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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손 대신 아빠 손

흘러내리는 바지춤에 머문 당신 손

by 빛방울

"아이고, 이런. 바지가 흘러내리네."


아부지는 반짇고리가 어딨나 찾으셨다. 고무줄을 낄 도구를 찾지 못해서 엄마의 실핀에도 매달아 봐도 잘 되지 않는다. 옷핀을 찾아보았지만 그 흔한 옷핀의 'ㅇ'도 보이지 않는다. 서랍마다 열어서 꼼꼼히 살펴보지만 어디에도 없다.


반짇고리에 꽂힌 바늘에 섞여서 보이지 않던 귀가 큰 '허리 고무질 바늘'을 찾았다.

"여기 있었네."

긴 고무줄을 고리에 끼워 바지 허리에 줄을 끼우기 시작하셨다. 고개를 숙이고 바지를 잡은 아빠손이 바빠졌다.


"아부지 내가 해드릴게."

아부지 바지를 아부지 내복 바지를 잡아당기니 아빠가 더 잘한다며 도로 바지를 움켜 잡으신다. 내가 친정 온 목적 달성하기 위해 기어이 다시 내 손에 받아 들고 고리를 끼워 넣었다. 주름을 만들고 쭉 펴면 어느새 통로를 이동해 간다. 중간쯤 가니 두툼하게 접힌 연결 부분에 턱 막혔다.


"아버지 차례."

"거 봐라, 내가 잘한다니까."


바지를 넘겨드리고 보이지 않는 바늘이 허리춤에서 움직이는 걸 보고 있자니 뭔가 이상하다. "다 왔어 다 왔어." 하는 아버지 손에 들린 바지를 봤더니 뭔가 이상하다.


"이게 뭐냐. 도로 제자리네. 허허."

넘겨드리면서 아버지는 내가 끼워 넣은 방향의 반대로 와서 제자리가 되고 말았다. 바지 고무줄을 넣으면서 이렇게 웃은 일이 없다.


"하하하, 네가 잘못 쥐어드렸나 봐. 드리면서 방향이 헷갈렸나 봐. 하하."

다시 받아 들고 내가 반바퀴, 아버지가 나머지 반바퀴를 돌렸다. 함께 합심하여 무사히 한 바퀴 돌아 아버지의 느슨했던 내복 바지는 짱짱해졌다.


엄마 자리에서 우리 둘은 낑낑대고 줄을 갈아 끼었다. 또 엄마 생각이 났다. 오빠는 낼 아부지 도시락을 싸서 보낼 준비를 했다. 내가 하려 했는데 나보다 발 빠른 오빠가 엄마에게 미리 배워든 방법으로 두유를 미리 만들고 반찬을 싸고 과일을 미리 깎아 통에 넣는다.


아차, 또 내 손이 늦었다. 그래도 든든하다. 엄마 대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그 자리에서 해낼 수 있음에 감사하다. 엄마가 얼마나 많은 일을 했었는지 새삼 깨닫는다. 몇 명의 손이 움직여야 가능한 엄마의 바쁜 손들이 스치고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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