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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방울 Nov 17. 2024

너는 내 운명

다시 태어나도 난 너와 브런치!


11월, 이맘때가 되면 마음이 파랑파랑 해집니다. 구름 위를 걷는 듯 발걸음이 가볍고 마음엔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간질간질해집니다. 내내 서있는 지하철에서도 지난 1년의 시간을 돌아보느라 마음이 분주합니다. 작년 이 맘 때가 떠올라 울컥하는 순간의 제 모습이 지하철 검은 창으로 비칩니다.


끄적끄적 낙서하듯 적는 일은 나만의 비밀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일기로 써 내려가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들킬 새라 아무도 알 수 없는 시로 나를 담아내기도 했습니다.  중학생이었던 저는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기 전에 가려진 칸막이가 있는 나만의 공간에서 다이어리에 끄적거리기로 시간을 썼습니다. 좋게 말하면 문학소녀였지만 그때 그 귀한 시간에 대신 공부를 했더라면 더 좋은 대학에 갔으려나요.


어른이 되어서도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일은 나의 생활과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도서관을 산책하듯 가고 책냄새를 좋아하고 늘 종이와 펜을 들고 기록하기를 좋아했으니까요.


작년에는 우연히 읽게 된 <아무튼 시리즈>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고 <슬픔의 방문> 같은 자전적 에세이를 읽었어요. 작가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혼자만 보는 글이 아닌 누군가와 소통하는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일렁이고 있었습니다. 그때 '슬초브런치 2기 모집글'을 고 등록해볼까? 잠시 망설였어요.  길게 망설일 새 없이  도착한 카톡 하나.


"우리 같이 브런치 해볼래?"

마치 운명처럼 그 말 한마디에 바로 등록을 했습니다. 1년 전 시작하지 않았다면 어쩔 뻔했을까요.


모든 순간들이 엮여서 여기까지 온 나를 보니 이 모든 게 운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브런치를 시작하며 만난 작가님들과 이렇거나 따뜻한 마음을 나누려고 내가 그렇게 살아온 거야.'


무라마키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어느 날  불현듯 소설가가 되고싶다는 생각을 하는 장면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방망이가 공에 맞는 상쾌한 소리가 진구 구장에 울려 퍼졌습니다. 나는 그때 아무 맥락도 없이, 아무런 근거도 없이 문득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지 모른다고.

그날 오후에 내 신상에 일어났습니다. 그 일을 경계로 내 인생의 양상이 확 바뀐 것입니다.

시합이 끝나자 나는 전차를 타고 신주쿠의 기노쿠니야 서점에 가서 원고지와 만년필을 샀습니다.


그 어떤 순간도 쓸데없는 순간들이 없어 보입니다. 브런치로 오지 않았다면 그 어디에서 각자의 소중한 우주를 품은 작가님들을 만날 수 있었을까요. 브런치가 저에게 준 첫 번째 선물입니다.


이곳에 오게 한 결정적인 역할을 한 나의 친구, 나의 천사에게 이 글을 빌어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제 인생은 브런치를 쓰기 전과 후로 나뉩니다. 물론 제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바뀐 건 없습니다. 글쓰기로 팔자도 못 고쳤고요. 그럼에도 제 인생은 참으로 다른 모습입니다.

1년 전과 달라진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훨씬 많습니다. 그 보석 같은 이야기가 제 안에 있습니다.


저는 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틈틈이 쓰고 읽습니다.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니고 어디서 돈을 주는 것도 아닙니다만 그래도 글을 씁니다. 글을 쓰는 것은 참으로 어렵지만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가다 보면 길이 보이거든요. (가끔 길을 잃기도 하지만 뭐 어떻습니까.) 그리고 글 한편이 뚝딱 완성됩니다.


저는 쓰는 작가인 동시에 읽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하루라도 읽지 않으면 심심하고 허전해서 조금이라도 읽고 잠이 드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브런치 작가님들과 함께 책을 읽고 나누며 심도 있게 글을 읽고 전체를 바라보는 눈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이지만 저는 덕분에 깊어지고 넓어지고 있습니다. 조금씩 성장하고 깊어지면 제가 쓰고 짓는 글에도 묻어나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브런치 세계에서만 저를 작가라고 불러주지만 글 쓰는 사람은 작가가 맞습니다. 作家는 예술이나 문학의 창작 활동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라고 사전에 쓰여 있지만 한자를 들여다보면 집을 짓는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한자에 대해 전문가도 아니고 잘 모르지만 제 나름의 의미를 부여해 봅니다.


집 지을 때 집의 뼈대부터 세워 하나씩 완성해 가듯이 글도 나만의 틀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나하나 엮어서 방을 만들고 집을 완성해 나갑니다. 글감을 생각하고 이야기로 풀어내어 한 편의 글이 만들어집니다. 글을 한 편 쓰고 나면 숨 죽이고 움직이던 손을 내려놓고는 긴 숨을 내어놓습니다. 한 편 한 편 나의 이야기를 방마다 넣어놓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최근 아버지의 글을 짤막하게 연재하면서 글을 쓰길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브런치를 하지 않았다면 아버지 글을 관심 있게 보았을까 싶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이 그냥 써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아버지 글이 더욱 소중하게 여겨졌습니다.


나의 가족,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 어쩌면 우리는 서로 제대로 알지 못한 채로 가족이라는 말로 퉁치는 건 아닌가 싶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의 생일부터 취향, 그들의 작품세계, 그들이 하는 이야기와 생각들에 그렇게 관심을 쏟으면서 정작 나는 나의 부모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했습니다.


아버지의 글을 읽지 않았다면 아버지의 어린 시절 절절했던 그리움의 대상, 세상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시선, 가족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제대로 알 수 없었겠지요. 모르고 지나갈 뻔한 소중한 보물을 또 하나 찾을 수 있어서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예전엔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나만 간직하고픈 이야기를 이제는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사람들을 맞이합니다. 부족하면 어떤가요. 누추하면 어떤가요. 차린 건 없지만 따뜻한 차 한잔 내어 놓고 부족한 이야기는 또 채워가면 되는 거 아닌가요. 저의 집은 아직 다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저의 집은 더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쉬어가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봅니다.


어떤가요. 제 삶이 달라져있다는 게 느껴지시나요?

저는 다시 태어나도 제 삶의 운명 같았던 브런치를, 글쓰기를 선택하겠습니다. 해보니 너무 좋다는 것을, 너무 맛있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입니다.


저와 브런치 하시겠어요?



#덧붙이는 글

나의 소중한 작가님들을 만나고 오는 길에 마음이 꽉 차오르니 넘치는 마음이 글로 써졌습니다. 운명처럼 다가온 그대들을 사랑합니다.


나의 존경하는 이은경 선생님께 감사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조심스레 전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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