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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쿵펀 Mar 02. 2019

외국계 회사 가려면 영어를 잘해야 하나요?

물에 들어갈 때 수영 잘하면 좋나요?

 외국계니까 영어 잘하겠다.

며칠간 출장 가서 영어만 쓰다가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 질문이 떠 올랐다. 나도 미국계 회사에서 10년 넘게 많이 받은 질문이고, 많은 분들이 궁금해할 내용이다. 검색을 해도 무슨 영어 공부법 이런 것만 나오고 내용이 부실했다. 찾으면서 생각해보니 오랫동안 외국계 IT회사에 몸 담았던 내가 제일 잘 대답해줄 수 있는 질문이네. 먼저 답부터 이야기하자면, ‘당연히 잘하면 좋지, 이 양반아!’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영어를 잘하냐 못하냐 물을 때는 듣기와 쓰기보다는 말하기를 의미한다. 그런데 10년 이상 많은 상황을 지켜보니 간단히 답할 문제는 아니다. 내가 느끼기에 가장 비슷한 질문은 ‘저 물에 들어가는데 수영 잘해야 되요?’ 이다.

저 물에 들어가는데 수영 잘해야 되요?
물에 빠졌을 때는 수영을 하는 것이 좋다.

물이 얕으면 수영이 필요 없고, 그냥 떠 있는 거 정도 하고 싶으면 수영을 잘 못해도 상관없다. 그런데 물이 깊고 물살이 쎈 곳이라면 수영을 못하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친구들 중에 ‘수영 좀 한다’ 소리 들으려면 동네 수영장을 열심히 다니면 될 일이다. 올림픽에 나가고 싶다면? 매일 수영만 해야겠지.


1. 영어가 그렇게 필요하지 않은 경우. - 물이 얕은 경우

 외국계 회사 중 이미 한국에 들어온 지 꽤 되었고, 규모가 있는 회사라면 영어를 그렇게 따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미 규모가 있기 때문에 한국사람들끼리 팀을 이루고, 본사나 아시아 지역 본사와는 임원이나 팀장급만 소통하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는 영어보다는 당신의 경력이나 능력을 더 많이 볼 것이다.

개헤엄이라도 살아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있겠는가.

그렇지만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 외국계 회사나 소규모의 외국계 회사인 경우 영어는 거의 필수적이다. 대부분의 멤버들이 본사와 소통을 해야 하고, 소규모의 팀이 그 회사의 문화와 철학을 대변할 사람들이기 때문에 본사로부터 전달되는 자료들을 또한 잘 소화해야 한다. 게다가 각종 승인을 본사로부터 받으려면 영어로 외국인들을 설득해야 할 일들이 많은데, 영어가 안되면 업무를 할 수 없다.


2. 영어로 살아남아야  하는 경우 – 물살이 쎄지는 경우

한국에 있는 외국계 회사는 많은 경우 영업 전진 기지이다. 제일 먼저 영업팀이 생기고, 그 팀을 지원할 팀들이 하나씩 생겨난다. 규모가 커지더라도 영업 상황에 따라 회사 분위기는 크게 달라진다. 매출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고 투자도 늘어나고 당연히 직원들도 돈도 많이 벌고, 승진도 할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본사에서 한국으로 외국임원들이 방문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어떻게 당신이 성공했는지 발표도 하고 이야기도 나눌 것이다. 분위기가 좋으니 안 되는 영어라도 하나하나 알아들으려고 노력하고 당신의 몇 마디 안 되는 영어에도 꺄르르 웃어줄 것이다.

아 물에 빠지겠어 그런데 ‘나 물에 빠질거 같아’가 영어로 뭐지


  매출이 좋지 않으면? 물살이 쎄지면? 본사 차원에서 관리에 들어가게 된다. 이 때도 본사에서 임원이나 팀이 ‘도와주러’ 날아온다.  영어를 떠나서 회사에서 목표치를 못한 경우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냉철하게 파악하고, 다음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며, 거기에 미려한 말솜씨로 윗분들을 안심시켜 준다면 더할 나위가 있겠는가? 그런데 외국인 보스가 왔는데 매출은 못 맞췄고, 왔더니 애들이 영어는 어버버 대고 있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지 설명도 못하면  그 다음 상황은 누구도 장담 못하게 된다. 외국계에서 한동안 위기를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람을 갈아치우는 것이었다. 그래서 외국계는 불안정하고 버티기 힘들다는 말이 나오게 된다.


3. 영어가 많이 필요한 경우 – 수영이 필요한 경우

 당신이 물에 익숙해지는 것처럼 수영을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물에 있는 것이 두렵지 않아 졌다고 치자. 영어를 그렇게 잘하지는 못하지만 그동안 회사에서 잘해왔고 나름 인정받는 팀원이 되었다. 자 이제 다음은? 당신도 잘해왔으니 승진도 해야겠고, 연봉도 좀 올려야겠다.

쥐가 많이난다는 버터플라이

 물이 얕은 경우에서 설명했듯이 영어가 필요 없을 정도의 규모가 있는 외국계 회사는 누가 본사와 소통을 한다? 임원이나 팀리더들이 한다. 운 좋게 승진을 하면? 자 이제 한국 사람들이 아니라 영어로 외국인들과 회의도 하고 논쟁도 하고 보고도 해야 된다. 거기까지 가기도 전에 당신을 높은 자리에 앉혀줄 사람들은 또 누구인가? 본사다. 승진을 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일을 잘하는 것뿐 아니라 본사와 다른 나라에 나를, 나의 훌륭함을, 노출해야 한다. 좋은 사례로 소개되고 회사 행사의 무대에 오르면 더할 나위가 없다. 주위에 나보다 못한 것 같은데 빨리 승진하고 잘 나가는 친구 본 적 있는가? 외국계 회사에서는 거기에 영어를 잘하는 걸 덤으로 얹으면 된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만 외국계에 가고 성공할 수 있는 것인가?'

그러면 질문을 바꿔보자. 영어를 잘해야만 외국계에 갈 수 있고, 성공할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한 질문은 '애초에 그러면 본국 사람들을 보냈겠지 뭐하러 힘들게 한국 사람들을 뽑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 당연히 지역전문가, 영업 전문가, 한국 시장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한국 사무소를 개설하고 한국 직원들을 뽑는 것이다. 여기에 영어까지 잘하면 훨씬 더 좋지 않겠는가? 거꾸로 '영어만' 잘하고 다른 일을 못하면 존재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나.

올림픽 챔피언인 마이클펠프스가 굳이 서대문구청 수영장에 양민학살하러 오겠나.

 여기까지 글을 읽은 사람이라면 사실 영어에 자신이 있는 사람들은 아닐 거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이 이룬 성과만 부러워하지 거기까지 어떻게 도달했는지는 크게 관심이 없다. 또한 한 방에 영어가 좋아지는 방법이 없을지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많은 외국계 임직원들은 입사하고 나서도 끊임없이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 시간이 되지 않는 임원들은 원어민 선생님을 회사로 불러서 틈틈이 시간을 쪼개서 공부를 하고 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자주 하면 영어도 수영도 빨리 는다는 것이다.

How can I get there from here? Practice!
당당하자 영어보다는 실력이다.

나도 힘들었던 부분이긴 한데, 마지막으로 만약 당신이 외국계 회사를 생각하고 있다면 영어에 관계없이 항상 당당하고 자신감 있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완벽한 영어로 자신 없게 웅얼대는 것보다. 충분히 전달될 정도의 영어라면 자신 있고 명확하게 이야기해주는 것이 훨씬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언어는 단순히 기술이 아니라 문화가 녹아있는 종합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언제 어떤 뉘앙스로 이야기할지 거기에 따른 동작이나 태도를 어떻게 할지가 대화에 큰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요즘은 각 나라별 억양이나 영어 발음의 특징들을 문화의 차이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라 더 당당하게 이야기해도 특별히 흠잡을 사람도 없다. 본사 미팅을 가면 각 대륙 사람들이 다 와서 가끔은 정말 못 알아듣는 경우도 왕왕 있다.

영어가 무슨 소용. 그러고 보니 펠프스가 미국 사람이긴 하네.

 그리고 이런 거 다 필요 없는 경우도 사실 있다. 정말 성과를 눈부시게 계속해서 낸다던지 기술적인 성취가 다른 나라에도 전달될 정도로 유명하면 사실 영어 몇 마디 못해도 상관없다.  그게 쉽지 않으니 필요하다면 부단히 노력해서 급류를 피하고, 승진도 하고, 높은 연봉도 노려 보자. 이 글이 외국계로의 취업, 이직을 원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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