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인바디 검사를 오랜만에 해봤다.
몸무게 차이는 크지 않는데, 왜 옷핏이 달라졌을까.
몸의 구성이 달라졌기 때문이겠지, 과거보다 늘어난 체지방이 그 원인.
그러다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낳은 지 고작 4년인데 왜 그 이전의 삶이 전생처럼 느껴질까. 4년의 세월이 내 삶의 구성을 통째로 바꿔놨기 때문이겠지.
그 안엔 무엇이 늘어났을까.
오늘도, 행피하시나요?
그냥 나 혼자(혹은 둘이) 살 때와 아이와 살 때 뭐가 다를까를 생각해 보다 만들어낸 말이다.
행피.
행복하지만 피곤한.
아이가 없었다면 몰랐을 확실한 행복.
그리고 아이가 없었다면 몰랐을 나의 체력과 정신력의 한계치.
그 둘을 짬뽕해 보니, 행피라는 단어가 나왔다.
너~~~~~~~~무 행복한데,
너~~~~~~~~무 피곤해.
이를 넘어설 말이 아직은 없다.
다크서클이 발가락에 닿아있지만, 천진난만하게 웃는 아이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보람을 느낀다.
모두가 건강하게 살아있음에 감사하게 된다.
반면, 아이가 없었다면 어떨까?
아마도 장기솔로 또는 장기연애의 상태와 비슷하지 않을까.
무단히 노력하면 다를 수 있겠지만 아마도 대부분은 짐작컨대,
여유 있지만 무료-한 상태일 듯하다.
성인 두 명이 여행을 간다면, 특별히 많이 챙길 것도 고려할 것도 없지만
그래서 보다 더 특별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탐색과 탐미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곧장 무료함의 나락으로 빠지기에.
주말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 소파에 기대 텔레비전 채널을 돌려보거나
오늘은 어디서 맛있는 거를 먹을까, 뭐 재밌는 거 없나 검색을 해보거나.
여유 있지만 절박성이나 필연성이 높지 않은 시간이 채워진다.
물론 누구나, 어떤 삶에나 비바람은 불기 마련이고 예상치 못한 해일과 장마도 겪게 되지만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을까 싶다.
내가 35살의 법적인 싱글의 삶을 살 때 그 끝자락에 느꼈던 무료함을
끄집어내 보자면 그저 그럴 것이다 짐작하게 된다.
삶에 영향을 주는 변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여무의 삶'은 단순방정식,
삶에 영향을 주는 변수가 엄청나게 늘어나는 '행피의 삶'은 고차방정식.
어떤 방정식을 풀지는 개인의 선택이지만,
나는 무료하되 여유로운 삶의 끝에서
내 삶의 책장을 넘겨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이대로는 가치의 퇴색을 막을 수 없다,라고.
나 혼자만의 힘으로 행복할 수 있는 한계치에 도달했다고.
물론 인생은 공짜 점심이 없기에
두 남자의 힘으로 보다 더 행복한 방정식을 찾았으나, 보다 더 피로의 한계치에도 도달했지만.
결국 인생은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선택의 문제.
어쨌든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그것이 피로의 대가라는 웃픈 진실.
여담이지만(쓰고 보니 다 여담이지만)
인바디를 관리하는 이유도 바뀌었다.
이전에는 '잘 나가는 나'를 입증하기 위한 수치였다면 이제는 '가족과 잘살기 위한 나'를 도와주기 위한 수치랄까.
건강한 것만큼 돈 안들이고 행복을 관리하는 길은 없으니까.
오늘도 큰 행, 작을 피.
행피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