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이라는 사슬, 그리고 뇌의 관성에 관하여
십수 년간 나는 알콜랜드에서 수많은 놀이기구를 탔다.
그곳은 내게 도피처이자, 일상의 일부였다.
친숙했고, 편했고, 때로는 내가 가장 나다워지는 공간이기도 했다.
중간중간 멈춘 적도 있었다.
후회했고, 무서웠고,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언제나,
정신을 차리면 다시 그 위에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왜 또 마셨을까.
왜 다시 올라탔을까.
나는 의지가 약해서 그랬던 걸까.
아니다.
지금에서야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그건 내가 약해서가 아니라,
‘중독’이라는 구조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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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가소성과 뇌의 관성
중독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다.
중독은 뇌의 구조가 반복된 자극에 의해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바뀌어가는 과정이다.
이것을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이라고 부른다.
우리의 뇌는 자주 사용하는 회로를 강화하고,
사용하지 않는 회로는 약화시킨다.
이 회로는 마치 익숙한 오솔길처럼,
반복될수록 더 깊고 빠르게 연결된다.
술을 마신다는 행위도 마찬가지다.
기분이 나쁠 때, 불안할 때, 혹은 외로울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술’을 떠올리게 된다.
‘이럴 땐 마셔야 풀린다’는 학습된 감정 회로.
그 길이 이미 뇌 속에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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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민, 보상, 그리고 술
술은 뇌의 도파민 시스템(dopaminergic system)을 자극한다.
도파민은 단순한 쾌감뿐 아니라
‘보상’과 ‘기억’을 담당하는 신경전달물질이다.
처음에는 적은 양으로도 만족했지만,
반복될수록 뇌는 더 많은 양을 요구한다.
그 사이, 감정은 무뎌지고
일상의 기쁨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결국 우리는 다시 같은 선택을 반복한다.
같은 장소, 같은 방식, 같은 마무리.
그것이 기억된 보상(reward memory)이고
중독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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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없는 일상이 낯설어진다
문제는 이쯤부터다.
이렇게 강화된 회로는
이제 다른 선택을 ‘비정상’처럼 느끼게 만든다.
술 없는 회식이 어색하고,
술 없는 주말이 허전하고,
술 없는 감정이 불편하다.
한번 생각해보자.
당신의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본다면,
술을 자주 마시는 그들에게 이렇게 질문해본다면:
“술 없는 일상이 어떤 느낌이야?”
아마 쉽게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심심할 거야”, “어색하지”, “그냥 마셔야 돼”
라는 말들이 돌아올지도 모른다.
이건 문화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들의 뇌가, 그리고 나의 뇌가
이미 그 방향으로 회로화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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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전히 그 길 위에 있다.
완전히 벗어나진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선택이 반복된 이유를.
그 회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그리고 다시 쓰기 위해선
그만큼의 반복과 시간,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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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은 의지로 끊는 것이 아니다.
뇌의 회로를 다시 쓰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