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에세이
어느 날 배철수의 음악캠프(이하 배캠)에서 선물이 왔다. 배캠을 아주 오랫동안 들었던 나는 배캠에서는 선물이 없는 것으로 안다. 아주 오래전, 배철수의 초기 시절에는 구두상품권도 주는 등 선물이 있었지만 현재는 아마도 유일하게 라디오 프로그램 중에서는 선물이 없는 것으로 안다.
그랬던 배캠에서 선물이 날아왔다. 뭐지? 폭탄인가, 라는 생각은 터무니없지만 장난을 치는 줄 알았다. 라디오에서 선물을 몇 번 받은 적이 있었다. 예전에는 늘 라디오를 들으며(요즘은 유튜브를 틀어 놓고 있다) 일을 했기에 라디오 프로그램이 바뀔 때마다 짧든 길든 사연을 적어 보냈고 어쩌다 얻어걸려서 정오의 희망곡에서 두 번 정도 선물이 왔었다.
먼저 라디오 프로그램 중에 선물이 가장 많은 라디오는 최유라가 조영남과 같이 했을 때 ‘지금은 라디오 시대’였다. 거기는 워낙에 선물의 폭이 크고 넓어서 아파트와 자동차까지 협찬이 들어왔지만 라디오 측에서 거부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양문 냉장고부터 매일매일 선물이 팡팡 터지는 곳이 지금은 라디오 시대였다. 그도 그럴 것이 라디오로 오는 사연을 들으면 정말 소설 같아서 그만 빠져들게 되고 1등에게는 선물을 주지 않고서는 안 될 것만 같았다.
내가 라디오를 매일 매시간 들으며 실시간으로 사연을 보내다가 2016년도부터는 잘 듣지 않게 되었다. 그 뒤로는 유튜브를 하루 종일 틀어 놓는다. 아마도 그 시기에 지금은 라디오 시대의 조영남이 박수홍으로 바뀌지 않았나 싶다. 조영남은 라디오 디제이 중에서 가장 웃긴 사람이 아닌가 할 정도였다. 그냥 하고 싶은 말은 깔때기 없이 쏟아냈다. 그런 조영남을 잘 구슬리고 어르고 달래는 최유라가 있어서 지금은 라디오 시대가 가장 인기가 많은 프로그램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조영남의 그림이 마음에 들었는데 조영남의 그림을 보면 묘하게도 필립 거스턴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나는 필립 거스턴의 그림을 좋아해서 거스턴의 그림을 몇 번 따라 그리고 합성을 하고 출력을 했었다. 화투 그림들을 보면 거스턴의 구상화의 분위기가 물씬 나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어찌 되었던 배캠을 들으며 신청곡을 수없이 보냈고 또 거기서 많이도 틀어주었다. 데미스 루소스의 노래를 신청하면 피디가 댓글로 지난주에 나갔으니 미안하다는 멘트도 달아줄 정도로 나는 배캠의 어떤 대접받는 손님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한 번은 듣고 싶었던 노래가 U2의 One이었는데 메리 제이 블라이즈와 함께 부르는 버전을 신청했다. 그런데 유튜의 보노 혼자서 부르는 버전으로 나왔는데 끝나고 메리 제이 블라이즈와 함께 부르는 버전으로 또 한 번 틀어주었다. 배철수도 메리 제이 블라이즈와 함께 부르는 버전을 언급했다.
배철수는 여름휴가를 가면 보통 20일 정도 간다. 그 기간에는 다른 디제이가 땜빵을 한다. 안타깝게도 신해철이 땜빵한 것이 신해철의 마지막 방송이었던 경우도 있었다. 김혜수, 유해진, 심은경 등 여러 셀럽들이 하루씩 배철수가 없어진 자리를 지켰다. 배철수는 보통 긴 휴가 동안 해외에 나가서 음악 페스티벌을 돌아다니는 걸로 알고 있다.
재미있는 건 배철수가 휴가를 가기 전에는 게시판이나 실시간 댓글에 모두가 배철수에게 그렇게 가면 섭섭하다는 글들이 전부다. 긴 시간 동안 어떻게 떨어져 지내느냐, 같은 글들이 대부분이지만 김혜수가 다음 날 나타나서 디제이를 하면 배철수는 금방 잊힌다. 모두가 김혜수를 반기며 기다렸다고 하며 반응이 대단하다. 배철수는 기억 저편 너머로 가버리고 만다. 웃음.
그래서 그런지 휴가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일주일 정도 지나면 슬쩍 배철수가 나타나서 이틀 정도 디제이를 하고 다시 남은 휴가를 보내기 위해 가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아마도 배철수는 알고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배철수가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떠나기를 바라지 않고 있지만 ‘임진모의 음악캠프’로 바뀌면 사람들은, 대중은 배철수는 금세 잊고 임진모를 반기고 응원하리라는 것을. 사람들은 과거보다는 현재를 더 중요시한다는 것을.
어찌 되었던 그러다 보니 배캠을 매일 들으며 참여하게 되었고 어느 날 뜬금없이 선물이 왔다. 의심반 기대 반으로 상자를 뜯었던 기억이 있다. 재미있는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