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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Sep 08.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207

9장 3일째 저녁

207.

 지구 상에서 인간이 사라진다면 동물들이 지구의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엄청난 질소를 뿜어대며 녹색을 지닌 생물이 인간이 빠져나간 자리에 들어앉을 것이다. 건물을 뒤덮고 도로를 가득 채울 것이다. 강변이나 마을의 잘 가꾸어진 정원의 풀들은 인간에게 친절하다. 사진의 배경으로 우리와 친밀함을 가득 드러내기도 한다. 그렇지만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숲에 들어가게 되면 사정은 달라진다. 하늘을 제외하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녹색으로 덮어버린 그곳에 서 있으면 낮이라도 공포다. 사방에 녹색의 그것들은 바람에 의해서만 하늘거릴 뿐 전혀 자의로 움직이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깊은 산속의 그것들에 둘러싸이면 두려워진다.


 풀잎은 때로 날카로워서 사람에게 상처를 낸다. 마동은 너구리를 피해 도망 다니면서 얼굴을 베였다.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 마동은 손을 들어서 뺨을 한번 만졌다. 수풀이 무성하게 우거진 산속으로 사람들은 쉽게 접근하지 못한다.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산의 모습이지만 그 속에 들어가면 숲은 살아서 너희 세계로 나가라고 적요한 외침을 지른다. 마치 뱀의 소굴에 들어온 것처럼 무섭다. 그래도 나가지 않으면 숲은 인간을 고립의 세계로 인도한다. 산은 바다와도 같다. 갈매기가 하는 말을 들었다. 자연은 아주 자연스러운 공포를 지니고 있다.


 인간의 세계에 도사리고 있는 테러블 한 것과 거리가 있는 공포다. 숲의 무서움은 찰나로 한꺼번에 해를 가하지 않는다. 서서히 차분하게 마음을 잠식한다. 한없이 연약해 보이는 잡초에 지나지 않아 손으로 쑥 뽑아버리면 그만인 것들은 돌처럼 가만히 놔두면 물을 주지 않더라도, 일일이 관리를 해주지 않더라도 어디든지 기어오르며 영역을 넓혀간다. 사람의 손길을 타지 않는 편이 그들에게는 더 마땅한지도 모른다. 인간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순간 그들은 언어를 무시한 채 도로를 덮고 집을 덮고 다리와 댐을 전부 덮어버린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증식방법으로 개체수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리고 상황에 맞게 변이를 감행하며 멀리까지 진화해 나간다.


 철탑 밑의 풀은 관리해 주지 않는다면 아마도 철탑의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송전을 방해할 것이다. 철탑을 관리하는 대상자가 어떤 집단인지는 몰라도 철탑을 관리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존재한다. 특정한 그들이 꾸준하게 철탑을 관리해 오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어두워지고 계절이 끝나가는 겨울이 되면 도심지 속의 숲이지만 이곳은 두려움과 무서움을 동시에 지니게 되는 공간으로 바뀐다. 도시의 한낱 작은 마을의 뒤편에 있는 산으로 불리지만 너구리와 고라니, 요즘 같은 계절에는 뱀도 많이 나온다. 지역구를 이어주는 산이기 때문에 규모는 여러 종류의 철새 떼가 힘차게 하늘을 덮고도 남을 만큼 거대했다.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구청에서는 마동이 누워있는 산을 가꾸는데 돈과 시간을 엄청나게 투자했다. 산의 외모는 살리고 동물들과 자연을 유지하며 산으로 둘러싸인 저수지의 보존에도 돈을 쏟았다. 저수지의 물고기는 외래어종의 방해를 받지 않고 세월이 흐르는 동안 자리를 잡았고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마동이 누워있는 자리에 높고 거대한 철탑이 들어섰다. 덕분에 구청장은 재선에서도 구민들에 의해 선택을 받았다.


 철탑이라는 것은 가까이 와서 보지 않으면 규모나 모양에 대해서 흘려버리기 쉬운 철골 구조물이다. 누운 채로 올려다보는 철탑의 꼭대기는 마치 바벨탑의 꼭대기처럼 다른 세계로 뻗어가지 않을까 하는 착각이 들었다. 철탑은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져 인간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인간 이외의 것들과 수명이 다 할 때까지 인간을 위해서 지낸다. 다양한 산짐승들의 영혼이 철탑 근처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마동은 짙은 냄새와 촉감으로 알 수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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