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의 콕

친구, 그 이후: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난세에서 살아남기 (15) 일상의 재발견

by 외노자 정리

친구, 그 이후: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우리 아부지 학생인데예.

영국에 와서 많은 질문들을 받았지만, 나의 큰 아들 규도 많은 질문을 받아왔다. 그중 하나가 바로 너희 아버지 뭐하시니였다. 어느 날 작문 숙제를 하던 규가 나에게 물었다.


'아빠는 근데 뭐해?'

'아빠도 작문 숙제 해'

'나도 2 페이지나 써야 해. 아빠도 그래?'

'응 아빠는 3000자'

규는 자기가 쓴 두 페이지의 글자 수를 세며, 안도의 한숨을 쉬며 나에게 힘내라고 하였다. 규의 아버지는 학생이었다.


규의 입장에서 2018년 9월에서 2019년 10월까지의 나는 집에서 공부하는 사람, 그리고 자기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데리러 오는 사람이었다. 특히 둘째가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는 학교에 수업이 있는 날인 화요일과 수요일을 제외하고는 내가 홈스쿨링을 했었다. 1년 전의 일인데도 너무나도 멀게만 느껴진다. 아부다비에서 일할 때 나의 꿈은 아이들과 등하교를 같이 하는 것이었는데, 그 꿈이 영국에 와서 이루어졌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무튼, 낯을 많이 가리는 나는 학교에 가도 학부모님들과 어울리기가 너무나도 힘들어서 삐쭉삐쭉 서있기 일수였는데 그런 나에게 자신감 있게 다가와 질문을 던진 몇몇 학부모들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한국에서 오셨어요?'라는 서툰 한국말을 건네며 나에게 인사를 한 일본인 아줌마 T씨도 그중 하나. 일본인에 대한 나의 관념적인 생각은 이 아줌마를 통해 조금 희미해진다. '일본인들은 조용하며, 그 속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라는 그것 말이다. 오죽하면 UN 사무총장이 되는 방법으로 '일본인의 입을 열게 하고, 인도인의 입을 다물게 하라'가 나왔을까. 인도인들은 아부다비에서 죽도록 겪었으나 그들의 입을 다물게 하지 못했다. 그러나 내 앞에서 일본인이 입을 열었다. UN 사무총장이 되는 길에 반보 앞으로.


사실 일본인을 바라보고 있으면 영국인과 무척 닮았다. 겉으로는 사글사글하며, dear - lovely - wonderful - amazing을 연발하는 그네들의 입술은 부드럽지만 그 속은 마치 무쇠 덩어리처럼 알 수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경제학을 공부하고 싶어서 건설 관리학과 경제학이 함께 있는 과를 찾아 런던에 오게 되었던 나에게 수많은 optional module 중에서도 financial strategy of construction firms라는 과목은 너무나도 흥미진진해 보였다. 다름 아닌, 내가 아부다비에 있을 때 나와 전화통화를 하며 전화면접을 보았던 그 교수님이 가르치는 과목이 아닌가! 나이가 지긋한 그 분과 통화했던 아부다비의 뜨거운 여름날, 교회 찬양팀 연습을 하다가 부랴부랴 나와 차에 들어가서 에어컨 소리가 통화에 방해될까 봐 에어컨도 못 틀고, 외부의 소리가 들릴까 봐 창문도 못 열면서 통화를 하던 기억이 난다. 그때 그분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제 나이가 적지 않은데, 저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은 종종 있나요?'

'허허허, 내가 석사 시작한 게 40세였나 50세였나. 지금은 가물가물하네.'

'정말요?'

'자넨 아직 youngster야'


군대에서 주던 맛스타의 맛은 알지만, 영 스터가 주는 맛은 몰랐던 이때에, 그 할아버지 교수님이 나에게 재차 강조했던 한마디의 무게를 애써 잊으려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바로 이 것:

'영어 공부나 열심히 하게. 영국인들도 이 과에 들어오면 많이들 애먹고, 졸업하기는 쉽지 않았다네.'

그러나 나는 언제나 영어에 자신이 있었다. 윤선생 파닉스 조기교육과 수능 영어 만점 그리고 다국적 회사의 다국적 민족들과의 수천억이 넘는 계약의 조항들을 뜯어가며 싸워가며 그렇게 나의 영어는 발전한 줄 알았었다.

영어에 대한 나의 이야기는 깊이 들어갈수록 고달프므로, 나의 IELTS 고난기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만 이전 글, 목적이 이끄는 삶의 IELTS 챕터를 보시면 되겠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 교수님의 수업은 생각보다 재미가 없었다. 해외 현장에서 본사 복귀 후에 (굳이) 자원하여 들었던 투자개발사업 강의의 사내강사분께서 실무와 이론 사이를 줄타기하며 더욱 신나게 강의하셨었다. 반면, 연세 많으신 할아버지 교수님의 수업은 고리타분했다. 그러나, 이 과목에서 첫 실패를 겪는다. 아주 충격적인 comment와 함께, 'This is not English' 영어가 아닌데 이건?

나의 글 곳곳에 '이해할 수 없는 도표, 테이블, 그리고 표현'이라는 코멘트가 낭자했다. 핵심 과목 core module 4 종목에서 과탑을 유지하던 나의 프라이드에 닥친 이 학문적인 시련을 나는 결과적으로 잘 이겨냈다.

그러나, 그의 comment는 나에게 잊히지 않을 것 같다.



너희 아버지 뭐하시니? 우리 아버지 집에 있는데요.

영국에서 취업을 한 지 반년, 집에 있은지 3개월째가 되어간다. 취업이 되고,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는 횟수가 줄었다. 월요일과 금요일에는 원래 재택근무를 했었기에 편한 복장으로 학교에 여느 날과 같이 갔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내가 학생 이리라 생각했을 수도 있다. 더 이상 그들은 나에게 내가 뭐하는지 묻지 않는다. 그리고 규의 친구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묻기만 한다면 당당하게, '참나,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말이야, 제가 그 어렵다던 취업이 되었지 뭐예요. 저는 여러분의 히드로 공항의 실패를 분석하여 더 나은 공항으로 만들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답니다.'라고 할 텐데. 아무도 물어보지를 않았다.

나는 더 이상 3000자가 넘는 숙제 essay를 쓰지 않아도 되고 규도 더 이상 2 page의 작문 숙제를 전혀 버거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lockdown이라는 시간 속에 다시 만났다. 학생과 교사로.

아내가 오전 교사를 하면, 내가 오후 교사를 하고, 내가 오전 교사를 하면 아내가 오후를 맡는다. 그리고 아내는 아이들의 학업에 나보다 관심이 많으므로 오전 영어-수학 수업의 교사가 되고 싶어 하고, 아이들과 놀기 좋아하는 나는 activity들로 가득 찬 오후 수업- - 과학, 코딩, 역사- 가 역시 끌린다.

나는 아이들의 교사이면서도, 집안에 필요한 것이 있으면 능숙하게 고치는 맥가이버 아저씨가 되고 싶었다.


첫 번째 숙제는 베이블레이드 런처 launcher 수리:

베이 블레이드는 두 가지 타입이 있는데 왼쪽 위 타입은 쇠 스프링이 들어가 있는 줄 런쳐다. 이건 쉽다. 해체를 한 다음에 다시 잘 감아서 조립하면 된다. 그리고 원심부에 있는 나사를 일자 드라이버로 조여주면 끝.

문제는 둘째 녀석이 부탁한 소드형 런쳐. 괴이한 톱니바퀴 나사가 5개가 들어가 있고, 그 원리를 도저히 파악할 수가 없었다. 2시간 넘게 끙끙대다가 저녁 먹을 시간이 되어 잠깐 내려놓았다. 둘째의 눈이 촉촉하게 젖어들려고 한다.


'아빠 이거 부순 거야?'

'너는 내일 아침에 더욱 강력해진 소드 런쳐를 보게 될 것이다.'


나는 그렇게, 아이들이 잠이 든 그 시각에 유튜브로 베이블레이드 소드 런쳐 조립을 쳐가며, 완벽에 완벽을 기하여, 드디어 더욱 진보한 런처를 완성시킨다. 아이들이 일어나면 볼 수 있게 식탁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두 번째 숙제는 창고의 손잡이 고치기:

아이들의 니즈를 해결했으니 이제는 아내의 요구를 들어볼 차례. 가든에 있는 창고의 손잡이가 고장이 나서 문을 열기가 매우 힘든 상황이 되었다. 즉, 문에 문고리 머리 부분만 빠지고 안쪽에 뼈대만 남은 것.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싶어 잠깐 내려놓았었는데, 아내가 유튜브를 보더니 와인 마개로 손잡이를 만들 수 있다고 하면서 신나게 가든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이내 문고리 뼈대와 와인 마개가 헛도는 현상이 발생한다. 위기 상황에서 나의 머리는 풀가동이 된다. 아내를 즐겁게 해주고 싶다.

뼈대를 자세히 살펴보니 구멍이 여러 개가 있었다. 즉, 와인 마개에 긴 나사를 뚫어서 그곳까지 도달을 하면, 손잡이가 헛도는 현상은 발생하지 않을 것. 이 마저도 해냈다.

이번에는 실패작들을 보여줄 차례: 두근두근.

고무호스가 없어서 이걸 사기에는 좀 아쉽고 해서 비닐을 이용해서 고무호스를 만들어 보려고 노력했다. 나의 기계공학적 접근방법은 나쁘지 않았다. '물을 세차게 틀면, 유속 Q가 수압 HP을 이길 것이므로 얇은 비닐이 버틸 것이며, 물은 전달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대실패다. 아이들은 나와 즐겁게 비닐봉지를 길게 늘어뜨려 막대기에 감으며 튜브의 외관을 만들며 완성을 했지만, 결과적으로 유속이 아무리 빨라도, 비닐 튜브의 길이가 생각 이상이므로, 유속이 약해지면서 중간에서 물이 세게 된다. 아쉽다.






아이들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한 나의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언제까지? 회사가 다시 나를 부를 그때까지, 나를 따르라. 아이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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