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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준원 Aug 08. 2019

일상이라는 기적 4

고통을 제거하는 기술 2

교토 사람들은 입어서 망하고 오사카 사람들은 먹어서 망한다고 하던가? 런던에 살 때 이태리 사람들은 입어서 망하고 프랑스 사람들은 먹어서 망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렇다고 이태리가 망하거나 프랑스가 망하는 것을 본 적은 없지만, 그쪽으로 탁월함이 있어서 생긴 말인 것 같다. 이태리 친구들은 자기가 살던 동네 시장에서 사 온 물건이 대부분 훌륭하였고 게다가 메이드-인-이태리였다. 일본 사람들 사이에서도 오사카 지방은 좋은 먹을거리가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영국 사람들은 집 꾸미다 망한다는 말도 들었다. 내가 보기에도 영국 사람들은 집 꾸미는데 탁월함이 있다. 너무 밝지도 않게 너무 화려하지도 않게, 하지만 아기자기하고 아늑하게, 햇빛이 잘 드는 쪽으로 세탁기를 놓고, 뒤뜰에 빨래를 넌다. 요리하는 곳과 식탁은 분리되어 있고, 거실에는 문이 달려 있다. 거기다 정원을 가꾸는 솜씨도 아마도 세계 최고가 아닐까? 

 

그 탁월함인지, 아니면 정말 망하려는 것인지, 영국 사람들은 집 꾸며 놓고 밖에 잘 나돌아 다니지 않는다. 나가봐야 한 블록 바깥의 슈퍼마켓에 가거나 골목 코너에 있는 펍에 가서 맥주를 마시는 것이 대부분이다. 집을 잘 꾸며 놓아서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 것인지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해서 집을 잘 꾸며 놓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영국 사람들은 그렇게 잘 살고 있다. 내 눈으로 본 런던 사람들도 대부분 가까운 곳에서 소비를 하는 경향이 있다. 동네 펍 아니면 동네 중국 음식점, 인도 음식점 간다. 맛없는 음식점도 동네 점포는 대부분 망하지 않는 것을 보면 신기할 정도이다. 물론 영국 사람들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나마저 나가지 않고 집에서 소박하게 먹는다. 내 영국인 친구 중에는 엄마아빠가 평생 로스트비프와 소시지 그리고 감자 말고는 먹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나이가 70이 다 되어 생전 처음으로 인도 식당에서 식사를 한 번 한 적 있다고 했다. 나는 나의 지도교수와 5 년을 함께 지냈지만 한 번도 밥을 같이 먹은 적이 없다. 지도교수와 나는 사이가 매우 좋은 편이었으니 지도교수가 나와 밥을 먹기 싫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지도교수는 점심도 사 먹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지도교수는 언제 어디서나 딸들의 학교가 끝나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정을 설명하며 먼저 퇴장했다. 나중에 학교에 근무하면서 런던에 출장 갔을 때 지도교수가 밥을 사 준 적이 있는데, 지도교수와 밥 먹는 분위기가 어색하였다. 물론 장소는 교내에 있는 식당이었다. 


웬만해서는 멀리 가는 법이 없는 사람들이다. 

 

교통비가 비싸다는 것이 한몫을 하는 것일까? 런던의 대중교통 요금은 그야말로 살인적이다. 지하철 몇 정거장 이동하려면 돈 만 원 우습게 넘어버린다. 나도 런던에 살 때 웬만하면 걸어 다녔고, 걸어 다닐 수 없는 거리의 목적지는 그냥 가지 않았다. 런던에 도착한 지 한 8 개월 만에 처음으로 버스를 탔다. 테임즈 강을 건너 내가 가야 할 곳은 어느 교수의 집이었다. 그 버스는 워털루 브릿지라는 다리를 건넜는데, 나는 워털루 다리가 런던에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어렸을 적 텔레비전에서 본 [애수]라는 흑백영화를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던 나는, 그리고 그 영화의 원제가 워털루 브리지 Waterloo Bridge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던 나는, 버스에서 “이번 정류장은 워털루 다리입니다.”라고 하는 안내방송을 듣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일을 마치고 기숙사에 돌아오자마자 다시 워털루 다리를 가 보았다. 기숙사에서 15 분 정도 걸으면 되는 말도 안되게 가까운 곳에 있었다. 오! 아름다운 나의 동네여!! 

 

한국 사람들은 뭐해서 망한다고 할 수 있을까? 무얼 하는 데에 위험해 보일 정도의 탁월함이 있을까? 옷 입는 것, 먹는 것, 집을 꾸미는 것 모두 골고루 그럭저럭 관심을 가지는 듯 하지만 그중 어떤 것도 도드라지게 열정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교육열이 높기는 하지만 교육열이라는 게 생각보다 인류 보편적이어서 소득과 관계있을 뿐이니, 지구촌 다른 지역보다 높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물론 밖으로 드러나 보이는 학부모들의 열정은 손꼽히게 극성스럽기는 하지만 더러 성격이 조용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교육열이 부족하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럼 명품 쇼핑? 이것도 아슬아슬 높은 확률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하철 타보면 전 세계의 디자이너 브랜드의 옷과 소품이 진품이든 짝퉁이든 가득한 것도 사실이니까. 그래도 명품 사다가 망한다 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 


한국사람 뭐하다 망한다고 할 만한지를 나한테 물어보면 난 고민 없이 대답할 것이다. 

한국사람들은 여행하다 망한다고. 

 

민족적 특성이 원래부터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오늘날의 한국 사람들은 사는 곳이 어디인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여행을 많이 하고 있다. 봄이면 꽃놀이에 가을엔 단풍놀이 여름엔 계곡이나 바닷가 겨울에는 스키장이다. 하지만 이 사람들조차 여행하다 망할 한국 사람들의 주류는 아닐 것이다. 주변에는 시간이 확보되면 무조건 해외로 출발하는 비행기에 오르는 사람들도 꽤 된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여행에서 돌아오면 곧장 다음 여행을 계획한다고 한다. 여행을 취미라고 해야 하나? 그러니 여행에 탁월함을 가지고 있다고 해야 하나? 사는 집을 찾아가서 그 사람을 만날 수 있을 확률이 매우 희박한 사람들, 바로 한국 사람이다.

 

음식을 만드는 데 탁월함이 있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음식을 먹일 수 있고, 옷을 만드는 데 탁월함이 있는 사람은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옷을 공급할 수 있다. 집을 잘 꾸미는 사람도 지나가는 사람에게 행복감을 줄 수도 있고 자기 집에 이웃을 초대해서 편안한 시간을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여행에 탁월함을 가진 사람은 타인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현실에 대한 불만을 키우고 먼 곳에 대한 동경으로 우울증에 빠진 사람이 해줄 수 있는 것은 꿈과 환상을 좇고 일상을 부정하는 습관의 전파가 아닐까? 


[장자]의 첫 번째 챕터인 소요유에는 한 번 날아오르면 삼천 리를 날아가는 큰 새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새의 이름은 ‘붕’인데, 원래는 호수에 사는 ‘곤’이라는 큰 물고기였다. 붕이 격노하여 하늘로 오르면 60일을 날아서 남쪽 바다에 가서야 한 번 쉰다. 


이 글에서 나의 관심은 이런 판타스틱한 장소도 거기를 다녀오는 초월적 존재도 아니다.


한편에는 자기가 사는 동네를 떠나지 않는 매미와 비둘기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들은 붕새라는 존재의 거대함과 그 누구도 가보지 않은 남쪽 바다에 대한 환상에 신세타령을 할 만한데도 쓸 데 없이 먼 데를 돌아다닌다며 붕새를 보고 오히려 비웃는다. 소요유는 약간씩만 움직이며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는 편안한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장자의 소요유 챕터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굽은 나무 아래서 시원하게 한적한 시간을 보내는 이야기로 끝맺는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나무이기에 아무도 탐내어 베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그 자리에 오랫동안 가만히 있다 보니 사람들에게 안락한 그늘을 제공하게 되었다. 그러니 오히려 큰 쓰임새가 있는 것이기도 하다. 붕새를 보고서도 환상에 사로잡히기는커녕 자기가 사는 나무 몇 그루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사는 꼬마 비둘기는 탁월한 식견으로 자신의 일상을 잘 지키고 있는 셈이다. 


웅혼한 그리고 위대한 세계에 대한 지식은 밖에 돌아다니지 않고도 아는 것이라, 아니 돌아다니지 않아야만 얻어지는 것이란다. [노자도덕경]에는 문 밖을 나가지 않고 천하를 이해하고, 창 밖을 내다보지 않고 세상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멀리 갈수록 이해하는 것은 오히려 줄어들게 된다고 적혀 있다. (47장) 환상을 좇는 원죄는 억제하고 집에 머물러야 그리고 동네에 왔다 갔다 해야 원하는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의외의 기적을 믿어야 한다. 일상의 부정은 자신의 삶을 고통으로 채울 수밖에 없음을 알고 여행을 그만두어야 한다.   

 

“너도 거기 다음에 꼭 가봐, 정말 좋아.” 


이런 말 조심하자. 가봐야 별 거 없이 피곤하고 돈만 많이 쓴다는 의견에 일단 귀의하자. 


검색중 우연히 발견했는데 이런 글도 한 번 읽어보시길. 

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070829/84835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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