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 포괄세부적 급속점진적 북핵 인수
이제까지 북한의 비핵화는 북한이 먼저 가지고 있는 핵무기, 핵생산 시설, 연구시설 및 연구인력에 대한 목록을 제출하면, 미국이 이를 검토하고 제재 해제 여부를 결정하는 불평등 협상이었다. 그러나 북한이 비록 불량국가라는 낙인이 찍히기는 했지만, 엄연히 국가의 체제를 가지고 있다면 미국과 북한은 동등한 입장에서 마주 앉아야 한다.
북한 핵시설 남-북-미 공동인수의 전제
- 북한은 핵 시설을 최대한 감추고 시작하려 한다.
- 핵 위협을 제거하지 못하면서 경제적 도움만 주는 것은 최악이다.
- 한미는 북한과 경제 정치 제도적 긴밀감을 최대한 높여 핵사용 기회를 없애야 한다.
방법 :
북한과 한미 양 쪽이 핵 검증 목록과 인센티브 목록을 동시에 제출, 이의 합집합으로 시작한다. 사찰목록은 북핵 관련 시설 및 인력으로 과거, 현재, 미래 핵생산에 관여했거나,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나 장비를 통틀어 말한다. 인센티브 목록은 북한이 한-미에 제공할 수 있는 북핵 시설 인수에 대한 인센티브이고, 한-미가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동 시설을 인수함에 대한 대가로 북한에 제공하는 인센티브이다. 이 목록을 양 측이 동시에 제출하게 한다. 그러면 북한이 시험지를 제출하고 미국이 평가하는 불평등함 대신에 서로의 진심과 감춤을 동등하게 평가할 수 있다. 물론 양 측이 서로 최대의 선의를 가지고, 모든 것을 한 번에 내놓는다면야 좋겠지만, 한국-미국과 북한이 그럴 리는 없다. 서로 속고 속이는 일이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첫 목록이 완전하기를 기대하지 말고, 불완전할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실 북핵 문제 뿐만 아니라 모든 협상의 전제는 ‘내가 아는 것을 상대에게 모르게 하고, 상대가 아는 것을 내가 최대한 알아내는 것’이 기본적인 전략이다.
죄수의 딜레마
한-미와 북한 양 측은 사찰목록과 인센티브 목록을 제출할 때 고민을 많이 할 것이다. 너무 많이 내놓고 너무 적게 받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너무 적게 내놓으면 상대가 만족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사찰 목록은 목록대로 공개되면서 협상은 결렬된다. 지난 번 2019년 2월 북미 베트남 정상회담이 바로 최악의 ‘죄수의 딜레마’였다. 북한은 오로지 영변만 신고하겠다는 것이었고, 미국은 ‘다 알고 있는데 왜 이러냐?’는 식이었다. 영변 핵 시설은 모두가 다 알고 있기 때문에 그야말로 북한이 내놓을 수 있는 최소 중의 최소였다. 미국이 아니더라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이다. 반면에 미국은 어떤 정보를 가지고 있는지, 무엇을 요구할 것인지를 명확하게 하지도 않고, 모든 것은 북한이 먼저 공개하기를 바랐다. 그러면서 아무 것도 주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서로 협력이 되지 않았다. 본격 게임에 들어가기에 앞서 탐색전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이제 다음 협상에서는 이보다 더 진전된 양보를 해야 한다. 이 협상에서는 서로에게 줄 것을 더 많이 내놓아야 하고, 받고 싶은 것도 더 구체적으로 하되 상대가 납득할 정도여야 한다.
협상 목록의 확정
양 측이 목록을 제출하면 공통적으로 포함되는 사항과 포함되지 않는 사항들이 생기게 마련이다. 북한 제출 목록 중 포함된 것 중 한-미 목록에 포함되지 않은 것은 북한이 한-미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감출 필요가 없는 사항들이다. 한-미가 제출한 사항 중 북한이 제출하지 않은 것은 북한이 감추고 싶지만 한-미 당국이 알아낸 정보 사항이거나 핵시설로 잘못 알아낸 사항이다. 그렇지만 합리적 의심의 근거가 있기에 둘 다 당연히 사찰 목록에 포함되어야 한다. 위의 그림에서 보면 빨간 색, 보라 색 그리고 파란 색부분이 모두 포함된다. 일단 이 그림으로 보면 한-미가 좀 더 이익을 보는 듯하다. 몰랐던 목록도 받게 되니까. 하지만 안심하기는 이르다. 아직 감춰두고 제출하지 않은 북한의 ‘미제출 목록’이 있다. 이 미제출 목록을 그대로 방치한 채로 북한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면 그야말로 남한으로서는 최악의 상황이 된다. 돈은 돈대로 쓰면서 북한 핵위협은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런 최악의 상황을 방지하기 위하여 북한과 최대한 밀착하면서 핵사용 기회를 소멸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최대한 빨리 완전 비핵화를 이루기 위한 추가적인 인센티브를 준비해야 한다. 이 인세티브는 한-미 양국이 북한 비핵화와 핵 위협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확신할 때 주는 선물이다. 북한이 감춰둘 핵무기와 시설의 핵 반감기와 유지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기간을 5년이라면, 이 추가 선물은 5년 쯤 뒤에 풀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모두에게 가능하게 한다. 이 한-미 양국의 추가적인 인센티브는 북한의 미제출 목록처럼 비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만천하에 알린다. 김정은 위원장, 북한 노동당 당원은 물론이고 일반 주민들에게도 완전 비핵화하면 북한의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주민 각 개인에게도 매우 실질적인 혜택이 주어짐을 알게 하는 것이다. 그럼 북한의 핵협상 당국자들은 ‘시대 정신’의 압박을 받게 된다.
포괄세부적 급속점진적 진행
일단 협상이 시작하면 북한 비핵화와 경제 개방에 대한 포괄적 합의를 우선 보아야 한다. 전체적인 큰 체적인 합의를 보면 당연히 핵 위협은 90% 사라진다. 하지만 나머지 10%를 위하여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야 한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했다. 일단 포괄적 협의를 하면, 북핵 검증 및 비핵화, 핵시설의 남북미 산업 클러스터화를 위한 세부과정까지도 협의를 빠르게 진척시켜야 한다. 그리고 북한 핵의 핵심적 핵능력의 제거를 의미하는 프론트 로딩 방식도 신속하게 진행한다. 프론트 로딩방식이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핵능력의 비가역성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20% 비핵화에 해당하는 핵탄두, 핵물질, ICBM등을 조기에 폐기 또는 반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 나머지 80%는 좀 덜 서둘러도 된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IAEA의 계산에 의하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인력동원에는 무려 273,000명이 필요하다고 한다. 대신에 북한을 신속하게 경제 개방이라는 호랑이 등에 태우고, 달리게 해야 한다. 경제개방은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독재에 대한 반감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중국과 홍콩의 관계를 보면 된다. 포괄적 협상을 하면서 가급적 세부적인 사항도 자세히 넣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디테일에서 어긋나는 일이 없게 된다.
‘수축사회’로 진입하기 전 도약의 발판으로
홍성국이 '수축사회'라는 책을 썼다. 이제까지는 경제. 인구가 늘어나는 사회였지만, 앞으로는 이런 것들이 줄어드는 사회가 왔고, 그에 대비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남북관계도 '수축사회'에 대비해야 한다. 한국의 수출이 2018년 대비하여 두 자리 수자의 감소를 보이고 있다. 게다가 인구 절벽도 보이고 있다. 한국 경제나 세계 경제가 팽창하던 시대에는 북한 문제를 좀 덜 서두르면서 진행해도 된다. 하지만 인구와 경제가 줄어드는 수축사회에서는 남한은 둘 중의 하나 뿐인 선택지를 갖게 된다. 서두르거나 포기하기.
남한이 북한에 쓸 돈이 더 줄어들기 전에,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관심이 있는 기성세대가 더 줄어들기 전에 완성시켜야 한다. 그래야 남한은 충분한 의욕과 자금을 가지고 북한 비핵화를 이룰 수 있고, 서로 발전할 도약의 발판이 마련된다. 남한의 GDP가 지금보다 15-20% 줄어들고, 북한에 관심 없는 20-30대가 경제력과 정치적 리더십을 물려받았을 때 북한은 남의 나라가 되어 있을 수 있다. 실제로 북한의 낙후된 경제과 사회 시스템에 미래 세대가 투자할 여력과 의지가 여전히 있을 지도 의문이 강하게 든다. 서둘러야 한다. 남북한 앞에 놓인 도약의 발판이 사라지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