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의 콕

300, 그 이후.

난세에서 살아남기 (17)

by 외노자 정리

난세에서 살아남기 17편: 300, 그 이후.



300 하면 떠오르는 그것,

300 하면 그 무엇보다 나는 스파르타가 떠오른다. 제라드 버틀러가 연기한 레오니다스 1세의 스파르타, 300은 그렇게 내 프레임에 작지만 강한 신념, 소수 정예의 이미지로 남았다. 분명 중학교 사회시간에 세계사 시간에 스파르타라는 도시국가에 대해서 배웠건만, 그때의 이미지는 고루했다. 왜 그때 그 시절, 사회 선생님께서는 오늘날 무협지 못지않은 이 책의 아래 구절에 대해서 인용 한번 하지 않았을까?

"이곳에서 펠로폰네소스에서 온 4000명이 300만의 적군과 맞섰노라. 지나가는 나그네여, 가서 라케다이몬(스파르타) 사람들에게 전해 주시오. 우리가 그들의 명령을 이행하고 이곳에 누워 있다고." 헤로도토스의 '역사' 제7권 223~228장. 출처

실제로 스파르타인은 라코니아라는 평지의 남쪽 끝에 위치하여 라코니아로 진입하려면 스파르타를 통과해야 할 만큼 군사 전략적 요충지였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도시국가와는 다르게 성벽을 쌓지 않았다.

넓은 평지의 비옥한 땅과 에우로타스 강을 끼고 있어 자급자족이 가능했고, 스스로를 헤라클레스의 후손으로 여긴 그들의 타고난 육체(군사훈련)와 정신력(인종우월주의)은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당시, 그리스 연합군의 리더로서 인정받으며 역사 속에서 두각을 드러낸다.

그렇게 지중해의 패권을 차지한 이 도시국가는 그리스 연합군의 리더가 되어 기원전 시대의 정점(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찍고, 이후 역사에서 점점 자취를 감춘다. 왜냐? 인구가 갈수록 줄었기 때문이다. 최초의 인종우월주의 국가, 그들 도시 국가를 구성하는 헤일로타이인이 80%가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인종 우월적 관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들은 또한 말이 짧기로 유명했다고 하는데, 떠오르는 헬레니즘 시대의 상징, 필리포스 2세와 스파르타 간의 일화가 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아버지, 필리포스 2세가 스파르타를 쓰러뜨리겠다는 의지의 서신을 스파르타에 전하자, 이들은 두려워 하기는커녕, 'αἴκα 만약 if'이라는 서신만 전했다. 어디든, 남쪽이 말이 짧다. 마케도니아가 어떤 나라인가? 결국에는 페르시아 제국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알렉산더 대왕의 나라 아닌가?


그런데, 이들 스파르타가 고대 그리스 도시 국가에서도 왜 그렇게 중요했을까? 아무래도, 이들이 이끌었던 대규모의 그리스 연합군이 결국 페르시아를 막아내면서, 페르시아의 유럽 진출을 좌절시켰다는 것이 크다. 스파르타의 선제적 lockdown을 통해 그리스 도시 국가들은 (특히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힘을 키워갔으나 결과적으로 아테네는 (페르시아의 지원에 힘을 얻은) 스파르타에 의해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정점으로 쇠퇴한다. 스파르타가 막으려고 했던 것은 페르시아 제국군이었으나, 그들의 자본은 막지 못했다. 그 자본이 슬며시 스파르타에 자리하자, 스파르타는 인구의 감소와 더불어 자본에 의한 부패로 마케도니아와 (이후 로마)에 의해 사실상 그리스 도시 패권 국가로써의 지위를 상실한다.



300 하면 떠오르는 그것, lockdown

300만 명의 유럽인들이 lockdown으로 생명 연장의 꿈을 이어갔다고 한다. 영국에서만, lockdown이 시행됨에 따라 57만 명이 죽는 극악의 상황에서 10% 수준으로 끌어내릴 수 있었다.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 1세가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스파르타인 300인을 통해 막아낸 그것과 동일한 효과 아닌가?

페르시아 제국군과의 마라톤 전쟁 이후, 전환점이 바로 300명의 테모르필레 전투였다. 대규모로 쳐들어오는 군세 앞에서 1%의 군사력으로 최대한의 시간을 끌어 결과적으로 그리스 연합군의 승리를 가져오게 했다.

lockdown이 주는 효과도 이와 같다. 시간을 끌어, 전염병의 확산을 누그러 뜨린다. 영국의 언론매체들이 이제는 앞 다투어 이런 뉘앙스의 기사를 낸다.


'여러분, 이제 우리는 지난 5년간의 평균 사망자 수와 거의 동일한 위치까지 왔습니다. 이제 염려 놓으셔요.'



그리고 영국, 어디까지 왔나?

코로나 19로 인해 죽은 사람의 수를 측정하는 세 가지 방법을 BBC 뉴스가 제안했다. 하여간 신통한 나라다.


첫 번째는 확진자의 사망사례 - 이는 정부의 발표치이며, 실제 사망 진단서 상에 COVID-19를 명기한 기저 질환자나 care home의 노인들을 뺀 수치다. 이 수치는 현재 40,597명이다. (6월 7일 기준)

두 번째는 사망 진단서 상에 사망 사유로 COVID-19가 명확히 발행되어 있는 숫자이며, 50,107명이다. 사망 판정까지의 시간을 고려하면, 이 숫자는 5월 29일 (England), 5월 31일 (Scotland)까지의 숫자다. 시차가 있으므로, 실제 정부 발표보다 10-15% 정도는 현재 더 돌아가셨다고 보면 된다.

세 번째는 지난 5년간의 평균 사망자수 대비, 현재까지의 전체 사망자 숫자의 차이이며, 이는 63,708명이다. 즉, 지난 5년간의 평균 사망자 수에 대비해서, 금년 1월부터 5월 31일까지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 비교하는 지표인데, 이 숫자는 63,708명이다. 굳이 세 번째를 논의할 필요는 없다. 지난 5년 대비, 이번 겨울 (12월 - 2월)이 유난히 추워 노인분들이 더 많이 돌아가셨을 수도 있으며, 외부적 요인은 셀 수도 없이 많다.


내가 모델링을 했다면, 차라리 두 번째 지표인 사망 진단서 상의 사유가 COVID-19로 밝혀진 숫자가 50,107명이므로, 여기에 정부에서 발표한 수치에 23% (첫 번째와 두 번째 숫자의 비율)를 더하여 더하면 깔끔하다. 그렇게 되면, 40597명 X 6월 1일 - 6월 7일까지의 사망자 수 1673명에 23%를 더한다. 2064명이다.

즉, 세 번째 숫자는 첫 번째 숫자에 사망 진단서와 정부 발표 자료 상의 괴리율을 보정 수치 2064명을 더한 42661명이 되겠다. 정부 수치와 큰 차이는 없다.


영국의 코로나 바이러스가 곧 잡힐 것이며, 학교는 9월에 정상적으로 개학할 것이다. 그리고 하기 그래프에 의거해서, 몇 주 안에 영국의 사망률은 직전 5개년의 평균 사망률에 근접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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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 이제 그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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