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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kim Nov 15. 2023

미국 소도시, 차 한잔의 특별함  

날마다 멋진 하루 만드는 법

한국만큼 놀거리, 볼거리가 없는 미국 생활은 참 심심하다. 관광지가 있는 대도시가 아닌 경우에는 더더욱 심심하다. 그래서 나만의 특별한 즐거움을 찾는 일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온종일 좋아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거야.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고, 맛있는 것을 먹고, 그러다 아무거나 집히는 책을 읽고, 그렇게 여유롭게 살면 매일매일이 행복할 텐데” 좋아하는 일을 하루종일 하면 한국에 살든 미국에 살든 하루하루가 멋지지 않을까? 이런 생각으로 나는 올 한 해 멋지게 살기 위한 나만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일명 최고의 한해 만들기. 

좋아하는 일을 지속하기 위해 독서모임을 만들고, 글쓰기를 시작하고 그렇게 하나 둘 시작하다 보니 어느새 나만의 루틴이 만들어졌다. 새벽에 일어나 아침 낭독을 하고, 일주일에 한 번 친구들과 글을 쓰고, 평일 저녁에는 영어낭독을 한다. 금요일에는 희곡 읽기 모임을 하고, 토요일 낮에는 독일어 책을 읽는다. 한 달에 한 번은 가벼운 책 읽기 모임으로 말랑말랑한 소설을 읽는다. 최근 브런치 작가가 되면서 내 일상은 더더욱 내가 그토록 원했던 읽고 쓰는 삶이 되었다. 


여기서 해피엔딩이면 좋겠지만 인생은 늘 그렇지 않은 법. 나는 좋아하는 일만 하면 행복할 줄 알았다. 매일매일이 너무 기쁘고 보람되고 행복한 줄 알았다. 


최근, 읽어야 할 책이 늘어나고, 써야 할 글이 늘어나면서부터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나고 좋아하는 일만 하면 행복한 것 아니었어? 누가 돈 주고 그러는 것도 아니고 강요하는 것도 아닌데 왜 나는 이렇게 힘이 들지?’라는 생각이 스쳤다. 분명 행복하려고 좋아하는 일을 시작한 건데 버겁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분명 내가 꿈꾼 멋진 하루를 살고 있는데 하나도 멋지지가 않았다. 


이런 고민을 가지고 있던 차에 기분 전환 겸 미국 소도시 당일치기 여행을 했다. 가는 길에 나의 고민을 남편에게 털어놓았다. 남편은 ‘그럼 네가 생각한 멋진 하루 말고, 멋진 하루라고 느낀 순간을 떠올려봐’라고 했다.


우리는 낯선 소도시에 도착해서 맛있는 것을 먹고 산책을 했다. 나는 커피를 워낙 좋아해 보통 어느 도시를 가던지 로컬 커피집을 들른다. 동네를 한 바퀴 돌며 커피집을 찾는데 왠지 커피집보다는 작지만 아담한 찻집이 마음에 끌렸다. 처음으로 커피집 대신 차를 파는 찻집에 들어갔다. 남편은 애프터눈 티세트, 나는 3가지 맛을 맛볼 수 있는 티 컬렉션을 골랐다. 


잠시 후 거대한 티팟을 든 주인아주머니가 차와 어울리는 스콘, 수프, 쿠키 등 예쁜 디저트를 들고 나왔다. 주인아주머니는 차와 어울리는 디저트를 설명을 해주며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준비해 주셨다. 

"내가 셰프이자 주인이라 조금 시간이 걸리죠?" 라면서 나의 폭풍 질문에 친절히 대답해 주셨다. 차와 디저트가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특히 스콘은 내가 먹어본 스콘 중에 단연 최고였다. 향긋한 차와 핸드메이드 스콘이 입 속에서 춤을 췄다. 그렇게 잠시 조용한 찻집에서 남편과 마주 앉아 차를 즐기고 있으니 이보다 멋진 순간이 없었다. 나는 이 순간을 고즈넉이 즐겼다. 


왜 나는 이 순간이 이토록 멋졌을까?  

예쁜 찻집의 주인이 너무나 친절해서? 가게 분위기가 좋아서? 차와 디저트가 너무 맛있어서? 가격이 너무 착해서? 모든 조건이 다 중요했지만 아마도 이 모든 것이 내가 예상치 못한 특별함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매일의 일상이지만 내가 생각지 못한 예외성. 특별함. 그 순간을 통해 멋진 하루가 되는 게 아닐까?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일이지만 일상이 되는 순간, 멋지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은 그 찰나의 예외성, 특수성이 없어서 일지도 모른다. 아무 날도 아니지만 남편이 사 오는 꽃 한 송이가 멋진 하루를 만들고, 우연히 마주친 이웃의 친절함이 멋진 하루를 만든다. 


이날 나는 우연히 들른 소박한 찻집의 주인에게 멋진 하루를 선사받았다. 그러고 보면 멋진 하루란 서로를 생각하는 작은 마음과 작은 선의로 이뤄진다는 생각도 든다.  


집에 돌아온 후 나는 똑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다. 여전히 새벽에 일어나기 힘들지만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더듬더듬 낭독을 하고, 아침을 먹고 글을 쓴다. 한 가지 달라진 점은 오늘은 어떤 멋진 하루의 특수성을 만들까 하는 점이다. 


하루는 정성스럽게 차를 마셨고, 하루는 남편이랑 최근 새로 생겨난 커피집을 가보았다. 하루는 우울한 친구를 위해 친구의 소울푸드를 함께 먹으러 갔다. 북클럽 회원들에게 보여줄 영화도 찾았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똑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이제는 어떻게 멋진 하루를 보내야 할지 어떻게 좋아하는 일을 오래도록 오래 할 수 있을지 조금은 방법을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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