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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락 Jan 20. 2022

「파워 오브 도그」를 봤다.
얘기할 것이 많았다.

너무 재밌었습니다. 꼭 봐주세요!


Deliver my soul from the sword; 


my darling from the power of the dog




영화가 재밌는가, 재미없는가를 나누는 건, 끝난 다음 누군가와 영화에 관해 담소를 나누고 싶은가, 아닌 가로 나뉜다고 생각한다(물론 너무 못 만든 경우에도 누군가와 얘기하고 싶어진다). 「파워 오브 도그」는 명백히 전자에 해당하는 영화였다. 친구와 「파워 오브 도그」를 본 다음에 약 1시간 정도 대화를 나누면서 느낀 건, 이 영화는 서스펜스가 가득한 영화라는 것이었다. 

(친구의 성을 따, 친구의 의견은 '박'이라 적어 두겠다)




박 : 이 영화의 주제는 사랑하느냐, 사랑하지 않느냐에 관한 것이다.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목은 로즈의 식당에서 필이 브롱코가 늙은 말을 타고 의자를 넘은 비법이 'Amour'라고 답하는 장면이다. 

'사랑'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영화의 장면들을 살펴보자. 필은 조지(동생)를 많이 사랑한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도 그는 동생에게 "부모님에게 목장을 물려받은 지 몇 년이나 됐게?"라고 동생에게 질문하며 과거의 추억을 공유하고 싶어 한다. 동생이 방에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자 기다리는 장면도 나오고, 그때 또한 필은 옛날 얘기를 꺼낸다. 하지만 조지는 질문과, 대화의 맥락에서 벗어난 답변을 하며 자리를 회피한다. 

잠시 영화와 관련 있는 신화 얘기를 하나 꺼내보고 싶다. 모두가 피그말리온 신화를 알 것이다. 조각가 키프로스가 문란한 여성들과 거리를 두고 조각하는 일에 몰두하다 이상적인 여성 조각을 만들고 자신이 만든 조각상을 사랑하게 됐고, 이를 본 아프로디테는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줬다는 얘기다. 이 얘기에서 조각상은 조각상으로 머물러있는 것이 아니라 진짜 여자가 된다. 그것을 통해 키프로스의 사랑은 진짜가 된다는 점이다. 

영화에서 필은 전통적인 가치관을 고수하며, 자연을 몸으로 느끼려고 하는 사람이다. 로즈의 술집 장면으로 돌아가자. 로즈의 술집에는 두 가지 가짜가 있다. 하나는 피터가 만든 가짜 꽃이고, 하나는 자동 피아노다. 필은 술집에 들어오자마자 놓인 가짜 꽃을 보며 '이건 어떤 소녀가 만들었을까?'라고 말한다. 이후 피터가 자신이 만들었다고 하자 '정말 진짜 같군'이라고 말하며 남자인 피터가 여자처럼 행동하는 걸 비난한다. 이후 앞서 말한 Amour 얘기를 하며 사랑의 반대인 가짜 꽃을 태운다. 자동 피아노 얘기는 다음과 같다. 처음에는 술집에서 떠드는 사람들에게 단순히 경고하지만, 피아노 의자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가 '이건 자동피아노야'라는 걸 말하듯, 피아노에서 손을 때도 소리가 나오는 걸 보고 들은 순간, 필은 분노하며 소리친다.

이런 필의 성격을 극대화하는 묘사는 집에서 샤워하지 않고 자연에서만 씻는 것이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조지는 필에게 '집에서 목욕해 봤어, 형?'이라고 묻는다. 필은 집에서 씻지 않는다. 필은 자신의 비밀 장소에서 흙을 몸에 묻히기도 하고, 옷을 다 벗어던지고 물에 들어간다. 또한, 남들 다 장갑 끼고 일하는데, 그는 절대로 장갑을 끼지 않는다. 이런 장면을 통해서 필의 캐릭터는 명확해진다. 하지만 진짜를 말하는 필의 기준에서 그에게도 가짜인 요소가 있으니, 바로 여자가 아닌 남자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이것을 은연중에 보여주는 첫 번째 장면은 로즈의 술집이다. 앞서 말한 가짜 꽃을 처음 보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의도적으로 꽃의 중심을 매만지는 필의 손을 보여준다. 꽃의 중심을 매만지는 손가락은 흔한 섹슈얼한 상징이다. 유의할 점은 필이 만지는 꽃은 진짜가 아닌 가짜라는 것이다. 이것은 곧, 필이 여성의 성기를 만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두 번째 장면은 필의 동료들은 다 술집에서 여자와 노는데, 필은 혼자 술을 홀짝거리다 집에 돌아오는 부분이다. 영화에서 1925년이라 말하며 시작하는데, 당시 시대상을 생각하면, 남자들은 술집에서 여자를 끼고 노는 게 당연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필은 그러지 않고 혼자 숙소로 돌아와 동생을 찾는다. 또 다른 장면들로는 필이 브롱코 헨리의 말안장을 꺼내와 마치 애무하듯 정성스레 닦으며 남성의 성기 같은 말안장의 앞부분을 만지는 장면이나, 자신의 아랫도리에서 브롱코 헨리의 수건을 꺼내 느끼는 장면이 있다. 이것들은 모두 그가 진짜를 외치지만, 그의 기준에서 필은 진짜 남자가 아닌, 가짜라는 걸 보여준다.




박 : 피터는 가짜 같지만 진짜 남자다. 예를 들어 청바지에 흰 스니커즈를 신는 건, 지금은 당연하지만 당시는 아니었다. 피터가 청바지를 입고 흰 스니커즈를 신고 숲에 들어오자 할아버지는 '누가 청바지를 저렇게 입나'라고 말한다. 당시 청바지는 노동자의 상징이고, 이는 곧 더러워질 수밖에 없는 바지라는 것인데, 피터는 그런 복장으로 돌아다닌다. 하지만 극중 모든 남자 보다 진짜 남자인데, 그는 자신의 목표를 무조건 이뤄내는 사람이라는 점이다(마지막에 왜 그런지 얘기하고자 한다).


 피터는 아버지의 묘지에 놓인 진짜 꽃을 던지고 가짜 꽃을 둔다. 우리가 묘지에 생화를 두는 이유를 생각해 보자. 생화를 두면 관리하기 위해서 해에도 여러 번 묘지에 와야 하고, 다른 꽃을 두기도 해야 한다. 즉, 그만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묘지를 방문하는 일에는 힘이 든다. 하지만 조화를 두면 묘지에 갈 필요가 없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꽃을 관리할 필요가 없으니까. 그래서 피터가 아버지의 묘지에 가짜 꽃을 두는 장면은 꽤 의미심장하다.

 영화의 첫 장면에 피터와 로즈는 이런 대화를 나눈다. 

 피터 : "맨션 좋아해?"

로즈 : "손이 너무가."

피터 : "엄마가 할 필요 없어. 청소부 쓰면 되지." 

이후 로즈의 눈물은 조지의 동정심을 샀고, 그녀와 만남을 이어가던 조지는 로즈와 결혼했고, 로즈는 실제로 맨션에 살게 되고, 자신이 청소할 필요 없는 하녀를 두게 된다. 그런데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낸 첫 장면은 다름 아닌 피터의 행동이다. 피터는 필이 가짜 꽃을 태운 장면 이후 빗을 드르륵 거리며 눈물을 그렁거린다. 처음에는 이것이 진짜 필의 감정이라 생각했지만, 영화의 결말을 생각해 보면 이 또한 의심스럽다. 

 앞서 친구가 말한 사랑이라는 주제로 피터의 행동을 보면, 피터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가진 캐릭터다. 피터가 기숙사에 도착했을 때, 꽃다발을 보고 꽃 한 송이를 취하는 게 아니라 꽃잎을 뜯는 장면을 보자. 피터와 로즈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로즈는 앨범 속 꽃다발을 든 여자를 보고 꽃다발이 맘에 든다고 말한다. 이를 기억한 피터는 자신을 주기 위해 들고 온 꽃이지만, 자신이 가지기보다는 로즈가 가지를 바라는 마음에 꽃잎만 뜯어간다(그리고 조지의 차 뒤편에는 꽃다발이 실려있다). 

  뿐만 아니라 필과 조지의 대화와 달리, 피터와 로즈는 대화가 이어진다. 가령 로즈가 술에 취해 자신의 옛날 얘기를 할 때, 피터는 가만히 들어 주고, 그녀가 "너도 들으면 소름 돋는 소리 있어?"라는 질문에 빗을 긁으며 "모르겠어"라고 답을 해준다. 필이 조지를 가족으로 사랑하는 것과 달리 피터는 로즈를 이성으로 사랑한다. 로즈가 밸런타인데이 때 선물을 많이 받았을 거라고 말하며 you're beautiful이라고 말하는 장면이나, 로즈가 우린 닿을 수 없는 존재가 아니라고 말하자 '이럴 필요 없어. 이럴 필요 없게 내가 정리할게'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피터는 엄마를 위해 기꺼이 자신이 움직일 준비가 된 사람이다. 

  여기서 피터는 무엇을 정리한다는 것일까? 피터는 엄마가 알코올 중독인 것도 잘 알고 있고, 필과 가까운 사이가 되는 걸 경계하고 있다. 피터가 필과 가까운 사이가 될수록 필과 로즈는 멀어진다. 자신이 정리한다는 말은 자연스레 필과 거리를 둔다는 말인데, 이 목장에서 필과 거리를 두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목장의 리더이자 인정을 받는 사람은 조지가 아니라 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외부인인 피터가 필과 거리를 둘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그를 죽이는 것이다. 

 이 장면 이후 피터는 의학 책을 보며 무언가를 생각한다. 그는 말을 위태롭게 타며 어딘가로 가 죽은 소를 발견하고, 죽은 소의  가죽을 잘라 들고 간다. 이후 이 가죽은 술에 취한 로즈가 필이 쓸 가죽을 인디언에게 다 팔아넘겨 필이 분노했을 때, 피터가 그에게 건네줄 때 사용된다. 만약에지만, 설령 로즈가 가죽을 팔지 않았더라고 피터는 필에게 가죽을 줬을 것이고, 필을 그것을 사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피터는 필과 같은 개를 볼 수 있는 사람이고,  원래 대사처럼 필에게 "필처럼 되고 싶어서요"라고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서로 추억을 공유하는 사이가 된 필은 이 제안을 거절할 수 없을 것이다. 

 필은 피터의 가죽으로 그를 위한 밧줄을 맨손으로 만들고, 영화 초반부에 등장하는 탄저병에 걸려 사망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피터가 정말 무서운 사람으로 보인다. 필이 만들어준 밧줄을 장갑을 끼고 만지다 차가 오는 소리가 들리자 창으로 향한다. 피터는 창밖으로 로즈와 조지를 보고 있는데, 자세히 말하자면 그는 조지를 감시한 것이다.  피터는 로즈와 조지가 키스하는 걸 본 이후에 창에서 눈을 떼 웃으며 돌아선다. 이때 소름 돋는 건, 피터의 얼굴 옆에 있는 창문을 내리는 동그란 손잡이다. 이 옛날 손잡이는 마치 사람이 자살할 때 쓰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 이유는 피터가 계속해서 자신의 아버지는 자살했다고 말했는데, 피터의 행동을 다 보고 나니 과연 자살일지 의심이 가기 때문이다.

 피터가 필과 밖에 나갔을 때, 필에게 아버지는 목매고 자살했다는 얘기를 한다. 초반부에 등장했던 피터의 방에 필이 들어갈 때, 카메라는 의도적으로 필의 신발에 초점을 맞추다 신발이 사라지며 "in case of fire"이라고 적힌 밧줄을 보여준다. (영화에선 그냥 만들어지는 장면이 없다는 입장을 전제로) 이것이 피터의 방에 있다는 것은, 곧 자신이 사랑하는 로즈를 불행하게 하는 존재인 아버지를 피터는 자신의 손으로 죽인 다음,  아버지가 자살한 걸 자신이 발견했다고 말한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이윽고 자신이 아버지 대신 의학을 배워 아버지의 자리를 완벽히 대신하려고 했던 게 아닐까?

 피터와 필이 둘이서 밖에 나간 장면에서 장애물에 관해 서로 다른 얘기를 한다. 필은  브롱코 헨리(찐 사랑)의 말을 인용하며 "불행을 견디면서 어른이 되는 거다"라고 말하지만, 피터는 아버지의 말을 인용하며 "장애물이라 셨어요. 장애물을 없애가는 게 인생이라고요."라고 말한다. 그래서 피터는 자기 인생(로즈를 사랑하는)의 장애물인 아버지를 죽이고, 필도 죽인 것이 아닐까. 

 마지막에 피터가 나지막하게 읽는 성경을 보면 영화의 제목을 이해할 수 있다. 피터는 자신이 사랑하는 로즈를 위해 그녀에게 장애물도 제거하고 로즈가 원하는 건 사소한 것이더라도 준비하는 피터야말로 필의 기준에선 진짜 남자다. 몸은 약해 보이지만, 목표를 향한 집념 하나는 미친 인물이다.   




피터와 필의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필은 피터에게 자신의 비밀을 들킨 이후에 피터와 친해지기 위해 노력한다. 자신의 성이 아닌 이름을 부르도록 해주고, 피터를 위해 밧줄도 만들어준다. 처음에는 필이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가 집 안에서 로즈를 고립시키게 하기 위함이 아닐까 싶었다. 로즈가 멀리서 피터가 필의 마구간으로 들어가는 장면에서 필이 묻을 닫아 버려 로즈 혼자 남겨지는 장면도 나온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아마도 필은 자신의 비밀을 아는 사람과 친해져서 뭔가 자신의 얘기를 더 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거나, 혹은 너무 약해 보이는 피터가 진짜 남자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밧줄을 만든 게 아닐까 싶었다. 

필은 피터가 변하는 모습을 보며 급속도로 친해지는데, 그것의 화룡점정이 피터가 자신이 자른 가죽을 주는 장면이다. 이 얘기를 하기에 앞서 필의 가죽에 관해 얘기하고자 한다. 로즈는 인디언들이 가죽을 사려고 하자 내주지 않는 모습을 보고 의아해한다. 이에 관해 물어보니 필이 다른 사람 안 주고 왕창 쌓이면 가죽을 다 태운다고 한다. 가죽을 모으는 이유를 알게 된 로즈는 분노한 듯 가죽을 인디언들과 물물교환하고, 이를 알게 된 필은 굉장히 분노한다. 그런데 필이 그 많은 가죽을 태우는 이유가 무엇일까? 

친구와 추측한 건, 아마도 자신이 사랑하는 브롱코 헨리를 위해 제사를 지내기 위한 용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필에게 브롱코 헨리는 진짜 중의 진짜 카우보이였다. 그는 그를 기리기 위해 그의 말안장도 보관해두고, 그의 책도 숨겨 두고, 그의 스카프도 아랫도리에 보관하고 다닌다. 또한, 필이 자연의 숨결을 느끼려고 집에서 샤워도 안 하는 모습을 보면, 아마도 필은 가죽을 태우는 제사 의식을 통해 브롱코 헨리의 정신을 기린 것이 아닐까 싶은 거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피터의 가죽으로 밧줄을 만드는 장면을 보면, 필이 밧줄을 꼬는 사이, 피터는 자연스레 브롱코 헨리의 말안장으로 가 매만지고 난 다음, 그 위의 하트도 만지며 필에게 브롱코 헨리를 만났을 때, 몇 살이었냐고 묻는다. 필은 피터의 나이 또래에 그를 만났고, 죽을 뻔했던 그를 살려줬으며, 둘은 한 침낭에서 몸을 딱 붙여 잤다는 얘기를 해준다. 그러자 피터는 "알몸으로요?"라고 말하며, 필이 던져 준 담배에 침을 발라 말아 만든 다음, 자신이 한 모금을 빨고, 필에게 건네준다. 필은 꽤 당황스러워하면서도 한 모금을 빨고, 다시 피터에게 건네주고 이를 반복한다. 이 장면 이후 말의 눈이 나오고 말의 몸이 자세히 나오는데, 피터와 필의 행동을 포함한 이런 장면들이 둘이 섹스를 했다는 걸 암시하는 것으로 보였다. 

피터는 앞서 말했듯, 필을 죽이기 위해 연기까지 마다한 것이지만, 필은 그렇지 않았다. 필은 피터가 가죽을 주자 자기가 죽을 것도 모르고 "이제부터 네 모든 일에 순풍이 불 것이다"라는 사망 플러그를 남긴다.



두 메인 인물을 제외하고 영화 밖의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먼저 조지다. 처음에 조지는 꽤 중요한 인물처럼 등장하지만, 사실 조지는 작중 그의 모습처럼 중요한 인물인 척하는 하나도 안 중요한 인물이다. 조지는 목장의 ceo 처럼 보이려고 옷도 가지런히 입고, 대외적인 활동도 하지만, 실제로 목장의 리더는 필이고, 주지사가 찾아와도 예일대에서 우등생이었던 형 얘기를 하지, 조지 얘기를 하진 않는다. 

조지가 로즈를 사랑하는 모습 또한 그러하다. 초반부에 조지가 로즈와 춤을 추다 갑자기 혼자 먼 산을 바라본다. 로즈가 왜 그러냐고 묻자, 조지는 "그냥... 혼자가 아니라는 게 너무 좋아서 그랬어"라고 말하며 혼자 있는다. 원래 이런 대사는 로즈를 껴안으면서 고맙다고 말하며 하는 게 타당함에도 말이다. 이후 주지사를 초대하는 자리에서도 로즈를 마치 하녀처럼 대하고, 자신이 결혼 잘 한 사람이라는 걸 증빙하기 위해 로즈에게 피아노를 쳐라고 강요하기도 한다.

 조지는 또한 필과 달리 우는 여자를 보고 달래주는 자상한 남자인 척하지만, 혼자 집에 남아 외톨이가 된 로즈의 기분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 실제 그의 모습은 필의 말처럼 멍청한 뚱보에 불과한 것이다. 무엇 하나 자신의 손으로 이룬 것도 없고, 자신의 가치관조차 명확하지 않은 그런 존재인 것이다. 

 로즈는 영화에서 정말 장미 같은 존재다.  작중 로즈가 등장하는 부분이 적은 것도 그러하고, 필 때문에 로즈가 할 수 있는 행동도 극히 제한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 꽃의 존재 의의가 장식용이듯,  조지에게 그녀는 자신이 결혼한 남자라는 걸 증빙해 주는 장식용 존재인 것이다. 로즈가 작중에서 돋보이는 이유는 피터가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시대를 명확히 1925년이라 밝힌 것도 영화의 재미를 돋우는 부분이었다. 자본주의 시대가 도래한 1900년대 초반에는 카우보이는 한물 간 사람이었다. 조지처럼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는 시대였고, 사상적으로는 견고했던 모던이 무너지는 시대였다. 특히 1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미국은 Roaring Twenties 가 시작됐다. 엄청난 부를 얻은 사람들은 말 그대로 미친 듯이 돈을 쓰기 시작했고, 그것은 곧 후대에 대공황의 도화선이 됐다. 

 이런 시대에 필은 명확히 1800년대의 인물이라는 걸 보여주고, 피터는 1900년 대의 인물이라는 걸 보여준다. 필은 전통적인 가치를 보수하고, 피터는 청바지에 흰 스니커즈를 신는 모습이 그것을 제대로 보여준다. 그리고 조지는 둘 사이에 끼어서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이 온 모습을 보여준다. 




오랜만에 글이 꽤 길어진 느낌이다. 그만큼 이 영화는 재밌는 요소가 많았고, 한 번 더 보면서 다른 것들을 찾고 싶은 영화다. 넷플릭스 독점작이니, 넷플릭스가 있는 사람들은 한 번씩 보는 걸 적극 추천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랑종」을 봤다. 안 볼 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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