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의 콕

인종차별, BLM 그리고 Tambo씨.

난세에서 살아남기 (18)

by 외노자 정리

난세에서 살아남기 18편: 인종차별, BLM 그리고 Tambo씨.



인종차별 Racism

아내는 언제나 나보다 한발 빠르다. 그녀는 나에게 9시 뉴스와도 같다. 간결하게, 꼭 필요한 정보를, 전달한다. 오늘의 9시 뉴스는 오후 1시, 점심을 먹기 위해 마주 앉은 식탁에서 시작한다. 아이들의 오전 홈 스쿨 Home school을 마치고 한껏 헤이 에진 나와 아이들에게 꽤나 무거운 주제가 다가온다.


아내: '영국에서도 Racism, BLM Black Lives Matter 시위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고 하네. 처칠의 동상을 훼손해서 총리가 왜 말 못 하는 과거의 그늘에 분을 표하냐고 한마디 했어.'[1]

재빠르게 받아쳐야 하는데, 항상 이럴 때는 큰아들의 대답이 반박자 빨랐고, 나의 답은 한 박자 느리다.


규: 'Racism이 뭐야? 똥이야? 동상이야?'


똥 poo를 사랑하는 두 아들은 킥킥거리고, 동상에서 똥이 나오는 이 황당한 상황에 나는 마땅한 설명을 하기 위해 머릿속을 헤집는데, 그런 아들들을 바라보며 아내는 Racism에 대해서 차분히 설명하며, 나는 그 설명을 아이들과 함께 듣는다. 아내가 Racisim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단어가 들어가야 한다. 바로 소수 minority의 의미: 그녀는 그것을 짧은 설명에 잘 녹아냈다. 결국 Racism이란 다수의 인종이 소수의 인종을 차별하는 현상을 말한다.

그렇다면, 나와 우리 가족이 살아가는 영국에서 소수 minority 인종은 누구일까? 다수 Majority는 당연히 백인이지만, 그 수치는 놀랍다. 영국 정부의 최신 (무려 2011년도 기준)에 의하면, 여전히 백인 White이 England와 Wales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6%를 넘어선다. 이 중에서도 British White가 80.5%를 넘어선다. 당신이 만나는 길가는 사람 열에 일곱은 영국계 백인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England에서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도, 그리고 내가 다니는 직장에서도 열의 일곱은 영국계 백인이다.

그 뒤를 이어 아시아인 Asian이 7.5%, 그리고 흑인 Black이 3.3%을 차지한다. 그 외 비중은 1%를 차지할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소수 인종을 통틀어 BAME라 칭한다. 배임, Black Asian Minority Ehnic. 아시아인은 전체 인구 구성에서 단지 7.5%, 100명 중 8명이 채 안된다. 규의 반 30명 중 Asian이 단 2명에 불과하고, 내가 다니는 직장 5000명에서 Asian이 300명이 안되니, 2011년의 이 통계는 2020년 현재의 시점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BLM은 무엇인가? BLM Black Lives Matter 시위의 배경에 있는 다섯 가지. (출처)

첫째, 경찰의 (특정) 전략의 목격

- 맨체스터 대학의 Remi Joseph-Salisbury는 영국에서 벌어진 일련이 사건들 (자신의 아이와 함께 있던 32살의 음주운전 용의자에 테이저 건을 발사한 사건 및 데본에서 Simon Francis가 경찰서 유치장에서 사망한 사건 등)에 대해 사람들이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 것이라 밝힌다. 더불어, 지난 2018-2019년 동안, 흑인이 백인보다 3배나 많이 잡혔고, 흑인들에 대한 무력행사는 백인 대비 5배가 넘었다.


둘째, 경찰서 유치장 내의 사망자수

- 1990년도부터 England와 Wales지역에서 1743명의 용의자들이 경찰서 내 유치장에서 (경찰과 접촉한 이후에) 사망했고, 백인 대비 사망률이 2배나 높았다. 그리고 이러한 사건들을 젊은이들이 역사의식을 가지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매체(SNS)를 통해 다루고 있다.


셋째, 코로나 바이러스가 키운 사회적 격차

- England 및 Wales에서 지난 몇 개월간,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흑인들이 백인들에 비해 2배 더 많이 죽었다. 그 이유로 크게 코로나 바이러스의 lockdown의 기간 동안 불평등한 부의 구조로 인한 타격을 크게 받았기 때문이라 추정한다. 그들은 lockdown 기간 중에도 일을 해야만 하는 key worker(의료시설이나 운송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런 사업에 종사하지 않는 이들은 폐업 등으로 인해 재정적으로 큰 영향을 받았다.


넷째, 과거 영국 식민지에 대한 교육의 영향

- BLM 운동은 이전에도 있었으나 그 시작은 남아프리카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Rhodes Must Fall campaign이라 불리는 이 운동은 말 그대로 Cecil Rhodes의 동상을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했고, Oxford Univeristy의 커리큘럼을 유럽 백인 중심의 커리큘럼에서 벗어나는 것을 이상으로 했다. 이것은 지난 일요일 영국 식민지 시대의 노예상이었던 Edward Colston의 동상을 Bristol 해변으로 던져버리는 것으로 이어진다. [2]

이것을 반달리즘이라 치부할 수 있는가? 이 동상을 무너뜨리는 주체는 '백인'이었다. 만약 흑인이 주체했다면 경찰과 미디어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다섯째, Windrush scandal이 던진 파문

- 지난 2016년에 시작된 BLM운동은 흑인 기성세대에 큰 공감을 얻지 못했고 젊은이들이 주체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시작된 경찰에 의한 흑인들의 사망사건들이 이들의 마음을 점진적으로 변화시킨다. 동시에 영국에서 2017년에 Grenfall Tower 화재 사건으로 72명이 죽었는데 이들은 대부분 BAME 인종이었다. 그리고 이후, 2018년 Windrush scandal이 이어진다.

Windrush는 간단히 말하면, 한국의 광부와 간호사들이 전후 독일에 일을 하러 갔듯이, 케리비안의 흑인들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일손이 달린 영국에 '정부 초청' 자격으로 온 것이다. 그런데 이 후손들의 영국 거주권을 인정하지 않은 home office 공식 기록만 72건이 넘어갔고 영국 연방 common wealth에서도 이 이민을 제대로 교육하지 못해 흑인사회에 큰 충격을 준 사건이 바로 Windrush scandal이다. 결국 그들은 영국의 민주정부에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영국인이 맞나요? 정말 영국인입니까? 우리는 우리 자체로 인정될 수 있습니까?

이러한 일련의 사태들이 흑인 사회에 잔잔한 파문을 넘어 정부의 진정한 행동을 촉구하는 물리적인 상황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난민 Refugee와 망명의 Tambo 씨,

설명을 듣던 규가 겸연쩍게 웃으며 대답한다. 친구들이 나보고 Refugee냐 묻던데, refugee도 Racism이랑 비슷한 거야? 나는 순간 규의 백인 친구들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어떻게 대한민국 사람이 refugee 난민이 될 수 있느냐고 규에게 ‘누가 대체 그런 몰상식한 말을 하는 거야!'라고 따발총 세례를 퍼부었지만, 아내는 여전히 현명했다.


'규야, refugee도 minority야. 그런데 그 사람들은 더 슬픈 거야. 전쟁으로 나라가 없어질 위기에 처했거나, 지진이나 홍수 같은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어쩔 수 없이 그 나라를 떠나서 다른 나라로 도망을 가는 거야. 그런데 한국은 그렇지 않아. 50년 전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한국은 조금씩 그런 사람들을 오히려 받아주는 나라로 변하고 있어.'


나의 대답은 여전히 semi-인종차별적이다. 난민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은 전혀 사랑이 없다. 나에게 난민이란 특수적 환경에 처해 다른 나라에서 나름 잘 살아가는 off-license (주류, 담배를 파는 지역 상점)의 지배자들이라는 인식이 더 강했다. 그러나 아내의 시각이 더 현명하다. 전반적으로 볼 때, 난민들은 전 세계에서 소수이며, 그들은 BAME보다 더 많은 보호를 맡아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나라가 없어질 위기에 그 나라를 떠나는 난민자들과, 나라는 있지만 나라를 벗어난 망명자는 처지가 비슷할 수 있을까?

Nelson Mandela의 동창이자, ANC Africa National Congress의 초대 의장이었던 Oliver Tambo는 남아공의 자유를 위해 큰 힘을 썼다. 망명 생활의 시작으로 런던의 Muswell hill에 도착하여, 1990년 남아공으로 돌아가기까지 이 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Alexandra Park에는 Oliver Tambo의 동상이 입구에 놓여있다. 1989년, 심장마비로 ANC의 의장직을 Nelson Mandela에게 넘기지 않았다면, 남아공의 초대 대통령은 Oliver Tambo가 되었을 것이다.


동상에 의미를 부여하기는 싫지만, 동상의 높이가 낮으면 낮을수록 그의 평가는 높아진다고 믿는다. 아래, 우리 집에서 10분 거리인 Alexandra Park에 위치한 Oliver Tambo의 동상처럼 말이다.

Oliver Tambo





난세에서 살아남기, 19편: 경주 최부잣집 그 이후로 이어집니다. (쓰고 있는데, 계속 미루기만 하네요.)



[1]

실제 총리의 말은 "It is absurd and shameful that this national monument should today be at risk of attack by violent protesters. Yes, he sometimes expressed opinions that were and are unacceptable to us today, but he was a hero, and he fully deserves his memorial"

"국가적 기념비의 처칠 동상이 폭력적인 시위대로부터 공격의 위험에 처했다는 이 사실은 통탄할 만한 일입니다. 그는 물론, 과거에나 지금이나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인종차별적) 표현을 가끔 하기는 했지만 그의 영광은 그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from a fascist and racist tyranny" 파시스트와 인종차별주의자에 대항해.



[2]

노예상이었던 이 사람의 동상은 도대체 왜 필요한 건가요? 제 부족한 역사의식에서 도저히 답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아, 노예 문서에 사인했던 손과 팔, 그리고 탐욕스럽게 노예를 보던 그의 눈, 노예들을 팔 기 위한 입이 없는 동상이었다면 이해하겠습니다. 그랬던 동상은 아닌 것 같군요.

지난 125년 동안, 거기에 서셔 무엇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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