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된 사슬, 화학적 굴레

기억을 지우고, 감정을 왜곡하며, 삶을 잠식하는 알코올. 그리고 그 사슬

by 술 마시던 나무

나는 오랫동안 알코올 사용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 살아왔다. 표면적으로는 평범해 보였지만, 실제로는 중증 사용 장애에 가까웠다.

술을 마시면 블랙아웃이 잦았고, 다음 날에는 정상적인 사고와 올바른 판단이 불가능했다. 업무에도 심각한 지장이 있었고, 작은 스트레스에도 과민하게 반응하며, 평소 같으면 흘려넘길 사소한 일에도 머릿속이 분노로 가득 찼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의지 부족이 아니었다. 알코올이 체내에서 아세트알데히드라는 독성 물질로 분해되며 뇌의 신경전달체계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숙취는 단순한 피로가 아니라, 화학물질로 인해 뇌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상태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이 화학적 힘은 쉽게 이길 수 없다.


내게서 더 큰 문제는 블랙아웃 상태에서의 행동이었다. 기억이 사라진 채, 아내를 의심하는 말과 상처 주는 행동을 하곤 했다. 하지만 정작 나는 그 순간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알코올은 단기기억 형성을 방해하여 뇌가 정보를 장기기억으로 저장하지 못하게 한다. 그 공백 속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타인을 해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더 무서운 건, 이런 알코올 사용 습관이 유전된다는 사실이다. 이는 단순히 부모의 생활 방식을 따라 하는 ‘환경적 모방’ 수준이 아니다. 연구에 따르면 알코올 대사 효소 유전자 변이와 보상 회로의 민감도 차이는 세대를 거쳐 명확하게 전달된다. 즉, 술에 약한 체질뿐 아니라 술에 쉽게 의존하게 되는 경향도 물려받는다. 나는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내 세대에서 반드시 이 사슬을 끊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단주를 선택했다. 단주는 단순히 ‘안 마시는 것’이 아니다. 내 몸과 뇌에서 알코올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지고, 다시 맑은 판단력과 감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동안은 유혹에 훨씬 더 취약해진다. 그렇기에 환경, 습관, 그리고 나의 마음가짐까지 철저하게 재설계해야 한다.


나는 더 이상 알코올에게 내 기억, 내 감정, 내 하루를 빼앗기고 싶지 않다. 그리고 이 재앙 같은 유전적 사슬이 내 대에서 끝나기를 바란다. 내 아이들이, 다음 세대가 이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용어 정리

• 알코올 사용 장애(Alcohol Use Disorder, AUD): 알코올 섭취를 조절하지 못하고, 신체·정신·사회적 기능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상태.

• 아세트알데히드(Acetaldehyde): 알코올이 체내에서 대사되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독성 물질로, 숙취와 여러 장기 손상의 원인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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