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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의 미학 : 운명의 도움을 불러들이자

선한 운명을 많이 사귀자


전 가끔 토정비결을 봅니다. 시중에 나와있는 토정비결 책은 그리 어렵지도 않고, 만세력을 읽을 줄만 알면 금방 볼 수 있어 사놓고 연말 연초에 펼쳐 봅니다. 봐서 좋으면 믿고, 안 좋으면 안 믿고 하지요. 어떤 사람들은 ‘뭐 그런 걸 보냐?’고 하면서, ‘기왕에 책이 있으면 내 것도 봐줘!’합니다. 또 누구는 ‘세상은 자기가 원하면 뭐든지 할 수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난 장사는 운칠기삼이 아니라, 운구기일(運九氣一)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성공하기를 원하지만, 실제로 성공하는 사람은 십분의 일도 되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렇다고 나머지 90%이상의 사람들도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게으르거나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살았지만 결과는 엄청나게 다르지요. 결국 그 차이는 ‘운’이 그만큼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카오스’라는 책이 있습니다. 자연은 언제나 비슷하게 돌아가는 것 같은 데, 결정적이 순간에 어떻게 어느 방향으로 변할 지를 도무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나오는 것이 ‘나비효과’이지요. 아무리 슈퍼컴퓨터를 수 십대 돌려도 아직 인간의 기상예측은 하루는 넘어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컴퓨터로 실컷 밤새 계산하고는, 결정적인 해석은 인간의 숙련도에 따른다고 하니 아직도 완전히 컴퓨터가 예측한다고 할 수는 없지요. 그만큼 미래는 예측이 불가능한 것이 당연합니다. 


연준혁과 안상복이 지은 ‘보이지 않는 차이’를 보면 “대부분의 사람이 애매모호한 것을 답답해하며 참지 못합니다. 애매한 상황이 닥치면 그것을 확실하게 통제하기 위해 분석하고 계획하고, 목표부터 수립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때로는 분노를 터뜨립니다. ‘이것인지, 아니면 저것인지’ 분명하게 매듭짓자며 목소리를 높입니다. 사실은, 성급하게 가능, 불가능을 결정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인생에 좋은 재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인지 아니면 저것인지’ 섣부르게 선택을 하고나면 가능성이 대폭 줄어들어요. 의외의 행운이 들어올 틈이 없게 되지요. 그 대척점에 선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조용히 성공을 일궈내고 그것을 지켜냅니다. 그들은 세상살이가 만만치 않다는 신조를 가지고,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고 봅니다. 차이는 ‘가능성 항아리의 뚜껑을 언제나 열어놓고 있느냐’에서 달라집니다. 그러니까 이방원의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의 드렁 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하면서 살다보면 좋은 날도 올 거라는 믿음을 놓치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그야말로 열심히 살되 ‘who knows'라는 심정이 되는 거지요. 운(運)이라는 글자를 풀어보니 더욱 그렇습니다.

운(運) = 천천히 걸어갈 착(辶) + 덮을 멱(冖) + 수레, 바퀴 차(車)

 = 수레위에 싣고 덮은 뒤(그래서 알 수 없다) 천천히 이동해간다.

이런 걸 볼 때마다 한자라는 게 참 멋있는 글이라는 감탄이 절로 나지요.


얼마나 오래가야 할지 모르지만, 난 충분히 오래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 손금에 나타난 생명선이 기니까요. 이 말하면 또 누가 그럴 지도 있습니. ‘아니 그렇게 사주팔자가 좋은 사람이 왜 아직 그 모양이야?’ 아, 그거요. “선인들은 지금 운이 나쁘다면, 과거의 악업을 청산해주는 과정이라고 받아들였다고 하네요. 예전의 빛을 갚기 위해 지금의 시련이 있는 것이란 해석이었지요. 일종의 ‘중간정산이란 의미’입니다. 예 맞습니다. 전 지금 중간정산하고 있습니다. 거참 해석이 좋다고요. 이 책을 쓴 사람도 마지막 결론이 그겁니다.

“좋은 해석 앞에서는 아무리 무서운 불운과 악운이라도 꼬리를 내리고야 만다는 것이다


그리고 운명의 도움을 받기 위하여 제가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우연’이 일어날 만한 일들을 자꾸 만드는 거지요. 우연이란 내가 의도하지 않았는데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져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이지요. 그런 일이 자주 생기게 하는 겁니다. 그 것도 될 수록이면 좋은 방향으로 말입니다. 어떻게 하냐고요?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자주 만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계속해서 말하고, 글로 쓰고 다닙니다. 흔히 마케팅에서 말하는 입소문이지요. 또 다른 전문용어로는 ‘들이대’라고도 합니다. 어떤 분이 말씀하시더라고요. 한국에서 제일 좋은 대학은 ‘서울대’가 아니라 ‘들이대’라고요. 맞는 말입니다. 여기저기 들이대면서 ‘나 괜찮은 놈’이라고 소문내다보면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생각지도 않은 일이 우연히 저에게 옵니다. 하지만 제가 가만히 있었다면 그런 우연이 벌어질 가능성이 별로 없었겠지요. 그래서 저는 이런 일을 ‘의도된 우연’이라고 부릅니다. 제가 만든 단어입니다. 왜냐하면 전 운명론자이니까요. 그래서 ‘운명’이라는 친구를, 그 것도 ‘선한 운명’을 친구로 많이 두고자 노력합니다. 하나의 운명이 아니라 수많은 운명을 사귀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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