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 코인, 지니어스법, 그리고 달러 패권의 재구성
2025년, 미국은 하나의 법을 통해 디지털 통화의 시대에 국경을 긋고, 그와 동시에 스스로 그 경계를 무너뜨리는 모순된 선언을 했다. 바로 지니어스법(GENIUS Act).
이름만큼이나 야심만만한 이 법은, '스테이블 코인'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재정, 국제 금융 질서, 그리고 대통령(트럼프)의 가족 자산까지 통합 지휘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봐야겠다.
달러의 디지털 세탁
지니어스법의 요지는 간명하다.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하려면, 미국 달러·미국 국채·FDIC 보장 예금과 같은 안전자산을 1:1 비율로 담보해야 한다. 당연히 100% 지급준비금은 필수고, 월간 회계 감사, 자금세탁방지 보고, 공공감시 체계 편입도 따라붙게 된다.
즉, "스테이블 코인은 더 이상 코인이 아니다."
디지털 껍데기를 쓴 준(準)국채, 준(準)달러다. 암호화폐의 탈중앙성과 익명성은 이 법 아래 철저히 제거된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제약이, 묘하게 미국 재무부와 손발이 딱딱 맞는다.
국채는 팔려야 하고, 금리는 낮아야 하며, 달러는 기축통화로 군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걸 주구 장창 주장한 사람이 누구? 트럼프
금리 가지고 파월을 계속 협박하던 사람이 누구? 트럼프
스테이블 코인은 이 세 가지를 모두 만족시키는 21세기형 디지털 기축 자본이 되겠다.
(만성적) 재정적자와 코인의 밀월
지금 미국은 연간 3조 달러 재정적자에 허덕인다. 36조를 넘은 국가 부채, 방위비를 추월한 이자 비용, 그리고 줄어든 외국 국채 보유량. 중국, 일본 모두 미 국채를 던지는 시대다.
그러자 미국은 스스로 묘안을 냈다:
"민간 코인, 너 국채 사라."
스테이블 코인은 국채 수요를 보완하고, 금리 인상을 방지하며, 디지털 상에서 달러의 사용을 확대한다. 이것은 단순한 암호화폐 규제가 아니라, 디지털 금융 생태계에 민간 자본을 끌어들여 재정위기를 메우는 새로운 재정통화정책이다.
예컨대, 연준은 금리를 인상할 필요 없이, 민간 코인이 국채를 떠안겨서 비공식 양적완화를 달성할 수 있게 된다.
대통령의 디지털 왕국
그런데 여기서 더 흥미로운 것은 트럼프의 움직임이다. 2025년 재집권한 트럼프는 솔라나 기반의 밈코인 $TRUMP와 자체 스테이블 코인 USD1을 들고 나왔다.
대놓고 당당하게 지 이름 붙여놨는데, 그저 기가 차서 웃어 넘기기에는 너무 정교하다.
그게 문제다.
왜냐하면, 지니어스법은 스테이블 코인의 제도화를 통해 이런 프로젝트에 합법적 명분과 안정성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더해서, 이 법은 연방 의원과 고위공직자의 코인 발행은 금지하면서도 대통령과 부통령, 그 직계가족은 예외로 둔다.
그러니까 말인즉슨 트럼프 가족이 코인을 발행해도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
이쯤 되면 법이 대통령에게 면죄부를 준 게 아니라, 대통령이 법을 통해 자기 사업을 정당화한 셈이다. MB도 이 정도로 대놓고 해먹지는 않았는데, 역시 천조국은 스케일부터 남다르시다.
한국 대통령이 이런 짓을 했다?
광화문에 응원봉 백만 개가 반짝거리는게 눈부셔서 실눈 뜨고 있어야 할 게다. 전국 고속도로는 활활 타는 횃불 들고 상경하는 시민들로 북새통일걸?
권력과 자산이 만나는 곳
지니어스법과 트럼프 코인의 관계는 단순한 제도와 민간의 연결 고리를 넘어선다. 이건 정치가 자산이 되고, 자산이 권력을 사들이는 구조의 정식 출현이다.
1) 지니어스법이 통과되자 트럼프 코인의 신뢰도는 급등했고,
2) 제도권 편입이라는 기대감으로 거래량과 가격이 급등했으며,
3) 그 뒤에는 대통령 이름을 단 코인이 존재했다.
공직자윤리국(OGE)은 디지털 자산을 보유한 공직자의 입법 관여를 제한하고 있지만, 대통령은 예외다. 미국의 윤리 규정은 EU나 한국에 비해 구멍이 많다. 공정성은 실종됐고, 자산 축적의 길은 최고 권력자에게 활짝 열렸다. 트럼프 살판났다. 이러려고 출마했구나?
디지털 국채공화국의 서막
지니어스법은 디지털 시대의 암호화폐를 통화정책의 보조수단으로 흡수한 동시에, 정치권력의 자산화를 제도화한 이중적 법이다. 이는 일종의 정치-금융 복합체(PFIC: Political-Financial Industrial Complex)가 디지털 공간에 구축되고 있다는 신호다.
정책은 사업의 기반이 되고, 사업은 정치의 뒷배가 되며, 결국 시장은 특정 정치인(이라고 쓰고 트럼프라고 읽는다)의 이름을 티커Ticker로 사고판다.
이제 스테이블 코인은 더 이상 중립적 수단이 아니다. 그건 통화정책이고, 채권시장이고, 정당 홍보물이자, (트럼프) 대통령의 디지털 부동산이다.
윤리의 부재
문제는 이 모든 구조에 대한 윤리적 제동 장치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직자 윤리는 예외조항에 묻히고, 법의 경계는 권력자의 손에서 재단된다. 이런 구조에서 누가 신뢰를 말할 수 있을까? MAGA, 너네는 이거 예상 했늬?
아마도 이 모든 상황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겠다:
"당신이 가진 통화의 진짜 가치는 그것이 누구(트?)의 얼굴을 담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아, 그러고 보니, 재정적자로 인한 이자 비용이 방위비를 추월한 거, 미국 건국이래 처음 있는 일 아닌가? 이게 더 무서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