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글을 쓰는 이를 사랑하고 싶다

브런치 10주년 팝업 전시를 다녀와서

by dropfairy
출간 작가를 꿈꾸며


전시회 관람을 끝내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안내를 하던 직원분이 먼저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제안했다. 망설이고 있는데 "이 분 사진 잘 찍어요."라는 추천이 추가되어 쭈볏쭈볏 의자에 앉았다.


민망함이 극대화된 상태로 고개를 푹 숙였다고 생각했는데 사진을 보니 마냥 좋아서 헤벌쭉 웃고 있는 것 같다.


올 9월에 브런치 작가가 되고 한 달 후 내 인생 최초의 초판 브런치북을 발간했다. 너무 기뻐 혼자서 손을 부여잡고 몸을 방방 뛰며 아들에게 제일 먼저 자랑했다. 흥분한 엄마를 지켜보던 아들이 “내가 뭐 해주면 돼?”라고 물어서 “응원해 줘야지. 엄마 브런치 구독도 하고 후원도 해야지.”라고 했다. 그날 아들은 지금도 18명인 내 구독자 중 한 명이 되었고 '응원하기'에 5만 원을 보냈다.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고 내 인생이 아직 달라진 건 없다. 나는 여전히 직장에서 같은 일을 하고 기숙사로 떠난 아들 방에 새로이 아버지가 입주했다. 집, 회사, 운동을 반복하는 루틴에 글쓰기가 추가되었다.


지난주 목요일 아버지 수술이 끝난 후, 친한 지인들과 넷이서 브런치 10주년 팝업 전시를 다녀왔다. 다들 직장인으로 2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가슴에 '책'이라는 키워드를 품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지인들과 보조를 맞춰 꼼꼼히 전시 공간을 밟고 마지막 층에서 돌아 나오려다 아래 글을 봤다. 선정된 전시글도 아니고 브런치에서 준 주제에 가볍게 연필로 적은 듯한 조금 비뚤어진 글씨체. 내게 맞는 이상형을 발견한 듯 이 글을 열 번도 더 봤다.





이렇게 글을 쓰는 이를 사랑하고 싶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연령과 외모 등을 전혀 모르지만 이런 글을 쓰는 이라면 무작정 사랑할 것 같다.


나의 두려움과 두근거림을 공감하는 '지금 거기 서 있는' '밤하늘에 반짝임을 선물해 줄 수 있는', '나'를 알아봐 주는 밝은 눈의 이를 만나고 싶다.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을 읽고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은 꼽추건 얼굴에 흉측한 상처가 있건 사랑할 수 있겠다."


첫사랑을 하기 전이었고 설렘의 비중에서 외모가 컸지만 이런 글을 쓰는 감성과 재능은 그 자체로 그를 완벽하게 만들었다. 관찰사가 됐으면 그냥 일하러 가도 될 터인데 가는 내내 임금을 그리워하고 인생의 흥망성쇠를 떠올린 후 선정의 포부를 드러내는 그가 각별해 보였다.


"뭐지 이 사람? 일편단심에 보는 것마다 의미 부여하고 웅심도 있고 일하면서 이렇게 구구절절 살뜰하게 글을 쓴다고?"


그렇게 송강 정철이 내 첫 이상형이 되었다. 그리고 지난 브런치 10주년 팝업 전시에서 다시 떨리는 내 이상형을 발견했다. 내 또래의 싱글 남자면 로맨틱하겠지만 글쓴이가 여자여도 또래가 아니어도 괜찮다. 발걸음을 멈춰 세워 내 시선을 고정시킨 별하 같은 당신에게 이미 반해버렸다. 당신이 누구 건 매료된 내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글을 쓰는 이를 사랑해야겠다.


여전히 수줍고 떨리고 설레는 꿈을 가진 '나'를 알아볼 수 있는 남다른 '당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