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옷 정리하던 날
결혼을 얼마 앞두고 바뀐 점이 있다면 집이 두 개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하나는 본가, 하나는 신혼집이라고 부른다. 본가에 다녀올 일이 생겼다. 겨울옷을 챙겨 와야 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남은 옷가지들을 모두 꺼내 두었으니 가져가기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나는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집을 향했다.
한 평생을 보낸 집이 불현듯 낯설게 느껴졌다. 눈 감고도 할 수 있는 도어록 앞에 잠깐 동안 망설였다. 도어록 비밀번호가 뭐였더라, 기억 창고를 뒤적이는 내 자신이 어색했다. 그 찰나의 망설임이 어찌나 낯설던지 한동안 마음 한편이 시렸다.
엄마와 동생, 아빠가 손님처럼 환히 나를 맞았다. 물론 남 서방(?)도 함께였다. 거실에는 내 옷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장롱 어딘가에 켜켜이 쌓여 있었을 옷가지들, 내가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잊혔을 오래된 옷가지들이 수북했다.
옷을 집을 때마다 묵은 먼지가 폴폴 날렸다. 추억도 함께 날렸다. 취업 기념으로 엄마가 사준 옷부터 스페인 여행에서 사들고 온 옷, 동생과 돈을 모아 큰 맘먹고 산 옷까지...
산처럼 쌓인 옷 중에서 가져갈 옷과 버릴 옷을 정리하는 동안 수많은 추억을 오갔다. 버릴 옷은 하나도 없었다. 옷 하나하나에는 그날의 공기와 추억이 서려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도 그 맘을 아는지 여느 때 같으면 분주했을 손놀림이 제법 느릿했다.
지나온 시간만큼 옷에는 보풀이 심하게 폈다. 소맷단은 바랬으며 그 언젠가 묻었을 얼룩은 여전했다. 하지만 옷으로써 기능은 다했어도 추억만은 오롯했다. 그래도 어쩌랴. 추억을 모두 품고 가기엔 캐리어가 너무 작은 것을. 못 입을 옷은 모두 정리하기로 하고 남은 옷들을 캐리어에 차곡차곡 넣었다.
옷이 얼추 정리되자 엄마는 곰돌이 인형을 건넸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빠가 사준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수십 년의 시간이 흘렀건만 가끔씩 안고 자고 보듬어줬던 덕분인지 상한 데 없이 괜찮았다.
"이건 니가 아끼는 인형 같아서 안 버리고 놔뒀어. 가져갈 거 같아서..."
29살 다 큰 처자에게 곰돌이 인형이라니, 순간 웃음이 났다. 됐어, 하려는데 엄마 눈에 비친 나는 작았다. 29살 어엿한 아가씨가 아닌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곤 헤헤 웃고 있는 12살의 초등학생이 보였다.
시간이 흘러 결혼을 앞뒀어도 엄마 눈에 비친 나는 곰돌이 인형을 좋아하는 12살 어린아이였던 걸까. 묵묵히 곰돌이 인형을 받아 캐리어에 넣었다. 그것도 나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가끔은 이렇게 과거의 언젠가에 멈추고 싶다.
곰돌이 인형이 최고의 선물이었던 어린 날의 나에게. 곰돌이 인형을 안겨주며 뿌듯해하던 엄마의 그 어느 날에.
*** 남은 옷을 싸서 신혼집으로 오던 날, 엄마는 후련하다고 했다. 나도 그런 줄만 알았다. 그런데 그다음 날 동생이 카톡을 보내왔다. '언니 엄마한테 잘해. 언니 옷 정리하면서 엄마 많이 울었어. 그동안 잘해주지 못한 거 같아서 미안하다고'
집에서 가져온 겨울옷을 신혼집에 걸어두면서 동생과 나눠 쓰지 않아도 되는 널찍한 옷장을 앞에 두고도 눈물이 났다. 오랫동안 꿈꿨던 나만의 옷장을 가졌건만 내 마음은 오히려 줄어든 느낌이랄까. 반질거리는 방바닥이 유난히 차갑고 버석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