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의 추적기를 켜고 어디매 오시나 실시간 보여주는 앱을 켠다. 말하자면 대국민 어린이 꿈지킴이 조작단의 앱. 아이들은 신기한 표정으로 실시간위성에서 산타의 위치를 확인하고 얼른 잠자리에 든다.
벌써 68년째 이어오는 NORAD의 산타 추적 라이브 방송. 오히려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산타에 진심인 듯 하다.
1955년 미국 콜로라도의 한 백화점이 '산타에게 전화를 걸어보라'는 광고를 냈는데 그 전화번호가 대륙대공방위사령부의 전화번호로 잘못된 번호였단다. 군으로 전화가 빗발쳤고, 그때부터 당시 아이들의 동심을 깨고 싶지 않았던 해리슈프대령의 산타 추적은 시작되었다고 한다.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에서 매년 실시간 인공위성을 통해 루돌프 사슴코의 적외선을 감지해 위치를 추적한다고 하니 놀랍지 않을 수 없다. (NORAD에서 산타에 대해 너무나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궁금한 것을 진지하고도 믿음직하게 알려주니 나같은 어른도 산타를 도로 믿고 싶어질 정도다.)
천하의 북미 영공을 방어하는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가 아이들의 산타를 지키기 위한 임무까지 수행한다고 하니, 내 아이들의 마음을 깨고 싶지 않는 어른들의 마음이 이렇게 이어져 온다는 것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YTN 뉴스 사진 캡쳐 - 아이들에게 산타 추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NORAD
집집마다 엄마, 아빠가 들려주는 산타이야기가 다르니 아이는 산타가 올 시기가 되면 언제나 궁금한 점을 쏟아낸다.
"엄마, K가 그러는데 산타가 아빠래. 산타가 없다고 나한테 그랬어. 정말이야?"
"글쎄. 그럴지도 몰라. K는 이제 산타를 믿지 못하는구나. 그럼 그 집에는 산타가 못오겠다."
엄마가 어렸을 때에도 산타가 진짜 없는 거 아니야? 생각했는데 그날 이후로 엄마는 산타 선물을 받지 못해서 얼마나 슬펐는지 모른다고 설명도 곁들이면서 말이다.
매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아이의 마음을 몰래 빼내려고 이런 저런 작전을 짠다. 산타에게 받고 싶은 선물이 뭘까? 늘 맞추진 못했지만 평소에는 엄마 아빠가 사줄리 없는 것으로 고른다.
산타를 철석같이 믿는 아이들에게 산타가 되어주는 것은 첩보가 되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가끔은 '언제까지 이 짓을 하지?', '올해는 어떤 선물을 줄까?' 이런 저런 고민이 뒤따른다.
눈치 작전을 하기도 하고 크리스마스 전날엔 얼른 재우고 내가 잠들지 않게 카페인을 보충해둔다. 아이들이 잠든 사이, 소리나지 않게 깨어나지 않게 무거운 뒤꿈치를 들고 발끝으로, 고양이 저리가라 할 정도로 스윽 우아하게. 남편과 눈짓으로 암호를 주고받으며 은밀해야 한다. 엄마는 이제 산타엔 관심 없는 척 '어, 벌써 크리스마스야?' 별일 아니라는 듯 툭하고 말을 던져놓기도 한다.
아이들이 커 갈수록 세심한 계획과 치밀한 계획은 필수. 트렁크 깊숙하게 숨겨 두었던 선물을 꺼내오는 일. 허술한 듯 아이들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미리 넣어두는 일. 절대 잊으면 안 되는 일. 산타 편지의 글씨체도 그림도 내가 아닌 듯 누군가에게 부탁들 하기도 하고,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프린터의 글씨체를 빌려 쓰기도 한다.
사실 올해에는 딸에게 산타의 옷을 벗고 나의 정체를 드러내려 했다. 그동안의 산타 추억을 보여주며 엄마랑 아빠가 아이들의 산타였다고 밝히려고 했다. 오히려 산타의 정체를 의심하고 산타를 믿는 척하기까지 내버려 두지 않으려 했던 것이 나의 계획이었다. 눈치채기 전에 아름다운 고백을 하려고 했다.
2019년 산타의 간을 보기 시작하는 아이들 - '산타 할부지 제가 할부질 믿는지 맞춰보세유!'
나는 이제 산타를 향한 딸아이의 마음을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교실에 있는 8살짜리 아이들도 믿지 않으니 12살 봄이는 어떨까? 아마도 이젠 산타를 믿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과 그래도 지금까지 오래오래 지켜줬다고 위로하며 이제 그만하자고 결심했다. 산타와의 이별을 선언하기로! 새우 눈을 뜨고 들여다보지만 당최 속을 알 수 없다. 하지만 이제 커질 대로 커진 아이에게 산타와의 이별을 고해야 한다. 아이가 어렸을 때만큼 즐거움도 덜하다. 아이들이 바뀌니 놀이의 형태를 바꿔야겠지? 초록이는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을 때 지속적인 의심을 보였기에 그 해에는 아들에게 산타가 찾아오지 않았다. 아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선물을 받고 좋아하는 애꿎은 봄이를 노려보았다. 그 이후로 동생만 산타의 선물을 받았고, 아들은 엄마 아빠의 선물을 받았다.
"아, 엄마 사실은 나도 산타를 믿어." 했다가 동생에게,
"봄아, 이거 진짜 산타는 없어. 산타는 바로 엄마, 아빠야."
진실을 폭로하는 초록이는 엄마, 아빠의 입막음과 납치로 끌려 나오곤 했다. 최대의 방해꾼. 그렇게 믿지 않는 초록이에게도 우리는 여전히 우리 입으로 밝히지 않았다.
어느 날은 밤에 잠도 안 자고 산타를 보겠다는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연대기'를 보여주며 연기처럼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산타에 대한 의심을 잠재우기도 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행복했다. 아이들만을 위한 크리스마스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크리스마스가 되면 이런 이벤트가 행복하고 즐거웠던 것 같다. 12월 내내 선물을 알아내고 고르는 일부터, 어떤 방법으로 산타 선물을 전해줄지에 대한 행복한 고민까지. 아이들이 선물을 기다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산타의 마음도. 부시시 잠 깨서 산타의 선물을 찾는 아이들의 마음은 기대에 부풀어 금방이라고 행복 주머니가 '펑' 소리를 내며 불꽃이 새어 나올 것 같았다. 선물을 받아 들고 온 방을 뛰어다니던 아이들의 행복한 표정도. 그 모든 것들은 나를 위한 또 다른 선물이 되어 주었다. 아이들 마음속에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행복만큼 내게 돌아와 한아름 받아 든 선물 같았다.
이별은 언제나 서툴다.
크리스이브 전날 밤, 너는 바쁘게 산타가 먹을 간식을 찾았고 더 늦기 전에 잠을 자야 한다고 침대로 들어갔다. 그런 너에게 이별을 결심했던 산타는 그 마음을 무너트릴 수밖에 없었다. 네가 믿는 척을 하든. 뭐가 중요하겠니. 아직은 산타놀이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았다는 안도감이 마음에 남았던 걸 보면 그런 결심은 나를 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타를 믿게 하려 그 엄청난 일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쩌면 온전히 아이만을 위한 작전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스친다.
'너와 헤어지기 싫다.'
산타는 아이들 곁에 언제나 산타로 남아있고 싶었던 거 같다. 올해도 산타 엄마인 나는 딸과의 이별에 실패하고 말았다. 부랴부랴 딸을 위한 선물을 포장하기 위해 새벽이 분주하다. 밖에는 하얀 크리스마스를 위한 흰 눈이 날리고 산타는 작은 기척에 잠이 깰까 봐 살금 거 린다. 분주한 산타의 마음은 간질간질 다시 행복해지기 시작했다.
딸에게 익숙할 지도 모를 빈 상자를 선물 상자로 둔갑시키고, 선물을 넣고 최대한 나의 글씨체로 정체가 탄로 나지 않도록 위장술을 펼친다.
딸냄이는 일어나자마자 "내 선물!"을 외치며 여기저기 선물을 찾으러 나선다. 여전히 이별을 고하지 못한 채 오늘 나는 산타로 산다. 이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여전히 간직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