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들은 인류의 문제를 만들어왔다
과학의 한계
세상을 지극히 낙관적으로 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종말, 한계라는 말은 참으로 어리석은 단어이다. 특히 어떤 학문의 학자들이 자신이 종사하고 있는 학문이 더 이상 발전할 수없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의 무덤을 파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존 호건이 쓴 ‘과학의 종말’을 읽고서는 대단한 충격을 받았다. 물리학은 양자학과 우주론에서 발견의 효율성의 한계에 도달하였고, 생물학에서는 다윈의 종의 기원론이상의 원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미국과학진흥협회 회장인 벤틀리 글래스는 생물학에서 위대한 혁명은 이미 지나간 것같다고 말했다. “나로서는 생물의 진화에 대한 다윈의 견해나 유전의 본질에 대한 멘델의 이해와 같은 포괄적이고 중대한 발견이 다시 이루어지기는 힘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그런 것들은 이미 밝혀졌으니까요!.” 글래스는 생물학자들이 암이나 에이즈와 같은 질병에 대해서 그리고 뇌와 정신의 관계에 대해서 이미 많은 사실들을 알아냈음을 힘주어 강조하면서, “앞으로 현재 알려져 있는 지식구조에 새로 많은 지식들이 추가될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대한 진전의 상당 부분은 벌써 이루어졌습니다. 우리의 형성되어가고 있는 개념적 우주에 진실로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인지의 여부가 문제일 뿐입니다”
글래스는 생물학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속도에 대한 그의 분석에 따르면 발견의 속도는 생물학자들의 수 및 그들에 대한 지원금의 지수함수적 증가와 보조를 맞추지 못했음을 보여주면서 “놀라운 업적들이 이루어지는 속도가 부인할 수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가속화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이 수확체감의 시대에 돌입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결국, 이런 진전을 계속 유지시키려면 더 많은 과학적 노력이 쏟아부어지고, 더 많은 연구비가 지원되어야만 한다. 이 행진은 곧 멈추어질 것이다. . 왜냐하면 과학연구에 소요되는 인적 자원과 경비에는 극복하기 힘든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세기에 과학은 너무도 빠른 속도로 성장했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발전속도가 무한히 계속되리라는 식의 빠져있던 것이다.” 그는 또한 사회적인 사업으로서의 과학에는 분명히 일정한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만약 과학이 금세기 초와 같은 속도로 발전을 계속했다면, 선진 공업국들의 예산 전체를 삼켜버리고 말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과학, 특히 순수과학에 대한 예산 지원에 분명한 제약이 가해져야 한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자명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런 감속의 가장 두드러진 사례로 1993년 미국 의회가 초전도 초거대 입자가속기 계획을 중단시킨 사건을 들었다. 이 거대한 입자 가속기는 물리학자들의 쿼크와 전자 이하의 소우주의 깊은 영역으로 들어갈 수있게 해줄 것으로 기대되었던 장치였으며, 제작에 들어가는 총 비용은 80억 달러에 불과했다. 이제 과학자들은 우주론이나 양자론의 합일을 일구어내 만물의 단일이론을 만들어내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있으며, 그 이론을 증명하기도 어렵다. 과학자들의 우주론이나 양자론에 대한 해석은 개인적인 미학적이고, 철학적인 수준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것이 물리학의 운명이고, 앞으로 기업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물론, 심지어 상아탑에 몸담고 있는 대다수의 물리학자들도 일말의 의심을 품지 않은 채 다목적으로 활용 가능한 레이저나 초전도체의 개발 또는 전자소자의 제작 등에 거리낌 없이 적용해 나갈 것이다. 마침내 과학자들은 한계에 도달한 우주와 생명의 심오한 원리를 찾아 명성이라는 초라한 보상을 찾기 보다는 이미 알려진 원리를 이용한 실용적 차원을 넓혀감으로써, 금전이라는 화려한 보상을 찾아 나서고 있다. 과학 기술자라는 용어가 우리에게 낯설지 않게 된 이유이다. 진리를 찾기에는 이미 수확체감의 법칙에서도 한참을 지난 양자역학, 광학, 생물학 등이 순수학문에 울타리를 떠나, 반도체 공학, 생명공학, 정보 공학등의 응용과학을 이용한 제품들이 우리에게 생활 속으로 급속하게 파고들어 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의 하나이다.
아무리 과학이 궁극의 진리를 발견하기가 어렵다하여도 그들이 상아탑에서 연구를 할 수만 있다면, 순수 과학에 헌신할 수 있는 학자들은 아직도 많을 것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그들을 현실세계로 끌어들인 것은 아마도 상아탑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치열한 경쟁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국제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선진국 대부분이 기술이전에 인색해지고 있고, 연구개발에 대한 보조금 및 지적 재산권에 대한 국제 규제가 심해지는 등 기술을 둘러싼 국제환경이 갈 수록 악화되고, 새로운 경쟁우위요소로서의 기술력은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현대의 제품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전자제품은 양자학에 대한 연구가 없이는 개발자체가 어렵다. 반도체는 전자의 움직임을 연구하는 양자물리학이 이용되는 최첨단의 한부분이다. 생명공학은 생물학이 공학화 된 부분이다. 하지만 기업이나 국가는 기초과학이 ‘진리의 탐구’라는 고상한 의무를 인정하기에는 어려운 일이 너무 많아,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을 먼저 따져보아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따라서 연구비를 지불할 때에도 산업화, 상품화의 가능성부터 점쳐보고 준다. 과학자들에게 있어서 상품화 되지 않은 과학적 성과는 무의미하며, 그 들은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 심오한 원리를 찾기보다는 상품화를 염두에 두고 소비자의 구미를 끌만한 제품의 생산에 도움이 될 만한 연구재료를 찾아야만 기업으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있다. 과학자로서는 학문적 한계와 더불어 사회적인 의무의 덫에 빠져나올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과학이 과학 기술과 합쳐지고, 그 결과가 상품화되면서 우리는 한 때 유토피아의 도래를 꿈꾸었다. 그러나 과학과 지식이 발전할수록 우리는 점점 더 어둠에 빠지고, 알 수도 없는 환상 속을 살아가게 되는 것 같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던 세상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우리는 현실 검증에 문제를 갖고 있으며 정신과 의사들이 ‘현실감 상실’이라고 부르는 증상을 보이고 있다. 그 것은 가끔 아무 것도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현상이다. 인간이 존재하면서부터 변치 않는 진리는 ‘인간은 땅을 밟고 사는 동물이다’이다. 그러나 이제 인간은 ‘가상의 세계를 떠도는 동물이다’라는 새로운 정의로 바뀌어야 할 것같다. 컴퓨터를 하면서, 인터넷을 하면서, T.V를 보면서, 핸드폰을 하는 등 가상의 세계에서 움직이는 세계를 따져본다면, 의식을 가지고 있는 시간중의 절반 이상이 될 것이다. 그 스크린 속으로 우리는 달려들어 가고 있다. 이제 물질적인 것의 가치는 적어지고, 정신적인 것의 가치가 더 커져가고 있다. 정신적인 것이라는 것을 생산적인 면에서 보면, 바로 ‘아이디어’이상의 것도, 그 이하의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것은 창고에 넣어둘 수도 없고, 일단 남에게 알려지면 내 것도 아니다. 빠른 시일 내에 스크린에 올려야만 비로소 남에게 내 것이라고 잠시나마 인정을 받는 것이다. 육체는 이제 정신에서 분리되었다. 하지만, 육체의 반응 체계는 여전히 원시시대를 간직하고 있다. 원시시대 갑작스러운 아드레날린의 분출은 적 또는 사냥감과 맞서 싸우게 하거나 도망치도록 반사 신경에 명령을 내린다. 이에 따라 인간은 상황을 판단해서 싸우거나 도망을 친다. 그런데 이 아드레날린은 스트레스가 생겼을 때도 분비된다. 하지만 적은 다른 곳이 아닌 바로 우리의 정신 속에 있다. 도망가거나 싸울 수 없다. 다만, 스트레스를 강화시킬 뿐이다. 그런데 이 모든 내면적 속 끓임은 우리 삶에서 광기를 유발하는 매커니즘을 가속시킨다. 그리고 그 것이 이 시대를 대표하는 뿌리깊은 공통점인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는 모두 약간씩 미쳐가고 있는 것이다. 욕망의 진화를 쓴 멜린다 데이비스는 이를 ‘현대적 광기의 공유상태’라고 한다. 사람들은 이러한 지속적인 정신불안정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다시 가상의 세계로 도피하거나, 축적된 분노를 폭발시키기도 한다. 십대의 청소년은 컴퓨터로 숙제를 하면서, 동시에 음악을 듣고,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전화 통화를 하고, 인스턴트 메시징을 통해 친구들과 대화를 주고 받는다. 결국 우리가 처한 현실에 대한 위안의 첫 단계는 평화와 조용함 속에서가 아니고, 전자 스크린의 자극을 통해 진행되는 것이다. 분노의 폭발은 우발적인 개인적의 폭발로 난폭운전, 사업장 내에서의 증가되는 폭력등을 들 수 있으며, 또 다른 특이한 형태의 집단적 분노는 ‘분노의 아마조아니즘(Raging amazonianism - 강력한 힘을 가지고 남성을 지배하는 여성상과 그와 관련된 문화적 흐름)이다. 교활함. 섹시함과 남자못지 않은 근육질로 거친 행동과 분노로 무장한 강한 여성의 모습은 섹시 헤로인으로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치유를 받아야 할 상태에 도달하였다. 그런데 의사에게 가기에는 너무나 일반적이어서 아무도 치료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가상의 세계로 진입한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인 사람들에게 현재는 ‘완벽한 조건을 갖추어가는 신세계’로의 과정인 데, 이를 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강박증이라고 타박을 한다. 그러나 현실을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간에 우리는 아주 훌륭한 치유자를 만나게 되니 그가 바로 ‘판매자(마켓터)’이다. 치유자로서 판매자, 이 탁월하면서도 재미있는 개념을 발굴해낸 멜린다 데이비스에게 찬사를 보낸다.
과학의 발전으로 인한 혜택은 점점 좁아지고, 과학의 발전으로 인하여 발생한 문제는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과학의 발전 속도는 급격하게 느려지고, 소요되는 자금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났다. 정말 과학이 근현대에 발전하던 속도 이상으로 빨라져서 지금의 문제를 풀 수 있다면, 우리 세대이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자원도 다 떨어지고 더러워진 지구를 다중우주의 웜홀을 통해서 깨끗하고 자원이 풍부한 다른 행성으로 가면 된다. 문제는 정말 그럴 만큼 과학이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가도 걱정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