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하늘

by 교관
다운로드_(3).jpg


아침부터 날이 흐리고 하늘이 잿빛이면 오후가 되어서도 오전 10시 37분 같은 기분이다. 이제 겨울의 시작인데. 패치카에서는 미미한 열을 뿜어내고 마시는 커피는 아직 온기가 남아있고 틀어 놓은 라디오에서는 알 수 없는 팝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다. 오전의 사각거림이 오후가 되어서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날이 하루 종일 흐리다고 해도 흐린 날에 늘 이런 기분은 아니다.


보통 겨울의 이런 날은 하루 종일 흐려야 오후가 되어도 오전의 평온하고 고요한 느낌이 이어진다. 찬란하지는 않지만 이런 계절의 이런 날은 언제나 좋다. 특별한데 평면적이다. 아니다, 보통적인데 평면적이지 않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곧 울어버릴 것 같은 5세 아이의 얼굴처럼 보인다. 겨울에 날이 흐리면 고요가 대기에 침잠하고 그 많던 새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사색은 날씨에 기인한다. 깊은 사색을 하고 잠이 들면 악몽을 꾼다. 세상의 사람들이 자기 방어를 위해 전부 총을 들고 다니며 서로를 죽인다. 총을 맞은 사람은 몸에서 목이 떨어져 나가 버리고 만다. 꿈이지만 충격적이다. 나만 총이 없다. 그런데 나만 살아남고 모두가 죽는다. 죽어야 꿈에서 깨어날 수 있다. 나는 죽고 싶지만 그러지 못한 상태로 계속 살아가야 하는 꿈이다. 고립 속에서 홀로 영영 살아가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무인도에 갇혀 죽는 게 무서운 것이 아니라 홀로 영영 죽지 않고 사는 게 무서운 것이다. 우리는 어쩌다 죽고 우리는 어쩌다 살아가고 있다. 어쩌다 살아가고 있기에 죽음을 불길하게 여겨선 안 된다.


곧 비가 내릴 것 같다. 느닷없이 내리는 비에 비해 예고된 비는 다른 무엇인가가 있다. 그래? 그것이 뭐야?라고 물어봐도 대답할 길은 막막하다. 하지만 12월에 내리는 비는 3월 초에 내리는 비 와도 다르고 10월 말에 내리는 비 와도 다르다. 12월에 내리는 비는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같은 비의 느낌은 아니다. 그렇지만 독특한 무엇이 있다. 12월에 내리는 독특한 비는 잿빛 하늘과 메마른 도시와 표정 없는 자동차들을 차갑게 적신다. 아직 준비도 안 됐는데?라고 해봐야 그런 사정 따윈 봐주지 않고 비는 세상을 적신다.


매거진의 이전글사진 속 최진실은 그대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