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영상으로 변화하는 FPV 시스템
지금은 끝나버린 인기 쇼 프로그램 ‘무한도전’은 지금도 케이블 방송에서 끝없이 재방송을 볼 수 있습니다. 종종 멍하니 바라보며 웃곤 하는데 오래된 에피소드는 화질도 거칠고 화면 비율도 달라 지금의 텔레비전 화면을 다 채우지 못합니다. 무한도전이 처음 방영을 시작한 2005년은 아날로그 전송 방식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정보가 디지털로 저장되고 유통되는 게 당연한 오늘, 아날로그 화면은 오래된 과거처럼 기억도 희미하지만
디지털의 선명함이 당연해서 아날로그의 거친 색에 눈살을 찌푸리기 시작한지 고작 7년밖에 되지 않은 셈입니다. 디지털 기술은 ‘무한도전’ 뿐 아니라 드론에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아무리 많은 드론이 동시에 떠올라도 서로 혼선이 생기지 않는 이유 역시 디지털 기술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드론도 2.4GHz 대역의 주파수만으로 조종기 가능한 이유는 붐비지 않는 주파수로 채널을 건너뛰면서 정보를 전달하는 디지털 기술 덕분입니다.
다양한 디지털 기술의 복합적으로 응용된 분야가 드론입니다. 하지만 아날로그 기술을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못한 것도 드론입니다. 드론의 조종과 항공 영상은 디지털로 처리되고 저장되지만 빠른 속도로 비행을 즐기는 레이싱 드론의 FPV (First Person View, 1인칭) 영상은 여전히 아날로그 신호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선명한 디지털 화면에 익숙한 우리는 FPV의 아날로그 화면도 언젠가는 디지털로 바뀔 거라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몇몇 제품들이 디지털 FPV 화면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날로그 FPV 화면을 바꾸기에는 어딘가 하나씩 부족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아날로그 FPV 영상은 점점 표준이 되어 갔죠. 그리고 2019년 또 하나의 디지털 FPV 시스템이 소개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냥 지나치기 힘들 듯 합니다.
1080p 규격의 HD 화면의 해상도는 1920 x 1080 입니다. 2,073,600의 점을 모아 한 장의 화면을 만듭니다. 2,168 x 3,840의 4K 영상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FPV 영상에 사용하는 아날로그의 해상도는 고작 720 x 480 (NTSC의 경우)입니다. 디지털 화면에 절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나 FPV 영상이 아날로그를 고집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전송속도 입니다. FPV 카메라에 영상이 촬영되고 FPV 에서 영상을 확인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레이턴시(Latency) 라고 합니다. 아날로그 FPV 카메라의 레이턴시는 0.025초 정도 입니다. 눈을 깜박할 사이가 0.013초라고 하니 눈보다는 느리지만 레이싱 드론이 복잡한 장애물을 피하기는 충분한 시간입니다. 레이싱 드론에게 영상 지연은 중요합니다.
항공 촬영용 드론이 전송하는 영상은 눈에 띄도록 레이턴시가 발생합니다. 장애물이 전혀 없는 하늘이면 모를까 이 영상만으로 비행하기에는 위험합니다. 물론 디지털 영상 송신 방법도 레이턴시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했습니다. 디지털 FPV 방식을 처음 시장에 소개한 코넥스 프로사이트(Connex Prosight)의 레이턴시는 0.031초 밖에 되지 않습니다. DJI가 소개한 디지털 영상 장치 오큐싱크 에어(Ocusync Air)의 레이턴시 역시 약 0.03초 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레이싱 드론은 아날로그 방식을 선호했습니다.
디지털 FPV 영상이 대중화 되려면 영상 전송 속도와 크기를 극복해야 합니다. 쉽지 않은 과제지만 완성도 높은 기술이 등장한다면 게임의 규칙이 바뀔지 모를 일이죠.
DJI가 소개한 디지털 FPV 시스템의 레이턴시는 0.028초 이하 입니다. 아날로그 방식과 비교해서 큰 차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전송거리는 4km에 이릅니다. 아날로그와는 비교하기 힘든 거리입니다. 디지털 FPV답게 고글에서 확인되는 영상도 720p에 120fps입니다.
영상이 멀리까지 송신되어도 드론이 멀리 가지 못하면 소용이 없을까봐 DJI 디지털 FPV 시스템은 전용 조종기까지 함께 선보였습니다.
DJI 디지털 FPV 시스템은 고화질 FPV 고글과 장거리 제어를 위한 전용 조종기 그리고 FPV 영상과 조종을 담당할 에어 유닛으로 이루어집니다.
FPV 카메라가 장착된 에어 유닛은 FPV 영상을 전송하고 1080p의 고화질을 메모리카드에 저장하는 역할을 합니다. FPV 영상과 고화질 녹화를 동시에 하는 카메라와 역할이 비슷합니다.
이 카메라 덕분에 최근 씨네우프가 많은 인기를 끌고 있죠.
하지만 DJI의 에어 유닛은 영상 송신기가 추가 됩니다. 거기에 드론을 제어할 수신기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DJI 디지털 FPV 시스템을 위해 레이싱 드론을 새로 장만할 필요도 없습니다.
DJI 디지털 FPV 시스템은 많은 파일럿이 애용하는 베타플라이트 4.1.0 버전을 지원합니다. 드론에서 FPV 카메라와 영상송신기 그리고 수신기를 떼어내고 그 자리에 에어 유닛을 넣으면 됩니다.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한 안테나가 인상적인 고글은 생각보다 앞으로 튀어나온 덕분에 착용하면 맵시가 사라지지만 얼굴이 큰 사람을 위해 좌우로 넓은 공간을 자랑합니다. 하지만 낮은 코가 매력인 사람에게는 코 주변으로 빛이 들어오는 단점이 있습니다. 안경을 대신할 추가 렌즈가 옵션으로 준비될 예정이지만 렌즈 위에 생기는 습기를 제거하기 위한 팬은 없습니다. 무게는 415g으로 200g 정도의 기존 고글과 비교하면 무겁습니다.
사용할 수 있는 채널은 8개 입니다. 40개가 넘는 아날로그 채널에 비하면 빈약해 보이지만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채널이 8개 입니다. 아날로그 채널은 혼선 문제로 안정적으로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채널은 4개 정도에 불과 합니다. 8명이 동시에 비행하는 드론 레이싱 경기가 가능합니다.
FPV 디지털 시스템의 조종기는 DJI의 여느 조종기와 비슷한 모양입니다. 스틱의 딱딱함을 조절할 수 있고 다양한 스위치가 있어 기존 조종기와 사용법에서 크게 다르지 않지만 영상 녹화 버튼이 따로 있는 것은 큰 차이입니다.
고급진 조종기를 대표하는 후타바(Futaba)와 동등한 반응 속도입니다. 내 둔한 비행 솜씨를 원망해도 DJI 디지털 FPV 시스템에게 우아하지 못한 비행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고해상도의 영상을 담은 스펙에 잠시 넋을 잃었다면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오세요. 성능은 가격에 비례하니까요.
조종기를 포함한 패키지는 129만원입니다. 취미란 원래 돈이 필요한 법이지만 129만원이 비싼지 그렇지 않은지 판단하기 힘듭니다. 드론을 처음 시작하기 위해 DJI의 매빅2 줌을 선택해도 156만원의 지출이 필요합니다. 그 밖에 필요한 액세서리까지 생각하면 DJI 디지털 FPV 시스템의 129만원은 상대적으로 저렴합니다. 하지만 디지털 FPV 시스템이 필요한 사람은 이미 레이싱 드론으로 등짝을 수 없이 맞아가며 지출을 끝냈기 때문에 꼭 필요한 장비가 더는 필요 없습니다. 129만원은 비행을 즐기기 위한 지출보다는 디지털의 선명한 화질을 탐한 가격이죠.
다행히 조종기를 제외하면 가격이 115만원으로 조금 저렴하지만 4km 비행거리가 가능한 조종기가 14만원이라면 비싸지 않습니다.
이미 장거리 비행이 가능한 송수신 시스템(Long Range)을 갖추고 있다면 14만원의 지출도 아깝지만 1g의 체중조절도 아쉬운 레이싱 드론에서 수신기를 제거할 수 있다는 매력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비싼지 싼지 좀처럼 감이 오지 않는 DJI 디지털 FPV 시스템을 하나하나 분석해 봐야 겠습니다. 환율과 관세로 차이가 발생할 수 있으니 미화로 비교하겠습니다. 14만원으로 보이는 조종기도 단품으로 구매하면 250불입니다. 송수신 거리까지 판단하면 가장 보편적인 타라니스 조종기에 TBS의 장거리 송수신 장치인 크로스파이어 시스템을 추가해야 비교가 가능합니다.
물론 크로스파이어 시스템의 비행 거리가 훨씬 더 멀지만 FPV 영상 송수신 거리가 받쳐주지 못하면 의미 없습니다. 거기에 영상송신기와 안테나도 필요합니다. FPV 카메라도 없으면 안 되죠.
179불의 DJI 에어 유닛은 이 부품들을 대신합니다. 더 비싸지만 조종기와 함께 생각하면 훨씬 저렴합니다. 이번에는 FPV 고글을 살펴봅시다. DJI 고글 단품의 가격은 529USD 입니다.
하지만 팻샥 HDO는 수신모듈을 별도로 구입해야 합니다. 아날로그 시스템의 송수신 거리는 4km에 미치지 못하지만 높은 성능을 자랑하는 레피트파이어(RapidFire)로 선택해 봅시다.
DJI 디지털 FPV 시스템에 대응하는 모든 부품의 가격을 합치면 1070불입니다. DJI 디지털 FPV 시스템에 드는 비용은 현재 세일가격 929불, 세일을 하지 않은 가격 1,007불과 비교해도 아날로그 시스템이 더 비쌉니다. 물론 더 저렴한 옵션을 선택할 수 있지만 아날로그 시스템이 디지털의 강점을 이기기에는 역부족입니다.
레저용 항공 촬영 드론 시장에서 DJI의 입지는 막강합니다. 어떤 신제품 드론도 DJI의 드론과 비교당하고 가격이 아니고서는 좀처럼 DJI 드론을 상대하기 힘듭니다. 그런 DJI는 레이싱 드론 시장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 보였지만 사실 DJI의 레이싱 드론 생태계의 도전은 지금이 처음이 아닙니다.
하지만 계속되는 다양한 도전에도 이번에 출시한 DJI 디지털 FPV 시스템처럼 대대적인 평가단과 함께 홍보를 전면에 내세운 자신감을 보인 적은 처음입니다. 출시한지 얼마 되지 않아 더 많은 평가를 기다려 봐야 겠지만 지금까지 소개된 디지털 FPV 시스템 중에 가장 높은 완성도를 보인다는 평가입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디지털 시스템은 태생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0과 1로 이루어진 디지털 세계에 애매한 화질 따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전파 수신이 극히 나쁜 경우, 아날로그 시스템은 땅과 하늘의 실루엣 정도는 확인할 수 있지만 디지털은 차라리 안보여주고 말지 나쁜 화면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사이 드론이 추락한다 해도 말이죠.
디지털 시스템이 레이싱 드론 생태계에 안정적으로 안착할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오픈 소스로 기술이 발전하는 레이싱 드론에 자본과 기술력을 앞세운 대기업의 진입이 달갑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작건 크건 그룹을 만들어 함께 비행을 즐기는 레이싱 드론 동호회의 아날로그 벽도 DJI에게는 큰 장벽입니다. DJI 디지털 FPV 시스템의 주파수 호핑 기술은 FPV 전파의 5.8GHz 대역을 넓게 장악합니다. 그것도 700mW의 고출력으로 말이죠. 약해진 아날로그 FPV 전파를 삼켜 먹통으로 만들어 버릴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디지털 시스템은 무한도전의 화질과 스마트폰처럼 거스를 수 없는 변화입니다. 아날로그 기술이 향수처럼 매력을 간직해도 레이싱 드론은 아날로그 기술을 놓아줄 날이 오겠지요. 그 시작이 DJI의 디지털 FPV 시스템인지 아직 장담할 수 없더라도 말입니다.
하늘을 나는 물건을 하나씩 공부하고 있는 엔지니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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