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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방울 Nov 27. 2023

(상담중)중이 제 머리 못 깎습니다만

당신의 자녀 머리 깎아드려요!(홈스쿨링 편)

"똑똑똑"

"주하 어머님, 안녕하세요?"

"학교 방과 후수업 참관 왔다가 선생님 뵙고 상담 신청을 하고 싶어서요."

"네, 그러셨어요? 지금 시간도 괜찮으니 들어오셔도 됩니다."


1학기 상담은 정해진 기간 동안 대부분의 학부모님들을 만나서 아이에 대한 상담을 나눈다. 오시는 학부모님의 유형에 따라 상담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학기 초에 상담을 하러 오시면 첫 만남이라 그런지 조심스러운 표정과 긴장한 모습으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식 걱정에 눈물부터 보이시는 부모님도 계시고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의 자랑을 하고 가시기도 한다. 경력이 쌓이다 보니 그런 마음이 어떤 건지 잘 알기에 학부모의 마음으로 들어가 따스히 반겨주면 금세 마음이 스르르 풀린다. 사실은 나를 위한 것이다.


나는 불편한 관계를 참기 힘들어한다. 애초 갈등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고 애쓰거나 누군가 불편한 기색이 보이거나 서로 갈등 요소가 생기면 풀어내려고 애를 쓴다. 이것은 장점이 되기도 하고 단점이 되기도 한다. 내 속이 터지는 속병, 울화병 등이 가슴 안에 쌓여 혼자 풀어내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한다.


지금은 좀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이덕에. 마흔이 넘고 보니 좀 더 여유롭게 세상을 바라보게 되고, 나의 성향으로 보면 그동안 갈등을 피했다면 지금은 맞서서 해결해보려고 하거나 할 말을 하며 솔직함으로 개선하려고 애쓴다.


"어머, 미래가 누구 닮아서 예쁜가 했더니 어머님과 정말 닮았어요."

"이렇게 뵙게 되어서 너무 반가워요. 시후 어머님과 이야기 나누고 싶었어요."


내가 먼저 반갑게 맞으면 어머님들은 내 아이의 담임이 어떤 사람일까? 나를 염탐하러 온 자세를 바꾸어 편안한 표정이 된다.

교사와 학부모의 사이가 가끔은 불편하고 어딘지 모르게 어려운 관계가 되기도 하는 경우가 있다. 한 아이를 함께 기르는 동반자, 바른 어른으로 손을 잡고 서 있어야 하는 관계가 아닐까? 1학기에 되도록이면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면 아이를 더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더 넓어지는 경험을 한다. 부모님의 태도를 통해 아이의 지금 모습을 연결 짓기도 하고, 아이의 설명만으로 알 수 없는 여러 상황을 부모님과의 이야기를 통해 머릿속에 그려지는 일들이 많다.


1학기에도 수첩에 빼곡하게 적어서 조심스레 하나씩 물어오셨던 주하 어머님. 자녀를 키우면서 정말로 고민되고 꼭 알고 싶은 것들을 물어보셨기에 서로 이야기도 잘 나누었고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던 거 같다. 그리고 2학기 어머님과의 상담이 다시 시작되었다.


"솔직히 말씀드리고 싶어요."

"네, 그럼요."

뜸 들이는 모습을 보니, 심각한 일인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고개를 내밀어 들을 준비가 됐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은 주하가 홈스클링을 하고 싶어 해요. 죄송해요. 공교육에 계시는 선생님께 이런 고민을 말씀드려도 되나 싶은데, 선생님께는 말씀드려 보고 선생님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었어요."


학부모님이 나에게 홈스쿨링에 대해 물어온 적은 처음이지만 그저 내 소신대로 내 생각을 말씀드렸다.

공교육에 몸을 담고 있지만 공교육만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요즘 홈스쿨링을 하는 가정을 많이 접할 수 있다. 중고등학교도 자퇴하는 점점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건 그만큼 살아가는 모습이 다양해졌다는 뜻이기도 하고 슬프게도 공교육의 부족한 면들의 반대 모습일 수 있다. 살면서 아이를 기르는 것만큼 한 가지의 답을 정답으로 내놓을 수 없다. 아이들마다 맞는 방법으로 커갈 수 있게 어른이 도와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공부란 내가 모르는 것을 찾아보고 알아가는 과정이다. 알고 싶은 것을 찾고 배우는 과정이 진정한 공부일 것이다. 1학년 친구들에게 최대한 세상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게 내 마음이지만 아이들의 특성상 다 알려주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그들마다 자신만의 몫을 해내며 당당하고 멋지게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아직 어리지만 자신의 꿈을 펼치고 있는 아이들도 있다. 아이들에게 뭐든 할 수 있으니 언제나 노력하고 자신감을 가지라고 한다. 꿈꾸면 이룰 수 있다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

글을 쓸 때에는 작가가 된 듯이 쓰고 그림을 그리면 그림 작가가 되었다는 마음으로 그리고, 앞에서 발표를 하면 강사나 선생님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발표하라고 한다. 우리 아이들 중 누군가는 꿈꾸던 모습을 미래에 펼치며 살게 될 거라고 믿는다.  


수업 중에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고 제주에서 활동하는 이수 작가를 소개해 준 적이 있다. 이수 작가가 어린 시절에 쓴 그림책을 읽어주며 그 책이 이수작가가  9살 때 쓴 거라고 소개했고, 아이들에게 너희는 어리지만 지금도 이 친구처럼 무엇이든 원하는 것이라면 다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탐색하고 주위의 것들에 귀를 기울이고 하고 싶은 것을 찾아 나서야 한다고.


그 말을 주하가 받아들여서였을까? 주하에게 영상 속 이수 작가가 홈스쿨링하며 공부하는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엄마와 같이 이수 영상을 보며 아이는 진지하게 홈스쿨링을 하면 어떨지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한다.


"엄마, 나도 홈스쿨링 하고 싶어. 나는 역사가 너무너무 좋은데 관련된 이야기를 선생님이 해주시면 너무 재밌어. 그런데 해주시다가 교과서 공부를 해야 하니까 다 듣지 못해서 속상해. 쉬는 시간에는 내가 읽던 책을 마저 다 읽고 싶은데 시간이 되면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과목을 공부해야 해. 나는 배우고 싶은 게 많은데 학교 다니면 시간이 없어서 그럴 시간이 없잖아."

1학년 아이에게서 나올 수 있는 말일까? 아이는 사뭇 진지한 것 같이 느껴졌다. 주하가 학교에서보다 자신에게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기를 원한다면 그것이 답이 될 수 있다.


삶에서 잘못된 선택은 없다. 내가 부모라면 공교육에 몸 담고 있더라도 고민했을 것이다. 내 아이에게 맞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살다 보니, 특별히 못된 짓을 하는 것 말고는 잘못된 방법은 없다.

인생에 정해놓은 길이란 없다. 길은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니까. 걸어가는 도중 선택의 순간에 나에게 더 나은 선택을 할 뿐이다. 주하가 원하는 방식으로 관심 있는 분야에 푹 빠져서 공부할 수 있게 도와줘도 괜찮을 거 같다는 말을 전했다.


내가 부모라면 무척 고민이 많을 것이다.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도 있을 것이고. 오히려 아이는 잘 해낼 수 있을지 몰라도 홈스쿨링을 통해 놓치는 것이 없는지 부모는 늘 고민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홈스쿨링이 쉽지는 않지만 점점 많아지고 있고 이미 걸어간 분들의 자취를 따라가면서 공부하며 우리 아이만의 프로그램을 마련해 볼 수 있다면 나쁘진 않을 것 같다. 부모가 주도적인 프로그램이 아닌 아이가 세운 학습 계획에 따라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방학 동안 홈스쿨링 연습을 해보는 것도 추천한다. 해보진 않았지만 학교를 다니지 않는 기간동안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연습해보고 할 만하다면 도전해 보는 거다. 그리고 언제나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선택권이 있지 않은가? 다른 삶을 산다고 해서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어쩌면 나의 일이 아니기에 이렇게 말해줄 수 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쉽게 말하는 건 아니지만 선택은 언제나 당사자의 몫이니까.

 

"선생님은 열린 마음으로 들어주실 줄 알았어요. 묻기도 전에 고민되었던 부분들을 이야기해 주셔서 듣는 내내 소름이 자꾸 돋았어요. 감사해요, 선생님!"

"우리 주하가 만약에 한다면 잘할 수 있을까요?"

"네, 저는 우리 주하 너무 잘할 거 같아요.

어머님은 주하가 가고자 하는 길에서 응원해 주시고 필요한 걸 찾아주시면 될 거 같은데요?"

"네, 방학 전까지 고민해 보겠습니다."

"서두르지 마시고, 천천히 다 알아보시고 고민하세요! 어떤 것이든 장단점이 있으니까요. 어떤 것에 더 큰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선택은 달라질 거 같아요. 주하와 어머님이 어떤 선택을 하시든 응원하겠습니다."


공교육 안에서는 편차가 큰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늘 고민하는 부분이 많다. 1학년 친구들은 유치원생처럼 유아기 사고를 가진 아이부터 자신의 일을 스스로 잘 해내는 언니 같은 1학년까지 편차가 굉장히 크다. 주하는 생각이 깊고 스스로 바른 판단을 하고 행동하며 새롭게 알게 되는 분야에 깊게 파고드는 친구이다. 이런 친구들에겐 '우리들은 1학년'처럼 기본적이 생활 습관과 기초 학습 내용은 수박 겉핥기 같은 느낌이라 만족할 수 있는 수업을 하기는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하지만 그 또한 한계가 있다.


주하는 호기심도 많고 알고자 하는 학습의욕이 큰 친구여서 교과 외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할 때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친구이지만 수업 시간 내에서 1학년 교육과정에 들어있는 수업 내용은 어떤 친구들에게는 목마름을 줄 수 있다. 그렇다고 최상위 친구들에게 수준을 맞출 수는 어려운 노릇이다. 학교의 기능이 공부에만 국한되지 않기에 그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해 줄 수 있는 역할을 충실히 해가며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공간, 교사로서의 역할을 잘 해내고 싶다.


학교를 다니는 친구들도 학교 밖의 친구들도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홈스쿨링을 선택한 아이들에게 홈스쿨링에서 얻을 수 없는 기회를 방과 후 교육이나 체험활동에 선택적 참여가 가능하다면 그 또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거 같다. 공교육 교사로서 무조건 다른 시각으로 홈스쿨링을 반대하기보다 우리나라의 아이들이 최대한 많은 기회들을 얻으며 충분히 교육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균형을 맞추며 잘 해내고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제도권 안에서든 제도권 밖에서든 우리 아이들의 교육이 잘 자라나는 아이로 부족함 없이 배울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길 바란다.


주하 어머님의 고민상담으로 홈스쿨링에 대해 좁은 소견을 정리해 볼 수 있었다. 내가 한 이야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고 다 맞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내 이야기가 불편할 수도 있다. 지금의 내 생각은 이러하지만 홈스쿨링에 대해 더 알아보고 공부하면서 내 기존의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언제나 열린 자세로 수용하며 공부해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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