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와 문제들이 결국 내 공백을 채워준 방식
자연이 준 가장 기이한 선물
— 실패와 문제들이 결국 내 공백을 채워준 방식
처음에 나는 식물을 “거창하게” 키워보고 싶었다.
예쁜 모습만 보고 싶었고,
멋있게 풍성하게 자란 장면만 상상했다.
그래서 장비를 사들이고, 영양제를 사고,
환경을 완벽하게 만들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 자연은 내 계획을 단 한 번도
그대로 받아들여준 적이 없었다.
처음 겪어본 뿌리곰팡이,
증산작용 때문에 생긴 냉해,
그리고 지금도 잊지 못하는 사건.
아버지가 물을 잠깐 틀어놓은 채 잊으셔서
내가 키우던 라벤더 50주가
모두 물에 잠겨 그대로 죽어 버린 날.
그때의 당황과 분노와 허탈함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를 정도로 혼란스러웠고,
그 상황은 내게 작은 충격 같은 사건이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모든 문제들이야말로
자연이 나에게 던진 성장 미션이었다.
처음엔 부정적으로만 보였던 그 사건들이
결국은 나를 공부하게 만들고,
연구하게 만들고,
나를 ‘도망칠 수 없는 성장 구역’으로 끌어넣었다.
뿌리곰팡이를 처음 겪을 때
나는 그제서야 과습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냉해가 왔을 때는
증산작용과 온도 스트레스에 대한 자료들을 찾아 헤맸고,
곰팡이 억제 농약을 수소문하고 실험하며
식물의 뿌리가 어떤 환경에서 버티는지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문제들이 커질수록 내가 해야 하는 일도 커졌다.
공부할 것, 실험할 것,
환경을 조정할 것,
필요한 재료를 준비할 것,
다음에 올 위험을 대비하는 체크리스트까지.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내 다이어리는
“해야 할 일”로 가득 차 있었다.
하루가 공백 없이 꽉 차 있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공백 없음이
나를 살렸다.
나는 술이 남긴 빈자리를
억지로 채운 것이 아니라
자연이 던지는 문제들과
그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들이
천천히 채워주고 있었다.
거창함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자연은 나에게
조용한 인내, 관찰, 실패, 복구,
그리고 다시 시도하는 태도를 가르쳤다.
공백은 그렇게 채워졌다.
일이 많아져서 채워진 것이 아니라,
“삶이 나를 다시 쓰기 시작해서” 채워졌다.
이제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식물을 키우며 겪었던 최악의 순간들조차
결국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기 위한
필요한 과정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여전히 나는 성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