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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쿵펀 Apr 16. 2017

문과출신 IT 영업하기

1. 정말 모르겠다. 뭐야 무서워.

 수능 점수에 맞춰서 학교와 전공을 들어갔다가 대학원까지 경영학을 전공했는데, 나는 어느새 IT영업이라는 것을 하고 있었다. 

 나는 경제학과를 갔고, 특별히 어렵지 않게 경제학을 전공했다. 뭔가 수학이 관련된 분야라 이과스러운 냄새도 나지만 문학동아리 회장을 할 정도로 글 쓰기와 읽기를 좋아했다. 대한민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그러하듯 덮어놓고 구직활동을 하다보니 어느새 나는 취업 후 IT 영업에서 잔뼈가 굵어가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도 아래 화면을 보면 두렵고 숨이 막혀 온다. 머리 속으로는 아 이게 페이스북이 되고, 쿠팡이 되고, 배달의 민족이 되는구나 싶지만 심정적으로는 이건 장난이고 뭔가 이 뒤에 다른 곳에서 개발자들만 보면 알아볼 수 있는 화면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으아아아 검은화면이다아아!!!
 저는 IT를 1도 모르니 다른 회사로 가겠습니다. 

 운이 좋게도 IT회사가 아닌 다른 한 곳에 마케팅 자리로 합격을 했다. 그래서 IT 관련회사에 아무리 생각해도 검은 화...아니 IT전공도 아니고 해서 다른 곳에 가겠다고 메일을 보냈다. 그랬더니 매니저가 될 사람이 한번 만나자고 했다. 어차피 다시는 안볼 수도 있는데, 한번 보자는 생각으로 나갔더니 이유를 물어봤다. 그래서 '사실 저 문과라 자신이 없..'이라는 말을 하자마자 그 분께서는 '나도 사학과야 그런데 잘 살고 있어.'라는 말과 함께 몇 시간 동안 세뇌작업에 들어가게 되고, 나는 그렇게 IT 영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아...

파란약을 먹으라고 멍청아!

 

 두근두근 쫄아있었지만 아무도 안물어봤다. 

첫 회사는 미국 소프트웨어 회사였는데, 제품의 장단점과 메뉴얼들을 달달 외우기 시작했다. 시장분석, 영업자료 분석, 전략 등등 열심히 했지만 역시 마음 한구석에는 아 고객이 검은 화면이라도 띠우고 마구 나에게 물어봤다가는 난 개털리겠지라는 불안감이 있었다. 그렇지만 첫 회사에서는 그 검은화면을 볼 일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그 얘기가 나온다 해도 동행한 엔지니어가 대답하거나 다음에 좋은 엔지니어를 데려오겠다고 하고 그 상황을 모면하곤했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 영업들은 기술 얘기는 거의 하지도 않고 자기들 역할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쳐다보셔도 전 모릅니다.

 나는 그 즈음 소프트웨어 라이선스에 대한 지식만 점점 쌓여가고 있었고, 왠지 멋있어 보이는 장표들만 만들기 시작했다. 더욱이 그렇게 일을 해도 성과가 나왔고, 마치 내가 하는 것이 IT 영업일을 잘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까지 했다. 그리고 Value Delivery 를 하라는 본사의 지시사항도 우습게만 느껴졌다. 


제품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닌데, 제품에 문제가 있다며 나에게 욕을 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영업을 하다보면 고객과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IT에서는 성능저하가 고객의 즉각적인 비지니스 임팩트로 오기 때문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뭔가 제품이 동작하지 않거나 문제가 생기면 급하니까 영업담당인 나에게 마구 설명과 욕을 섞어가면서 하게 되는데, 문제는 그렇게 들어도 내가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게 말해도 난 모름

그래서 다시 엔지니어를 데리고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엔지니어가 무슨 일이냐고 물어봐도 아는 게 없으니 대답을 못하게 되고 엔지니어들도 신이 아니기 때문에 고객이 뭘원하는지 모르게 되니 비효율적인 미팅이 진행될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여기서 문과가 해야될 일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지만 결국은 공부를 해야 된다.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IT팀을 만나서 이 부분들을 설명하겠지만 결국 의사결정을 하는 사장님과 임원들은 IT를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도 헷갈리는 이 제품들을 그런 사업부서 쪽에 기능적으로 설득하기는 힘들다. 이 때 영업사원들은 이 기술 특징들을 비지니스 메시지로 전환하여 이 서비스가 고객의 사업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 지에 대해 알려줘야할 의무가 있다. 엔지니어들은 이런 부분 보다는 대부분 기술에 집중하고 회사의 제품에 대한 기술적 우월함을 증명하는데 집중한다. 

스티브잡스도 빌게이츠도 따지고 보면 IT영업이다.


 공부를 해야 한다. 그것도 끊임 없이! IT는 가장 트렌드가 빨리 변하는 곳 중 하나이다. 

하나를 배웠다고 그걸로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그러면서도 그 기술들이 실제 고객의 비지니스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고객의 비지니스에 대해서도 완벽하지는 않아도 어떤 부분이 막혀 있는지를 알면 고객의 가려운 곳을 나도 모르게 긁어버릴 수도 있다. 이런 요행이 쌓이다보면 결국 실력이 된다. 

인터넷이 어딘가에 있는 장소가 아니라고?
아 그게 그런거였어? 

나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입문한 문과출신 IT 영업들을 위해 내가 겼었던 에피소드를 공유하면서 IT 분야에서 일하기 위해 필요한 기초적인 지식들을 IT문맹 수준에서 전달하고자 한다. 알고나면 아...그게 그런거였어?하는 것들이 훨씬 많다. 답답했던 나의 과거를 떠올리면서 이 글을 시작했는데, 부디 나와 같은 상황에 있는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일단 검은 화면이 뭔지부터 다음 시간에 시작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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