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ta o Plomo
「나르코스」 시즌 1과 2의 내용만을 다루고 있습니다. 줄거리 위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마술적 사실주의는 세밀하게 묘사된 사실적 배경에 믿기 힘든 일이 침범하는 것이다. 마술적 사실주의가 콜롬비아에서 탄생한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가 “콜롬비아”라는 나라의 이름을 들으면, 떠올리는 것이 크게 3가지가 있다. 콜롬비아 커피, 국가대표 축구팀, 그리고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다. 거의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지만, 이런 이미지들 때문에, 한 번쯤은 여행하고 싶은 나라라는 이미지가 있다. 그러나 콜롬비아는 여행경보제도에서 3단계인 철수 권고 조치를 받은 국가다. 우리에게 알려진 이미지와는 달리, 콜롬비아는 사실 여행객, 혹은 사는 사람에게도 위험한 나라다. 오늘은 현재의 콜롬비아가 왜 위험한 국가가 됐는지를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나르코스」에 나오는 콜롬비아의 모습을 통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1970~80년대는 세계적으로 격동의 시기였다. 한국에는 유신정권이 들어섰고, 유럽에는 68 혁명 이후 대대적인 변화가 있었으며, 미국은 냉전 중에 있었다. 콜롬비아의 상황도 여의 친 않았다. 19세기 말부터 1960년대까지를 “콜롬비아의 폭력 시대”라고 부르는데, 60년대 초반에 콜롬비아 정부가 미국의 지원 아래 농촌 지역에서 활동하던 공산주의 단체들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이후 콜롬비아 정부와 게릴라 세력들 간의 내전으로 60만 명 이상의 사상자와 400만 명 이상의 피난민이 발생할 정도로 끔찍한 상황이었다. 누군가가 위기는 기회라고 했는가? 이런 끔찍한 상황 속에서도 엄청난 돈을 벌어 경제지 포브스에 세계 7위 부자로 추정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파블로 에스코바르다.
파블로 에스코바르는 메데인이라는 정말 가난한 동네에서 태어난 사람이다. 하지만 성적은 우수해서 라틴아메리카 자치 대학에 갈 정도였지만, 그가 선택한 것은 학업이 아닌 바로 마약 사업이었다. 수완이 정말 좋아서 22세에 이미 메데인 일대를 주름잡은 마약왕이었다고 한다. 이후 76년에 메데인 지역에 있는 마약 조직을 하나로 묶어 메데인 카르텔을 결성했고, 미국의 마피아, 혹은 갱단과 연합하여 돈을 벌었다. 그가 마약으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Plata o Plomo”라는 말에 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시즌 1 1화를 보자. 밀매하려다 콜롬비아의 수사국 DEA에 발이 잡힌 에스코바르는, 그들에게 밀매하는 물건이 적발된다. 하지만 그는 매우 여유롭게 그들의 이름, 가족 관계 등을 천천히 나열한다. 그는 “언젠가 나는 콜롬비아의 대통령이 될 몸이다. 나는 거래를 업으로 삼고 있다”라고 말한 다음 “Plata o Plomo”라고 말한다. 직역하면, ‘은 아니면 납’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다른 말로는 ‘돈 받아라, 아니면 죽는다’다. 이것이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능력 아닌 능력이었고, 이를 통해 그는 메데인 지역의 거의 모든 경찰과 군인을 매수한다.
그는 지역 경찰뿐만 아니라, 정치인들도 돈으로 매수해서 실제로 콜롬비아의 국회의원이 됐다. 물론 그가 돈으로 매수만 한 것은 아니다. 당시 낙후된 지역에 주민들을 위해 무료 급식소도 열고, 학교와 병원을 건설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극심하게 벌어진 빈부격차를 메우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없었고, 이것이 민심을 잡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국회에 들어간 첫날, 콜롬비아의 법무부 장관이 그의 모든 범죄 행각을 폭로했고, 그는 국회의원직에서 쫓겨난다. 이에 대한 분노였을까, 마약 사업만을 하던 그는 정말 차원이 다른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한다.
한 나라의 대통령 후보자,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 정치인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미국과 콜롬비아 정부의 눈을 피해 도망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파블로 에스코바르는 그런 인간이었다. 그는 사람을 매수해 자신을 욕한 법무부 장관을 죽이고, 당시 콜롬비아의 공산 단체 M-19를 매수해 대법원에 불을 지른다. 불을 지른 이유는, 파블로 에스코바르와 관련된 60만 페이지 가량의 증거물을 없애기 위함이었다. 이 장면에서 드라마 속 내레이션은 이렇게 말한다. “미국에선 마피아가 법정에서 증언할 수 없도록 증인을 사라지게 하지만, 콜롬비아의 에스코바르는 법정 자체를 사라지게 했다.” 그를 군대가 나서서 잡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미 그는 엄청난 돈으로 많은 사람을 매수했을뿐더러, 그가 소유한 별장의 수가 너무 많아서, 대체 어디에 그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경찰이 움직이려고 하면, 이미 그는 그곳에 없다. 이런 그가 잡히기 싫어서 용을 쓴 이유는 바로 “범죄인 인도 조약” 때문이다.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마약 판매 사업은 단순히 콜롬비아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미국의 마약 범죄는 이미 심각한 수준이었으며, 드라마에도 나오듯, 레이건은 냉전을 끝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이것이 왜 파블로가 그토록 잡히기 싫어하는 이유였느냐? 만일 그가 콜롬비아의 감옥에 들어간다면, 이전처럼 돈으로 사람을 매수해 호의호식하면서 살 수 있다. 하지만 미국에 간다면? 호의호식은 꿈도 못 꾸고, 시퍼런 창살을 보며 자신의 죽을 날만 기다려야 한다.
미국에는 가기 싫었던 파블로가 저지르는 말도 안 되는 행동들로 인해, 결국 콜롬비아 정부는 국내 안정을 위해 범죄인 인도 조약을 폐지한다는 최악의 결정을 하게 된다. 파블로 에스코바르는, 메데인 외곽에 자신이 있다고 말하고, 순순히 잡혀 감옥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곳은 일반적인 감옥은 아니었다. 시즌1 9화의 제목처럼 “5성급 감옥”이었다. 면적만 무려 40만 평이었으며, 5성급 감옥에 없는 건 없었고, 안에 속한 사람들 모두 메데인 카르텔에 속한 사람들이었다. 한 마디로 콜롬비아 정부는 그가 훨씬 더 안전하게 마약 사업을 확장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 것이다.
지금까지 나열한 얘기만을 보면, “그럼 대체 파블로 에스코바르는 어떻게 잡혔냐?”는 의문이 당연히 들 것이다. 그가 죽음에 이른 건, 자신의 부하들을 죽인 것에서 시작한다. 호화로운 감옥에 있으면서 사업을 이어 가던 그는, 자신의 부하 2명이 마약 250KG을 압수당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데 한 농부가 딱 그만큼의 가격의 돈을 찾았다는 말을 한다. 과거 파블로는 자신의 돈이 너무 많아서 엄청나게 많은 돈을 땅에 묻었다. 부하들은 이를 얘기하며, 자신들은 죄가 없다고 말한다. 그들을 파블로가 세금을 얼마 올리든 돈을 내고 있었고, 그와 함께 오랜 기간 일하기도 했다. 그러나 파블로는 결국 그들을 죽였고, 이때부터 그의 입지는 위태로워진다.
DEA도 그를 잡기 위해 목숨을 걸고 노력했다. 자신들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그들은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수족들을 하나둘 천천히 처리해나갔다. 정보를 얻기 위해 그들 역시 더러워졌다. 더러워지지 않으면, 죽는 것이 콜롬비아의 법칙이었다. 파블로 에스코바르와 관련된 정보를 주는 다른 마약 밀매자의 범죄를 눈감아 주거나, 그들에게 돈을 주며 정보를 얻었으니까. 자신들의 수족이 하나둘 사라지는 것에 위협을 느낀 파블로 에스코바르는, 자신의 가족들을 독일로 망명 보낸다. 왜냐하면, 2차 대전 이후 독일은 외국인을 거의 무조건 받아주는 국가가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과 콜롬비아 당국의 요청으로 인해 가족들의 입국은 거부된다. 이때 파블로 에스코바르는 작중 가장 미친 짓을 벌인다.
파블로 에스코바르는 100KG 이상이 넘는 C-4(F-16 탑재 포탄과 맞먹는 위력)를 대통령궁 근처에서 터트린다. 이로 인해 수십 명이 죽었고, 수십 명이 다쳤는데 상당수가 아이들이었다. 이전까지 콜롬비아 대중 및 가난한 사람들에게 파블로는, 메데인 지역 및 콜롬비아의 낙후된 지역을 위해 돈을 투자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그는 이젠 어디에도 숨을 수 없는 사람이 된다.
시즌 2 마지막화에 묘사되는 파블로는, 노래 “아이야(창모)”의 가사처럼 현찰로 추위를 녹이던 그와 완전 다른 사람이 됐다. 머리와 수염은 관리되지 않았고, 자신의 손으로 무언갈 만들어 먹었다. 그는 늘 조심하던 사람이었지만, 마지막에 자신의 부인과 전화를 하는 바람에 DEA에게 위치가 발각된다. 그는 지붕 위를 뛰어다니며 도망치다가 결국, 총에 맞고 죽게 된다. 그가 죽는 장면에 작중 내레이션을 담당하는 머피 형사의 대사가 꽤 인상적이다. “몇 년 동안 머릿속에서 그려본 그 개자식은 괴물 그 자체였는데, 참 우습더군. 직접 본 순간 그야말로 실망스러웠다. 그저 한 인간이었다.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에 맨발의 뚱보라니.”
「나르코스」 시즌 1과 2는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 그의 죽음으로 드라마는 끝났지만, 콜롬비아의 끔찍한 상황이 끝난 건 아니다. 그가 저지른 범죄로 인해 여전히 고통받는 피해자들이 존재하고, 범죄를 저질러도 호화롭게 사는 그의 모습을 보고, 똑같이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도 늘어났다. 파블로 에스코바르만 이런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니다. 국가를 위해 일하고자 다짐한 경찰, 군인, 정치인은 돈을 받고 그를 도와줬다. 잠깐 눈 감고 그의 말이 옳다고 말하면, 수십억 원을 현찰로 받았다. 그래서 드라마를 보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최악의 시대에 최악의 사람이 태어나, 최악을 가장 잘 이용했다’였다.
현재 콜롬비아는 과거처럼 엄청 위험한 국가는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콜롬비아와 여타 중남미 국가에는 마약 카르텔, 혹은 무장 단체들이 존재하고, 그들이 중남미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마약은 유통할 수만 있다면 엄청난 부를 그들에게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혹은, 빈부격차가 극심한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범죄가 최선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나르코스」는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Plata o Plomo” 당신이라면 과연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여담으로, 배우들의 연기가 굉장히 일품이라 드라마를 보고 스페인어를 배우게 됐다. 언젠가 세계 여행을 갈 기회가 된다면, 남미에 가서 영어가 아닌 스페인어만을 사용하며 생활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경 음악인 "Tuyo"라는 노래도 매우 좋다. 가사가 딱 파블로 에스코바르를 묘사하는 것 같아서 말이다.
내용 출처 :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NARCOS」
나무위키, "파블로 에스코바르" 파블로 에스코바르 - 나무위키 (namu.wiki)
네이버 콜롬비아의 역사 콜롬비아의 역사 (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