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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대리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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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용 Dec 14. 2016

외로움, 술, 그리고 대리기사

                 - 만두속 될지라도, 대리기사는 간닷!!

https://youtu.be/QbOOlKhAl-c?si=KeTqrlNk7Hrfcsk5


7월 26일, 새벽입니다. 언덕배기 아파트단지를 터덜터덜 걸어내려오면서 하늘을 봅니다.  

장맛철이라지만 하늘은 맑기만 합니다.

얼마만인가요. 이 대리일을 하면서 하늘을 편히 쳐다볼 수 있었던게....

"...기사님, 제일 힘든게 뭔지 아세요?......외롭다는거...옆에 자기와 함께할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거...."
"...손님, 제일 힘든게 뭔지 아세요?  이렇게 고단하게 밤길 달려도 처자식 먹여살릴 수 없다는거..."


좀전 나눴던 대화를 되새기며 그렇게 하늘 한번 더 봅니다.
            

.▲ 용인에서 강남까지 대리비가 5만원? 수지 신봉동사거리에서 대책없이 셔틀을 기다리다가 잡은 오더입니다. 에고 강남까지 5만원이라고? ㅋㅋ


강남이 5만원?


 '수지 신봉동 000 아파트 - 강남  50k',
으잉?  

순간 내 눈을 의심합니다. 하지만 내 손가락이 더 빨랐나봅니다.  


신봉동 사거리, 버스는 끊겼고. 천상 대책 없이 육교 밑에서 셔틀 오기만 기다리다 잡은 오더입니다. (*셔틀- 새벽에 대리기사들을 유료로 이동시켜주는 사설버스를 말합니다.)


심봤다~~

손에게 전화 합니다. "...뚜뚜뚜~...."
한참을 전화 받지 않습니다. 아고 이거 꽝이구나...아쉬운 맘에 몇번 더 돌려본 전화, 

".....아..저...씨~, ......#@%%*&.....
....................
아저..씨, 오실 때...죄솧..하지..만...
...&^*# ...소주 한병과...오징..어....담배..하나만...사다 주실래..여~
...저..나쁜 사람...아니에..여...."


술에 푹푹 쩔은 목소리입니다. 마치 애원하는 소리 같기도 하고.

남자입니다 ^^
음...내 스마트폰의 화면을 점검합니다. 카메라, 녹음기....언제라도 바로 녹음하고 사진 찍을 수 있도록 점검해봅니다. (*대리기사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방어하는 증거 확보를 위해 녹음기와 카메라 어플은 필수입니다. ^^)

근처 편의점에 들려 술과 안주, 담배를 사들고...아파트 언덕으로 걸어갑니다. 근데 왜 꼭 대리오더는 아파트 꼭대기 아니면, 그 너머 뒷편인건지.

만두속이 될지라도, 대리기사는 간다

아파트 %%동, 다시 확인 전화하고 올라갑니다. 헉!!

소도둑놈 같은 넘이 갑자기 튀어나옵니다. 재빨리 스마트폰의 녹음기를 돌려댑니다.

맞탱이 간 손, 나를 붙잡고 빨리 자기 집으로 들어가자고 보챕니다. 망설여 집니다. 

저 컴컴해보이는 남의 집 들어가서 무엇이 될꼬..으음.

설령 내 살이 이집에 와서 만두속이 될 지라도. 대리기사가 가야하는 길이라면,  

들어갑니다-

넓은 아파트 집안입니다.  음. 아름다운 장면이 펼쳐집니다.
           

▲ 소주병과, 외로움, 그리고 대리기사: 수십병의 소주병, 널려있는 안주쪼가리, 그사이에 구겨져 술취한 손, 거기에 대리기사가 하나 더 얹어집니다


20여일을 이러고 있었다 합니다. 오직 소주와 비루한 안주, 담배를 물어댄 채.

자세히 들여다보니 험한 얼굴의 사람은 아닙니다. 아니, 그렇다기보단, 순하고 지친, 가엾기까지 한 얼굴 모습입니다. 이미 두명의 대리기사가 이렇게 술 사들고 와서 손의 푸념을 들어주곤, 몇만원 받고 간거 같습니다.

이제 오늘밤에는 내가 마지막 방문한 대리기사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나이 51, 아직껏 미혼, 노부모님들은 생존하시는거 같고.

그동안 해본 일이라곤 사기 당하고, 택시기사하고, 알바해보고.  

돈 없는 사람은 아닌거 같고.

마음은 여리고 착한 사람 같은데, 스스로 무기력과 자책에 빠진 사람.

한시간반동안 앉아 나눈 대화 중 파악해본 사항입니다.  

"...뭐라도 해야겠기에,...택시기사도 하고 알바도 해보고...여럿 해봤어요.

그런데...정말 하지 못할거 같은게...바로  대리기사였어요.  ....대리기사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 생각해요...어떻게 그 밤을..."

우리 대리기사, 참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단돈 1-2만원 벌기위해서 언덕배기를 오르내리고 골목길을 배회하며, 강남 대로길도 무단횡단해 버립니다.  

비오는 밤, 숲속길을 외롭게 걸어가도 겁이 날 틈이 없습니다.

설령 만두속이 될지라도,

손님이 오라는 곳은 목숨 걸고 갑니다. 그리고 이런 가엾은 유한계층의 술심부름과 푸념을 다 받아넘길 줄 알고, 인간적 위로까지 해줍니다.

돈 7만원 주머니에 넣고, '흐믓한' 마음으로 언덕길을 내려옵니다.

이런 근사한 아파트 하나 없고, 벤츠 자동차도 없지만 뭔가, 내가 더 부자인거 같은 밤입니다.

그렇게라도 우기고 싶은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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