빛과 그림자] 등 많은 드라마가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우리는 달동네 안을 구석구석 다녔다. 온몸이 피곤했다. 세포하나하나까지 전부 피곤했다. 하지만 그는 깃털처럼 가벼운 지 날아다녔다. 촬영지는 온전히 6, 70년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포니 택시도 있었다. 빨래가 널린 집도 있어서 누군가 살고 있나? 할 정도였다. 봉천상회나 방앗간도 보였고, 리어카도 보였다. 정감 있었다. 사진을 담고 있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2월의 비는 축축하다. 아직 봄이기 전의 비라 차갑고 생명력은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는 비를 피해 달동네 그 위의 집으로 들어가 비를 피하고 있었다. 저 앞에 우물도 보였다. 우물이 있으면 이야기가 많아진다. 누가 빠져 죽었네, 어쩌네 하면서. 후배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가 고개를 돌렸는데 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후배를 불렀다. 저 밑의 한 곳에서
[저 여기 있어요, 비 내리는 모습 사진 찍고 있습니다, 선배님]라는 말이 들렸다.
후배는 언제 내려갔을까. 나는 우물에 비가 내리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비를 좋아한다. 나는 비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 비가 별로다. 비가 내리는 모습을 보는 건 좋지만, 한두 방울이라도 비 맞는 건 싫다. 우물 근처로 비가 떨어졌다. 그때 누군가 쓱 지나갔다. 여자였다. 지나가면서 얼굴을 돌려 나를 봤는데, 턱이 길고 앞니가 많이 나와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던 어제의 그 여자였다.
잰걸음으로 지나쳐가는 것이다. 나는 일어나서 여자를 불렀다. 하지만 여자는 대꾸도 없이 가버렸다. 여자는 후배가 있는 쪽으로 가고 있었다. 내 기억이 잘못되지 않았다. 비를 맞으며 여자를 따라갔다. 여자는 잰걸음인데도 요리조리 불안한 바닥을 딛고 잘도 걸어갔다. 싫어하는 건 피한다고 해서 피하게 되는 건 아니다. 비를 맞으며 여자를 찾아다녔다. 여자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비가 거세게 내렸다.
나는 후배를 찾았다. 달동네를 돌아다녔다. 저기 보이는 작은 골목길에서 후배는 여자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곳으로 달려갔다. 비가 갑자기 쏟아져서 손으로 비막이를 만들었다. 눈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쏟아졌다. 나는 살금살금 다가가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