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마신 건,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by 술 마시던 나무

술을 마신 건,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술을 마시는 행위,

과음하고 블랙아웃까지 가는 행위가

단순한 선택이나 방종이 아니었다는 걸.


그건 생존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당시의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았다.

걱정이 끊이지 않았고,

불안은 멈출 줄 몰랐다.


아직 오지 않은 일들을

이미 벌어진 일처럼 반복해서 떠올렸고,

그 생각들은 밤이 되면 더 선명해졌다.


머리는 쉬지 않았고,

몸은 긴장한 채로 굳어 있었다.


그 상태는

정상적인 일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땐

그게 정상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때 내가 선택한 게 술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이미 알고 있는 수단이었고,

접근이 쉬웠고,

무엇보다 즉각적으로 효과가 있었다.


술을 마시면

생각이 느려졌고,

불안이 잠잠해졌고,

잠시나마 머릿속이 조용해졌다.


그 짧은 평온은

그 당시의 나에게

너무도 강력했다.


그래서 더 많이 마셨고,

더 자주 마셨고,

결국 블랙아웃까지 갔다.



지금 돌아보면

그 선택이 왜 그렇게 쉬웠는지 분명하다.


술은

걱정과 불안을 잠시 잠재워 주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뇌는 그걸 기억한다.

“이 방법은 효과가 있었다.”

“이걸 쓰면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래서 반복된다.

의지와 상관없이.



이제는 명확히 안다.


우리의 모든 행동과 습관은

도덕보다 먼저

생존 본능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중독도 마찬가지다.

즐기기 위해 시작되는 경우보다

견디기 위해 시작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때의 나는

즐거움을 추구한 게 아니라

그 상태를 끝내고 싶었던 것에 가까웠다.



그래서 나는

과거의 나를 함부로 비난하지 않는다.


그 선택이 옳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 선택이 왜 나왔는지는

이제 이해한다.


살아남으려고 했던 것이다.

그 방식이 잘못됐을 뿐.



이걸 이해하지 못하면

중독은 늘

의지의 문제로만 남는다.


하지만 이해하는 순간

중독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이건 타락이 아니라

잘못된 생존 전략이었다는 걸.


그리고 전략은

바꿀 수 있다.



지금의 나는

불안이 올라올 때

예전처럼 술을 떠올리지는 않는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아, 지금 내 몸이

살아남기 위해 반응하고 있구나.”


그 인식 하나만으로도

행동은 조금 달라진다.



술을 마신 건

약해서가 아니다.

망가지고 싶어서도 아니다.


그저

그때의 나는

그 방법밖에 몰랐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다른 방법을

조금씩 배우고 있다.


그게 내가

여기까지 살아온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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