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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방울 Sep 08. 2024

엄마의 기도

귀하게 대접하라

일산에서 가구 전시회에 가는 길. 엄마도 오시겠다는 연락이 왔다. 며칠 전 전시회를 간다고 했고, 엄마도 시간 되면 오신다고는 하셨는데, 그 당시에는 그렇게 오는 길이 험한 지 몰랐다. 봄이와 함께 간 그곳에서 만난 친정 엄마는 반갑고도 감사했다. 시간은 1시간이 조금 넘은 거리였지만 두 번을 갈아타고 나와야 하니 여든이 다 되신 당신에게는 쉬운 길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밖에서 친정 엄마와 만나는 장소는 엄마에게 언제나 익숙한 장소인 종로였다. 한 번만 갈아타면 오실 수 있는 곳. 자주 다녀서 시간이 걸려도 마음이 편안한 그런 곳. 하지만 오늘 만나는 장소는 집에서 걸어서 지하철까지 10분을 걸어 7호선을 타고 서해선으로 갈아탄 후, 3호선 끝까지 와서 택시를 타야만 올 수 있는 곳.


"엄마, 여기까지 오시려고? 멀지 않아?"

"봄이랑 너도 볼 겸 가면 되지. 어떻게 가는지 카톡에 남겨놔."


딸냄이 만날 생각에 들뜬 목소리를 향해 차마 오지 말라고 말리지 못했다. 다음 날, 새벽에 줌 수업이 기다리고 있긴 했지만 친정 엄마를 집까지 모셔다 드려야겠다고 결심했다.


천천히 둘러보고는 저녁을 먹으면서

"엄마, 모셔다 드릴게."

"아냐, 아냐. 지하철이 훨씬 편해 야. 너 피곤해. 집에 가서 자고 갈 거 아니면 각자 집으로 가자."

"그러지 뭐."

"엄마 힘들까 봐 그러는 거면 그냥 가라니까. 또 출근해야 되고, 힘들어. 그냥 가라니까."

"봄아, 할머니 집에 가고 싶지?"

"응, 난 할머니 집에 가는 거 좋은데?"

엄마는 그제야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내 차에 올라타셨다.


주말이라 차가 좀 막혀서 오히려 엄마가 피곤한 건 아닐까 싶었지만,

"엄마, 지하철보다 오래 걸려도 지하철에서 3번씩 갈아타고 가는 거보다 훨씬 좋지? 자리도 편안하고?"


집에 도착해서부터 다음 날 집을 나설 때까지 엄마는 바쁘셨다. 그냥 집에 갔어야 했나? 싶었지만 애써 엄마가 딸도 보고 좋으실 거라고 생각하며 미안한 마음을 거두었다. 남편도 친정 간 김에 늦은 밤 오지 말고 잘 쉬었다가 오라고 하고 아들은 엄마의 부재가 더 좋은지 흔쾌히 허락을 하였으니 걸리는 맘도 없다.


"우리 손주는 다 컸네. 엄마 없어도 혼자 챙겨 먹고."

"그르게 말이야. 내가 나오는 걸 더 좋아하나 봐."

말속에 씁쓸함을 엄마는 읽으셨을까?


"방울아, 그래도 엄마는 엄마여야 해. 애들이 커가면 속도 썪이고 말도 안 듣고 하지. 싸울 봐에야 나온다 싶은 맘으로 휑하고 나오지 말고 집에서 잘 챙겨줘."

"아니, 뭐 내가 맨날 나가나. 같이 다니고 싶은데 아들이 안 나오니까 어쩔 수 없이 두고 나오기도 하고 그러는 거지."

"알지. 그래도 엄마가 집에 있는 거랑 없는 거랑 다른 거야."

"그런가? 그렇다고 맨날 옆에 붙어있는 것도 힘들더라고. 나랑 있어도 나랑 있는 것도 아니고."

"말 안 듣고 속상하다고 너 알아서 먹으라고 두지 말고, 귀하게 대접해 줘. 엄마가 자식 생각하면서 정성껏 음식 해서 예쁜 그릇에 담아서 주고. 그래야 나중에라도 엄마 마음을 이해하려고 하는 거야."

"......"

엄마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아서 목이 메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들이 데면데면 한다고 엄마도 똑같이 하면 안 되고, 아들이 툭툭 거려도 너는 늘 따뜻하게 대해주고 궁디 팡팡 때려주면서 맛있는 거, 좋아하는 거 예쁘게 차려서 주고 그래. 귀하게 대접받아야 또 밖에서도 그런 대접을 받고 자란다."

"알았어."

이미 나는 눈물 바람.

"나도 알지. 우리 딸이 잘하는 거 알아. 속도 썩고 힘들지. 자식 키우는 게 젤로 힘들잖아."

"엄마..."

"나무가 크면 다 알아. 아들하고 똑같이 화내고 이기려 하면 엄마 마음 알려는 노력조차 안 해. 지가 말 안 듣고 속상하게 하는데도 엄마가 늘 자기한테 정성스레 대하면 함부로 하지 못하고 오히려 엄마 마음 알고 깨닫게 되는 거야."


엄마는 늘 나에게 그래 주셨다. 조금 먹든 많게 먹든 엄마는 늘 예쁜 그릇에 짝 맞춰 덜어주셨다. 남은 반잔통에 한 번에 먹을 반찬이라도 반찬 통을 식탁이 올리는 법이 없었다. 적은 양도 접시에 가지런히 덜어 내어 차려주셨다. 찬밥으로 한 끼가 될 듯 한대도 되도록이면 따뜻한 밥을 갓 지어 밥그릇 가득 퍼주셨다. 뜨끈뜨끈 늘상 그렇게 먹다가 친구 집에 갔는데 친구네 엄마가 접시에 밥을 떠주셔서 당황했던 기억이 났다. 그렇다고 나를 귀하게 대접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닐 것이다. 다른 문화였던 거고 그런 부분에 크게 개의치 않으셨을 것이다.


다만 친정엄마는 사소한 차이에게 상대방을 배려하고 대접하는 마음이 느껴진다고 여기신 듯하다. 아무리 가깝고 편안한 가족에게도 정성껏 차려주셨다. 물론 가끔 온 가족이 함께 비벼 먹는 비빔밥이나 꽁보리 된장 비빔밥에 각자의 밥그릇 없이 숟가락 들고 덤비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날의 밥상엔 또 다른 컨셉으로 함께의 맛을 느끼게도 해주셨을 것이다. 엄마의 식탁에는 엄마 나름의 식탁 철학이 있으셨던 것 같다.


딸과 전시회를 나서며 아들이 먹을 김밥을 싸놓고 나왔는데 혼자서 식은 김밥을 씹어 먹고, 부족한 부분을 라면으로 배를 채웠을 것이다. 물론 아빠가 그 빈자리를 채워 저녁을 먹었을 테지만. 엄마의 말이 생각나서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얼마 전 다꾸다꾸에서 썼던 '위대한 식탁'이 내 눈에 들어왔던 까닭일지도 모른다. 엄마가 해주셨던 말이 가슴에 찡하고 뜨겁게 닿아서. 귀하게 귀하게 내 마음에 꾹꾹 눌러 담을 소중한 한 마디. 내게 당신이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늘 나를 귀하게 대접해 주신 당신이 내게 얼마나 소중한 분인지. 여전히 나를 깨뜨리고 성장하게 해주는 당신이 있어서 참말로 좋다.





사랑하는 나의 아이들에게


아들, 엄마가 주말에 가끔 너와 싸울 생각에 널 피해 밖으로 나갔던 건 사실이야. 네가 안 나간다는 핑계를 댄 것이지. 그러고 보니 요새 너를 위해 고운 마음으로 밥상을 차린 적이 있었나 싶었다. 물론 요리를 할 때는 너희가 좋아하는 반찬을 만들기 시작하지만 '밥 먹자!'를 외칠 때 후다닥 식탁에 모여 앉지 않는 순간에 그 마음이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거든.


그저 귀하게 온 너에게 귀한 밥상을 차려줄 생각을 왜 하지 못했을까. 당연히 차리는 엄마의 밥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너희에게 엄마는 애처럼 심통을 부린 적이 참 많았다. 참 못났지, 엄마가. 할머니가 엄마의 마음을 알아채셨나 봐. 정말 귀신같이 아시지. 할머니에게 엄마의 못난 마음을 들키고 말았지 뭐야. 아니 그보다 너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 너른 마음과 따뜻한 마음으로 살아가라고 말해놓고, 밖에서는 그렇게 사는 것처럼 말해놓고 정작 너희들에게 찬바랑 쌩쌩 부는 엄마가 되어간 것 같아.


오늘은 어떤 그릇에 어떤 반찬을 담아서 너희 앞에 내려놓을까? 귀하게 엄마에게 와 준 너희들에게 따뜻한 밥상을 차려 볼까 해. 엄마 실력으로 진수성찬을 차릴 수 없지만 말이야. 정성을 넣어 기도하는 마음으로 밥상을 차려볼게.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뜨거운 밥 위로 엄마의 사랑 반찬 하나 얹어본다. 사랑해.



엄마의 기도

내 아이에게 중요한 순간에 현명한 선택을 하는 지혜를 주시고 그 선택이 실패했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시고, 그래도 힘들어할 때 손을 잡아줄 귀한 손을 보내주시고 누군가 쓰러질 때 내 아이가 그 손을 잡아주는 사랑을 주소서.

-윤우상 박사님의 엄마의 심리 수업 2 중에서-

친구가 보내주었던 글귀를 적어서 밥상 위에 놓아본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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