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들고 싶은 기준, 그리고 가족
나는
가족을 하나 만들고 싶은 게 아니라
하나의 기준을 공유하는 가족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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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준은 단순하다.
정신적인 부를 중심에 두고 살아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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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준은
나이와 상관없고,
직업과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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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에서 일을 하든,
어딘가를 청소하든,
그 일이 무엇이든 간에
그 안에 있는
존엄함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일을
가짜가 아니라
진짜로 받아들이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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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는
보이지 않는 기준이 있다.
어떤 직업은 존중받고,
어떤 직업은 낮게 평가된다.
어떤 삶은 축하받고,
어떤 삶은 조용히 묻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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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준은 너무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머릿속에 들어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의식하지 않아도
그 기준에 맞춰
삶을 선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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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이 기준이
인간이 정신적인 부를 쌓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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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그 기준을 따르는 가족이 아니라
그 기준을 이해하고도
선택적으로 거부할 수 있는 가족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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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건
쉽지 않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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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는 언제든지
우리를 끌어내리려 한다.
평균이라는 이름으로,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안정이라는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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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도면 충분하다”
“다들 그렇게 산다”
“굳이 다르게 살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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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들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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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다른 방향을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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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공부하고,
계속 생각하고,
계속 스스로를 단련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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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더라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기준을 가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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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지금의 직장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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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단계가 무엇인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어떤 삶을 유지해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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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불안이 아니라
선택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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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아주 단순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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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특별히 자랑할 것이 없어도
내 아내가
자연스럽게 나를 이야기할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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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가
내가 무엇을 하든
그 자체로 나를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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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이유를 알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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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이 기준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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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이
설명 없이도 이해되는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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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장면을 떠올리면
이상하게 마음이 고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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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기쁠까.
얼마나 깨끗할까.
얼마나
불필요한 것들이 없는 삶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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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만든 기준이 아니라
우리가 만든 기준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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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가족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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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지금 나는
돈을 쌓는 것이 아니라
기준을 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